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금리인하 가능성 시사…"통화정책, 경제상황 따라 대응해야"

조선비즈
  • 조은임 기자
    입력 2019.06.12 08:00

    창립 69주년 기념사 "무역분쟁, 반도체 불확실성 커져"
    성장률·수출 등 지표 악화되자 인하 가능성 열어둔 듯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통화정책은 경제상황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해나가야 한다"고 밝히면서 통화정책의 방향 전환을 시사했다. 그동안 공개석상에서 수 차례 시장의 금리인하 기대감을 차단해왔지만 경기침체가 예상보다 길어지자 금리인하의 가능성을 열어두기 시작한 것이다.

    이 총재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서 열린 창립 69주년 기념식에서 하반기 이후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최근 미·중 무역분쟁, 반도체 경기 등 대외 요인의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진 만큼 그 전개추이와 영향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경제상황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월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이 총재의 기념사 발언은 한은의 통화정책 방향이 기준금리 인하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달 31일 열린 5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조동철 금통위원의 인하 소수의견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 총재는 "소수의견 일 뿐 시그널은 아니다. 지금은 기준금리 인하로 대응할 상황은 아직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같은 변화는 불과 10여일 사이 발표된 몇몇 경제지표가 일제히 부정적으로 나타나자 경기부양의 필요성을 실감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4일 발표된 1분기 성장률 잠정치가 -0.4%로 속보치(-0.3%)보다 더 떨어졌고 바로 다음날인 5일에는 4월 경상수지가 우려했던 대로 7년 만에 적자를 나타냈다. 또 11일 발표된 통관기준 6월 1~10일 수출(103억달러)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6.6% 감소해 7개월째 마이너스를 보였다.

    이 총재는 대내외 경제전망에 대해서도 한층 부정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올해 들어 우리 경제는 수출과 투자가 감소한 가운데 소비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성장세가 주춤한 모습"이라며 "앞으로 정부지출이 확대되고 수출, 투자 부진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성장경로의 불확실성은 한층 커졌다"고 했다.

    또 대외환경에 대해서는 "미·중 무역분쟁이 심화되면서 세계교역이 위축될 가능성이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정산업 중심의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 경제로서는 이같은 불확실성 요인이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성장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다만 여전히 가계부채 증가로 인한 금융불안정을 여전히 우려하고 있어 당장 7월 중순 열리는 금통위에서 금리인하가 단행될 확률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는 최근 증가세가 다소 둔화됐지만 총량 수준이 매우 높고 위험요인이 남아 있어 경계감을 아직 늦출 수 없다"며 "(통화정책에서)가계부채, 자본유출입 등 금융안정 리스크 요인도 함께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정책당국에 대해서는 성장모멘텀 확보를 위한 구조개혁을 또 한 번 촉구했다. 이 총재는 "대내외 경제여건이 엄중한 상황에서 정책당국은 성장모멘텀이 이어질 수 있도록 거시경제를 운영해야 한다"며 "경기대응을 위한 거시경제정책은 정책 여력과 효과를 신중히 판단해 내실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성장동력 발굴,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활성화, 노동 유연성 제고, 규제합리화를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며 "당장의 어려움 때문에 변화하지 않는다면 훗날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절박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최근 외환시장의 변동성 확대로 시장의 불안감이 증폭된 데 대해서 시장안정 대책을 약속했다. 이 총재는 "세계경제 성장에 대한 우려가 증대되면서 국내외 장기금리가 크게 낮아져 있는 상황이다. 주가와 환율도 높은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며 "필요시에는 시장안정을 위한 대책을 적극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한은 임직원에게는 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하게 주문했다. 최근 한은의 경기인식이 시장과 괴리감이 있다는 지적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불확실성이 한층 높아지면서 시장이 경제여건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통화정책의 결정 배경과 주요 리스크 변화에 보다 상세히 설명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물가 상황이 이어지는 만큼 "물가상황에 대한 경제주체의 이해를 높여야 한다"고도 했다.

    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통화정책 체계와 관련 학계, 지역사회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했던 'Fed Listens' 행사를 언급하며 "빠르게 변하는 정책환경 아래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질적 사고는 조직운영에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시야를 좁히고 유연한 사고를 제약해 환경변화에 대한 대처를 어렵게 만든다"며 "외부와의 적극적 교류로 당연시 해 온 논리와 관점에 문제가 없는지 냉철하게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이 총재는 "최근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는 소위 '뉴 애브노멀(new abnormal)'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말까지 나온다"며 "중앙은행이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외부와 적극 소통하는 한편 우리 스스로도 전문성을 강화해 정책역량을 확충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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