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인사이더] “미쳤다고요? 이런 문제 푸는게 임팩트 투자죠”

조선비즈
  • 박원익 기자
    입력 2019.07.01 06:00

    2016년 2월 서울 성수동 크레비스파트너스 사무실. 김재현 크레비스파트너스 대표는 갓 작성한 토지 매매계약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매수자는 김재현 대표, 권민석 리디북스 공동창업자, 김원영·김동민 크레비스파트너스 총괄 이사 등 4인. 소재지는 서울 성동구 서울숲 주변 60평(약 200㎡)으로 매입가는 평당 2000만원이었다.

    이들이 땅을 산 이유는 단순했다.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던 중 ‘크레비스파트너스가 투자한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과 회사 직원들부터 싼값에 거주할 수 있게 돕자’고 뜻을 모은 것이다. 회사 사무실 근처인 성수동 토지를 매입한 것도 출퇴근 편의를 고려한 결정이었다.

    한데 얼마 후 김 대표는 생각을 바꿨다. 땅을 더 가치 있게 사용하려면 회사 관계자들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마침 그때 서울시가 운영하는 사회주택이 떠올랐고 결국 그해 10월 헐값으로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에 토지를 넘겼다. 유명 연예기획사의 성수동 이전, 개발 호재 등으로 토지 가격이 평당 3000만원까지 치솟던 때였다.

    김재현 크레비스파트너스 대표. /박원익 기자
    "미친 것 아니냐는 애길 들었죠. 한창 가치가 오르는 곳을 사회주택 부지로 제안하니 서울시 심사 관계자분들도 의아해했습니다. 지금 그 땅 가격은 평당 4000만원으로 두 배가 됐죠."

    크레비스파트너스 본사에서 만난 김 대표는 "애초에 땅 부자 되려던 게 아니었다"며 껄껄 웃었다. 크레비스파트너스는 그가 2004년에 설립한 국내 최초 ‘임팩트 투자’ 전문회사다. 임팩트 투자는 사회·환경 문제 해결에 힘쓰는 벤처 기업에 투자해 이익을 얻는 투자 방식을 말한다. 크레비스파트너스 외에도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 창업자인 이재웅 쏘카 대표가 만든 ‘Sopoong(소풍)’, 현대가 3세 정경선씨가 설립한 ‘HGI’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에듀플렉스(교육), 프렌트립(여가 활동), 렌딧(금융) 등 지금까지 크레비스파트너스가 투자한 스타트업은 20개 이상. 능력 있는 사람들이 좋은 목적을 가지고 투자나 창업에 나서면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굿 컴퍼니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포부를 가진 김 대표에게 임팩트 투자의 현재와 미래를 물었다.

    ◇ 지속가능성에 집중… 투자금 50배 회수하기도

    -임팩트 투자란 무엇인가.

    "과거엔 사회적 기업, 소셜 벤처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한국에 이런 기업, 투자 방식이 처음 소개됐을 땐 그리 성과가 좋지 않았다.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싶지만 돈은 벌 수 없겠다고 판단해 떠난 사람도 많다.

    하지만 운 좋게 크레비스파트너스는 투자해서 이익을 냈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임팩트 투자가 주목받자 국내에서도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임팩트 투자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투자 이익도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거다."

    -어떤 점이 달랐나.

    "지속가능성에 집중한 게 중요했던 것 같다. 소셜 벤처,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는 임팩트 투자가 지속 가능하다는 걸 입증했다. 선한 목적도 좋지만,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느냐를 더 중요하게 봤다. 임팩트 투자를 한다고 해서 타인보다 더 착한 건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따뜻한 투자 정도로 얘기하고 싶다."

    크레비스파트너스 임직원. /홈페이지 캡처
    -성과지표를 구체적으로 소개해 준다면.

    "일단 이익을 내고 있고, 2년에 50%씩 성장하고 있다. 제일 잘된 예를 들자면 투자금의 50배를 회수한 사례가 있다. 고유계정(자기자본) 투자 내부수익률(IRR)은 20% 정도다. 펀드를 통해선 주력으로 투자하는 규모가 10억~30억원이다."

    -임팩트 투자와 일반 투자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도 있을텐데.

