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주님, 1억 드릴테니 편의점 갈아타세요"

조선일보
  • 석남준 기자
    입력 2019.06.14 03:08

    최저임금·신규 출점 제한으로 갑을 관계 바뀐 편의점 업계

    자녀 채용 우대, 경조사비, 자녀 학자금 지원….

    얼핏 강성 노조가 사측으로부터 얻어낸 결과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근 편의점 기업들이 '점주님'들을 붙잡기 위해 쏟아내는 혜택이다. 정치인들이 유권자를 사로잡기 위해 그렇듯 편의점 기업들이 점주가 다른 업체를 선택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 쪽에 머무르길 바라는 마음에 복지 정책을 꺼내는 것이다.

    올해부터 편의점 근접 출점을 제한하는 자율 협약이 적용되고 대규모 재계약 시즌이 시작되면서 편의점 점주 혜택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직격탄을 맞은 편의점 점주들은 조금이라도 혜택을 더 주는 기업으로 '갈아타기'를 하는 모양새다.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편의점 업계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인 것이다.

    편의점 업계 최대 과제 "점주님을 잡아라"

    지난 11일 CU는 가맹점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생애주기 맞춤형 복지 혜택'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결혼, 가족 형성, 노후에 이르는 생애주기 흐름에 따라 점주와 그 가족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CU는 점주와 가족이 결혼할 때 '웨딩 플랜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물, 예복, 신혼여행 등에서 일반 고객 대비 최대 200만원까지 할인해준다. 청첩장, 식전 영상 등은 무료다. 산후조리, 가사 지원, 아이돌봄, 요양보호사 서비스도 할인해 준다.

    점주님 타사 이적 막기 위한 편의점 업계의 정책 그래픽
    /그래픽=김성규

    CU뿐 아니다. GS25는 점주에게 무료 법률 자문 서비스를 한다. GS25 관계자는 "알바생, 손님과의 갈등 등 점포 운영 관련 문제뿐 아니라 개인적인 법률 상담까지 무료로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점주가 입원하거나 경조사가 있을 경우 본부 직원을 파견해 매장을 관리해주기도 한다. 세븐일레븐은 점주 자녀에게 채용 우대 혜택을 준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이 혜택을 받은 본사 직원이 30명 가까이 된다"고 말했다. 이마트24는 운영 기간에 따라 점주 자녀의 학자금을 지원한다. 운영을 5년 이상하면 유치원, 10년 이상은 중·고등학교, 15년 이상이면 대학교 학비(1년 최대 1000만원)를 지원하는 식이다.

    자율 협약으로 신규 출점 어려워져…올해부터 시작되는 재계약 러시

    편의점 기업들이 점주 잡기에 공을 들이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알짜 점포의 경우 편의점 기업은 점주를 유지하기 위해 재계약 시 1억원에 달하는 일시금을 주고 매달 영업지원비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점주 잡기의 중요성이 확 커졌다. 올해부터 신규 출점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6개 편의점 업체가 심의를 요청한 자율 규약을 승인했다. 50~100m 내에 다른 브랜드 편의점이 있으면 추가로 점포를 내지 않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율 규약에 따라 도심에선 편의점 신규 출점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며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편의점 업계의 특성상 편의점 기업들은 출점 속도가 늦춰진 상황에서 '집토끼 관리'에 더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올해부터 이른바 '재계약 러시'가 시작된다. 통상 편의점은 5년 단위로 계약이 이뤄진다. 5년이 지나면 새로운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다. 이때 점포 리모델링도 한다. 문제는 5년 전인 2014년부터 편의점이 급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2013년 증가한 편의점 수는 300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4년 편의점 1161개가 늘었다. 2015~2017년에는 편의점 수가 매년 3000~5000개씩 급증했다. 한 편의점 기업 관계자는 "신규 출점이 어려워진 데다 대규모 재계약 시즌이 돌아오면서 각 업체들이 점주님 잡기 위한 고민이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편의점 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점주들이 기존 회사가 아닌 타사와 계약을 하는 이른바 '판갈이'를 하는 것이다.

    편의점 점주들은 지난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영난에 처하면서 조금이라도 혜택을 더 주는 업체로 선뜻 갈아타려고 하고 있다. 편의점 기업 영업사원 A씨는 “재계약 시점이 다 된 점주가 호출해서 갔더니 다른 업체 영업사원 2명도 동석했다”며 “점주가 3명 앞에서 ‘뭘 더 해 줄 수 있는지 말해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편의점 업계는 절박한 상황이다. CU는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4%에서 3.3%로 떨어졌다. GS25 역시 영업이익률이 3.3%에서 2.9%로 낮아졌다. 지난해 세븐일레븐의 영업이익률은 1.1%에 불과했다. 이마트24는 지난해 39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서민과 소상공인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최저임금을 올리고 신규 출점을 어렵게 만들었는데 정작 알바생 일자리는 줄고 점주들은 수익이 적어졌다”며 “최근 편의점 업계는 총체적인 난국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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