[르포] D램값 폭등한 용산 전자상가 "대리점이 공급중단...靑청원 후 차츰 가격 내려"

조선비즈
  • 윤민혁 기자
    입력 2019.07.12 15:19 | 수정 2019.07.12 15:59

    12일 오전 서울 용산전자상가. 한때 국내 PC산업의 ‘메카’였지만, PC 판매가 하향세에 접어들며 과거의 영광은 퇴색한 지 오래다. 최근 들어선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제한에 D램 소매가가 폭등하며 ‘용팔이(용산 상인들을 비하하는 용어)’ 논란까지 재현되고 있다. 일부 상인들이 국가적 위기를 이용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D램 가격 논란은 용산 상인들 사이에서도 화제였다. 용산 터미널에 인접한 선인상가 입구 근처 흡연장에선 삼삼오오 모인 상인들이 "D램 가격 때문에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왔다더라"며 연신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평일 오전임을 감안해도 매장은 한산했다. 간혹 부품 상자를 가득 싣고 오가는 상인들이 보였지만, 제품을 상담하는 구매자는 두엇에 불과했다. 용산 깊숙이 자리잡은 나진상가 2층은 반쯤은 공실이었다.

    12일 오전 서울 용산전자상가. 터미널과 가까운 선인상가 1층이지만, 매장은 한산했다. /윤민혁 기자
    논란은 지난 10일 시작됐다. 하루 전인 9일까지 용산 전자상가에서 2만8500원에 거래되던 삼성전자 DDR4 8GB(기가바이트) PC4-21300 D램 가격이 10일 한 때 5만원대까지 치솟은 것이다. 폭등했던 D램 가격은 12일 오전 4만원대 초반으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3일 전보다 30%가량 높은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실제 지난 10일 D램 고정거래가격이 10개월만에 반등세로 돌아서긴 했다. 그러나 상승치는 1.2% 수준으로 미미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용산 상인들이 가격 담합에 나서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전자제품 가격비교 사이트 다나와의 한 제품 판매란에 달린 "마진 있는 가격에 많은 물량을 소화해줘야 용산 업체들이 임대료를 내고 직원 월급을 줄 수 있다. 용산도 상생할 수 있는 지금 가격에 구매해주시는 게 (국민의)도리"라는 댓글이 알려지며 비판의 강도는 더욱 거세졌다. 급기야 "담합으로 의심되는 가격 인상 및 용산전자상가·일부 온라인 매장에 대한 조사를 요청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한 상태다.

    이 같은 논란에 용산 전자상가 상인들의 반응은 무엇일까. 이날 만난 용산 상인들은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제조사·총판·대리점·소매점을 거치는 구조 속에서 소매 상인들이 가격을 조정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는 총판에 공급하는 D램 납품가격을 인상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상인들은 ‘수급난’이 가격 변동을 불렀다고 말한다. 선인상가 1층 L테크 관계자는 "10일 한 때 대리점에서 재고를 쌓기 위해 순간적으로 물량을 잠갔다"며 "물량을 구할 수 없자 당황한 소매점이 사재기에 나서 가격이 일시적으로 폭등했다, 하지만 이후 해외 선물가격이 움직이지 않으니 가격이 떨어져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고 했다.

    시장 표준 D램으로 불리는 삼성전자 DDR4 8GB PC4-21300. 소매용 D램은 25개들이 상자로 도매상에 유통된 후, 소매상에는 D램 1개를 쿠킹호일로 포장한 ‘벌크’로 전달된다. /윤민혁 기자
    실제 D램 소매 가격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다. 다나와의 삼성전자 DDR4 8G D램 최저가는 12일 오전 9시 4만2000원이었지만, 낮 12시엔 4만600원이 되더니 오후 3시 현재 3만6000원까지 내려온 상태다. 나진상가에서 1990년부터 장사를 해왔다는 H몰 업주는 "며칠 지나면 이전 가격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대리점의 사재기에 영세 소매점은 도리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매 상인들은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대리점에 D램을 주문하고, 재고를 쌓아 놓진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는 "D램 가격은 주식시장과 똑같다. ‘세력’이 있고 소매상은 ‘개미’"라며 "D램을 입도선매해 재미를 보는 소매상도 일부 있겠지만, 길게 보면 가격 변동이 커 손해만 본다"고 했다. 거래량이 큰 대리점과 총판은 가격이 떨어지면 ‘물타기’로 손실폭을 줄이고 납품가를 조정할 여지가 있지만, 소매상은 D램 개당 마진이 몇백원에 불과해 굳이 무리해 ‘리스크’를 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덤덤한 표정을 짓는 상인들도 보였다. 선인상가에서 35년간 PC를 팔았다는 C컴퓨터의 김모 사장은 이번 논란을 "늘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그는 "D램은 원자재처럼 가격이 선행해 움직이고, 뉴스에 등락을 거듭하기 마련"이라며 "35년간 늘 봐온 일이라 가격 움직임도, 욕을 먹는 것도 새삼스럽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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