    "기업가가 사회적 가치에 대해 이해·인정해야 하고, 자신의 회사가 가진 사회적 가치에 관해 설명할 수 있어야 임팩트 투자로 본다. ‘아이리스 플러스(IRIS+)’라는 표준화된 국제 기준도 있다. 물론 임팩트 투자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회사가 성장해 일반 투자 비중이 커지더라도 임팩트 투자사라는 정체성은 잃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임팩트 투자 아닌 걸 임팩트 투자라고 우기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일반 투자를 최대한으로 확장하더라도 전체 운용 자금의 51% 이상은 임팩트 투자로 유지할 거다."

    ◇ 투자 회수도 책임 있게… 금융·부동산 문제에 주목

    -어떤 사회 문제에 주목하나.

    "현재 투자한 스타트업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금융, 농수산 식품업, 부동산, 취약계층 케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거의 모든 사람이 겪는 금융, 부동산, 식품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임팩트 투자 관점에선 투자뿐 아니라 투자 회수도 중요하다. 우리는 ‘책임 있는 엑싯’이란 표현을 쓴다. 우리가 지분을 팔고 나와도 임팩트가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래서 고유계정의 경우 부분 엑싯을 많이 했다. 지분을 계속 유지하며 사회적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돕는 차원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달라.

    "성수동 토지를 SH공사에 넘기는 과정에서 알게 돼 투자한 스페이스워크라는 스타트업이 있다. 인공지능(AI) 건축 설계 기술을 활용해 토지 개발 솔루션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서울시가 사회주택 사업을 하려면 과거엔 시뮬레이션 없이 땅을 먼저 매입한 후 사업을 추진하는 등 불투명성이 컸다. 하지만 스페이스워크 솔루션을 이용하면 용적률, 도로 편입, 채광 등 다양한 문제를 AI로 시뮬레이션 해볼 수 있다.

    스페이스워크의 붕괴 위험 노후 건물 탐색 서비스 ‘랜드북 세이프티’. /홈페이지 캡처
    공익을 목적으로 스페이스워크 솔루션을 SH공사에 먼저 공급하도록 했고, 현재 가로주택정비사업 등에 사용되고 있다. 건축가를 통해서 하면 몇 달씩 걸리던 일을 AI가 하면서 용역 시간, 가설계 비용이 크게 줄었고, 결과적으로 분양가도 낮출 수 있게 됐다."

    -다른 분야에도 적용 가능한가.

    "AI 건축 설계 기술이기 때문에 데이터만 있으면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랜드북 세이프티'다.

    작년에 용산 상가 붕괴, 상도동 유치원 건물 붕괴 등 큰 사건이 있었는데, 랜드북 세이프티를 사용하면 건축 연도, 건축 방식, 층수, 노후도 등의 데이터를 활용해 붕괴 위험 노후 건물을 탐색할 수 있다. 현장 조사 인력이 2년 걸려서 할 일을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는 혁신적인 서비스다."

    ◇ 가톨릭 사제 꿈꾸던 소년… "제일 중요한 건 실력"

    -창업 계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꿈은 가톨릭 사제가 되는 것이었다. 인자하게 다른 사람을 품어주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며 기업 경영가도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얘기해 주셨다.

    이후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창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서울대 선배였던 에듀플렉스 고승재 대표를 만나 2004년에 크레비스파트너스의 전신인 싸이맵디지털휴먼웨어를 함께 창업했다."

    -임팩트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 있나.

    "2002년 무렵 중국 요리 전문점 웹사이트 만드는 프로젝트를 한 적 있다. 당시 지배인과 미팅을 했는데, 한글을 읽지 못하시더라. 내가 모르고 있던 세상이 크다는 걸 그때 느꼈다.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주고 싶다는 꿈과 하는 일이 서서히 연결되기 시작했다."

    임팩트 투자를 통해 크레비스파트너스 이룩한 성과. /홈페이지 캡처
    -목표가 있다면.

    "2013년 즈음 ‘쌍용차를 인수해 테슬라 같은 회사 만들어 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허황돼 보이지만, 1조 규모 펀드 만들면 가능한 얘기다.

    고용, 환경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이 정도 크기의 문제를 풀어야 임팩트 투자가 시민 사회의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예비 소셜 벤처·스타트업 창업가를 위해 조언을 해준다면.

    "제일 중요한 건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실력이 없는데 사회적 영향력을 주장하면 위험하고, 실력이 있는데 주장하지 않는 것도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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