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반도체 '급소 바로 옆'을 찌른 것 같다"

조선일보
  • 김성민 기자
    입력 2019.07.11 03:10

    [일본의 경제보복]
    재계 "日, 수출 규제 3종 중 당장 생산에 필요한 소재는 허용
    차세대 공정에 쓰이는 건 막아… 이런 견제구가 더 무서워"

    일본의 규제로 물량 확보에 차질이 빚을 것으로 예상된 일본산(産) 핵심 소재가 지난 8~9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에 정상적으로 입고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소재는 메모리 반도체 공정 중 반도체 원판 위에 회로를 인쇄할 때 쓰는 감광액(포토 레지스트)이다. 당초 감광액은 일본산 외에는 대체 공급처가 없어 최악의 경우 한 달 내 공장 가동이 멈출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감광액은 별다른 추가 통관 절차나 시간 지체 없이 예전과 동일하게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가 본격화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는 소재 공급 부족으로 인한 타격이 예상보다 적은 가운데 태풍 전야의 긴장감이 팽배하다. 일본 정부가 지난 1일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종의 수출 규제를 발표했을 때 국내 업계는 해당 소재가 모두 규제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번 핵심 소재의 입고를 통해 일본이 자체적으로 기준을 갖고 있음이 확인됐다. 이 때문에 반도체 업계에서는 "일본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급소 바로 옆을 찌른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 반도체 산업을 당장 마비시키지는 않으면서 미래 반도체는 견제하고 추가 제재를 암시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수출 규제한 소재 현황 외
    일본의 세부 항목 규제는 전문가들도 혼동할 정도로 세밀하게 이뤄졌다. 예컨대 감광액은 세부 규제 항목에선 '1나노미터 초과 193나노미터 미만 파장의 빛에서 사용하기 최적화된 소재'로 범위를 정했다. 한국 반도체 주력인 D램 메모리 생산에 필요한 소재는 '193나노미터'의 파장을 쓴다. 낸드 플래시 생산에 필요한 소재는 '248나노미터'다. 결국 차세대 반도체의 연구·개발과 파운드리 최첨단 공정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포토 레지스트(13.5나노미터 파장)만 수출 규제한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일본이 규제 범위를 193나노미터 '미만'이 아닌 '이하'로 했다면 한국 반도체는 즉각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며 "일본이 한 번에 한국 반도체를 죽이기보다는 견제구를 던졌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접히는 디스플레이를 만들 때 필요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도 마찬가지다. 이 소재는 삼성전자의 갤럭시 폴드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본이 규제 목록에 올린 소재와 실제 갤럭시 폴드 생산에 필요한 소재는 세부 특성이 달라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불화수소도 어느 정도 대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불화수소는 회로를 그리고 원하는 형태로 깎아내는 데 필요한 소재다. 반도체 업체들은 일본산 대신 일단 순도가 떨어지는 대만·중국·국내 불화수소 확보에 나서는 중이다. 공정 시 수율은 떨어지지만 생산은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일본 소재 규제의 영향력이 예상보다 제한적이라는 것은 D램과 낸드 플래시 현물가에서도 볼 수 있다. 보통 반도체 수급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면 가격은 치솟는다. 하지만 현재 D램과 낸드 현물가는 이달 들어서도 제자리걸음 중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도 9일(현지 시각) "일본이 군사용이 아닌 민수용은 일본 업체의 한국 소재 수출을 허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이 추가 제재에 나설 경우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규제가 시작된 3개 소재 외에 한국 기업에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품목들이 있다"며 "이를 일본은 전부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무섭다"고 했다. 기업들은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가장 밑단 소재부터 현황을 파악해 수백개의 품목을 리스트로 만들고, 일본산의 경우 대체가 가능한지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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