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름시름 K바이오, 중병일까 걱정되오

조선일보
  • 최인준 기자
    입력 2019.07.11 03:10

    [Close-up] 악재에 휘청 차세대 산업 한달 새 시총 3조6000억 증발

    한국 경제를 이끌 차세대 산업으로 주목받아 온 바이오산업, 이른바 'K 바이오'가 흔들리고 있다. 유명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잇따라 추문에 휘말리며 사업에 타격을 받고, 주가도 줄줄이 급락하면서 투자자 피해마저 속출하고 있다. 분식 회계 의혹 수사와 신약 판매 중단, 주식 부당 거래 의혹 등 악재가 계속 이어지며 코스닥 주요 제약·바이오 종목으로 구성된 제약 업종 지수 시가총액은 한 달 새 3조원 이상 증발했다. 업계 관계자는 "2019년은 미국에서의 신약 판매 허가, 글로벌 임상 3상 성공 등 굵직한 이슈로 K 바이오의 원년(元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는데, 기업들의 실제 성적표는 크게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제약·바이오 업계에 닥친 악재들과 KRX300헬스케어 지수
    /그래픽=양인성
    기초 허약한 한국 바이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 84개 제약·바이오 종목으로 구성된 제약 업종 지수의 시총은 지난 9일 27조1067억원이었다. 이는 지난달 10일(30조7029억원)과 비교해 약 3조6000억원 줄어든 것이다. 다른 기업까지 덩달아 주가가 폭락하는 '도미노 붕괴' 현상도 나타났다. 지난 9일 신라젠 주가가 11.21% 떨어지자, 에이치엘비(-9.25%), 셀트리온(-6.55%), 바이오솔류션(-8.72%) 등 주요 바이오 기업 주가도 잇따라 급락한 것이 일례다.

    전문가들은 "국내 바이오산업이 튼튼한 기초 실력보다 바이오라는 간판에 힘입어 고평가됐다"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의 퇴행성 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의 판매 허가 취소 사태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의 인보사는 세포 성장을 돕는 유전자를 장착한 연골 세포 대신 신장 세포가 주로 들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지난달 판매 허가가 취소됐다. 처음 신약 개발에 착수한 지 17년 만이다. 이 회사는 "개발 초기 세포 검사 방식에서는 세포 변경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신약 개발 과정에서 기초적인 성분 검증도 제대로 하지 않고 무리하게 개발을 추진하다가 허가 취소라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회사는 지난해 미국·중국 등 해외 제약 업체와 1조원 규모의 인보사 기술 수출 계약도 체결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해외 기업들이 기술 계약을 파기하거나 파기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올해 제약·바이오 기업들 주가
    국내 업계의 신약 개발 기술력이 글로벌 제약사와 비교해 뒤처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바이오 벤처기업 에이치엘비는 지난달 말 "위암 치료제 '리보세라닙'의 임상 3상 결과가 당초 목표에 미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신약을 상용화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막혀버린 것이다. 이 업체는 신약 개발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번 임상 결과로는 미국식품의약국(FDA)에 신약 허가 신청도 어렵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신라젠도 지난해부터 "미국에서 진행 중인 간암 치료제 '펙사백' 임상 3단계 시험에 문제가 생겨 중단될 수 있다"는 루머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한미약품은 지난 3일 미국 제약사 얀센으로부터 9억1500만달러(약 1조원) 규모 비만·당뇨 치료제 기술 수출 계약을 취소한다고 통보받았다.

    하반기 신약 임상 결과가 판가름

    전문가들은 한국 바이오산업이 신약 개발 인프라와 인력, 자본 등에서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진단한다. 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노바티스, 화이자 등 해외 톱 수준의 제약 기업들은 수십 년 동안 합성 의약품 분야에서 신약 기술을 축적했다"며 "이를 바탕으로 최근 바이오 신약 개발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노바티스는 지난 2017년 세계 첫 면역 항암제를 출시하는 등 바이오 의약품 분야에서 한국보다 10년 이상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 바이오 기업들은 최근 4~5년 전부터 바이오 신약을 본격 개발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기술력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도 글로벌 유명 기업들과 비교해 여전히 초라하다. 최근 들어 국내 기업들이 신약 개발에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국내 상위 10대 제약사의 연간 신약 개발 비용을 다 합해도 세계 R&D 투자 1위 기업인 스위스 로슈(13조원)에 미치지 못한다.

    일각에서는 최근 바이오 기업들의 주가 하락이 바이오 업계 내 옥석을 가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외국 제약 기업의 주가수익비율(PER·주가를 1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수치)은 평균 10~15 정도다. 반면 국내 주요 바이오 기업들의 PER은 50이 넘는 경우가 많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국내 926개 바이오 기업 중 매출 발생이 거의 없는 기업이 30.3%(281개), 손익분기점 미만 매출 기업도 37%(343개)나 된다. 선민정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하반기에 신약 개발 결과가 발표되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줄어들면 기술력을 갖춘 제약·바이오 주에 대한 신뢰도 차츰 회복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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