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목소리 높였더니… 펀드 수익률 1위

조선일보
  • 이경은 기자
    입력 2019.06.12 03:08

    행동주의 펀드들 펄펄 난다

    수출 부진과 경기 둔화로 주식시장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기업들을 상대로 배당 확대나 지배 구조 개선 등을 요구하는 이른바 주주 행동주의 펀드가 선전(善戰)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11일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주주 행동주의가 핵심 키워드인 KB운용의 '주주가치포커스펀드'는 연초 이후 수익률이 16.7%였다. 조사 대상인 357개 국내 액티브 주식형 펀드 중 수익률이 단연 1등이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는 2.9% 오르는 데 그쳤고, 전체 국내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은 1.6%에 머물렀다.

    해당 펀드를 운용하는 정용현 KB운용 펀드매니저는 "대외 변수들이 많아 리스크 관리가 중요한 시기라는 기조 속에 주주 가치가 향상될 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전략을 취했다"면서 "주주 환원책이 뛰어난 기업의 가치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훨씬 높다는 전제하에 종목을 골라 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KB운용은 최근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가 대주주인 에스엠에 '부당 내부 거래' 의혹이 있다면서 주주 서한을 보내는 등 적극적인 주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올 초에는 정용진 부회장이 최대 주주(52%)인 광주신세계에 저배당 문제를 지적해 회사 측으로부터 '배당을 확대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연초 이후 성과 좋은 국내 주식형 펀드 외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의 힘이 강해진 가운데, 개별 종목을 골라 투자하는 액티브 펀드들이 주주 행동주의를 활용해 플러스알파 사냥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주주 행동주의 사모펀드에 136억

    최근 여의도 운용사들은 주주 행동주의를 내세운 신상품으로 자산가들의 자금을 모으고 있다. 지난달 한국투자밸류운용은 주주 행동주의 전략을 펼쳐 플러스알파 수익을 노리는 사모펀드를 내놨다. 최저 가입액이 2억원이어서 문턱이 꽤 높았지만, 지배 구조 혁신에 관심 많은 자산가들에게서 136억원을 모았다. 이 펀드를 운용하는 정신욱 매니저는 "한진칼을 압박하는 강성부 펀드 등을 비롯, 최근 한국 자본 시장에선 전례가 없던 일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문제가 있는 기업에 명분 있는 싸움을 건다면 돈이 된다는 사실을 투자자들이 깨닫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한국밸류운용이 주주 행동주의 관련 상품으로 출시했던 '10년투자주주행복펀드'도 연초 이후 9.6%의 성과로 양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VIP자산운용도 최근 주주 행동주의 펀드 신상품을 출시했는데, 이 펀드는 공격적이기보다는 대주주와 동행하는 투자 전략을 취한다.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이 미국 유력 신문인 워싱턴포스트에 투자해 주요 주주가 된 후 각종 조언을 해주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린 사례처럼, 적대적이기보다는 우호적인 경영 관여 활동을 펼친다는 방침이다.

    ◇"기업의 장기 성장성 저해할 수도"

    국내에서 확산되는 주주 행동주의 트렌드는 한국 기업들의 성장 잠재력이 약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란 의견이 나온다. 김재윤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국내 기업들은 저성장 국면에 진입해 주가 상승을 기대할 요소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적극적인 경영권 참여로 국내 기업들의 지배 구조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익 창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등장한 주주 행동주의 펀드들이 주로 30대 젊은 펀드매니저들이 맡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한 운용사 대표는 "나이 든 운용역들은 회사를 키워온 창업주나 오너들의 영향력을 지켜봤기 때문에 주주권 행사에 미온적인 편"이라며 "반면 30대 젊은 매니저들은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인지 거침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단기 성과를 높이기 위해 기업의 장기 성장성을 훼손하면서까지 압박한다면, 한국판 주주 행동주의가 성공하긴 힘들다는 의견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가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자산 매각 등을 통해 단기적인 투자 수익률 극대화만 추구한다면 기업 경영 안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대규모 재투자를 통해 성장하는 제조업 기반 위주인 한국에서 내부 유보 없이 배당만 무작정 늘리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주주 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

    주주들이 투자 수익을 높이려고 기업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행위를 뜻한다. 시세 차익이나 배당에만 관심 갖고 단기 보유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기업 감시로 주주 가치를 높이고자 장기 투자하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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