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겪은 러시아, 건설중인 세계 원전 67% 장악

조선일보
  • 전수용 기자
    입력 2019.06.11 03:08

    [탈원전 2년의 늪] [6] 원전시장 지배자, 로사톰
    중국·인도 등 12국서 36기 건설… 10년간 158조원어치 일감 확보

    지난 5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 하는 동안 러시아 국영 원전 기업인 로사톰(ROSATOM)은 중국과 원전 2기 건설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 랴오닝성에 쉬다프(Xudapu) 원전 3·4호기를 건설하는 계약이다. 로사톰은 지난 3월 중국 티안완(Tianwan) 7·8호기 원전 건설도 수주했다.

    세계 최대 원유·가스·석탄을 생산하고 수출하는 러시아가 로사톰을 앞세워 세계 원전 시장을 장악해가고 있다. 과거 원전 강국으로 군림했던 서방의 '빅2' 원전사인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프랑스 아레바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회복 불능에 빠졌고, 일본이 2011년 후쿠시마 사고로 타격을 받던 10년 사이 로사톰이 세계 최대 원전 건설사로 올라선 것이다. 로사톰은 중국·인도는 물론 원전 불모지인 중동·아프리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러시아 국영 원전회사 로사톰
    세계 첫 해상원전 만든 러시아 로사톰 세계 최초의 해상 원전인 로사톰의 '아카데믹 로모노소프'. 시험 가동을 마친 바다 위 원전은 올 연말부터 러시아 북동부 지역인 페베크 항구 인근에서 노후 원전을 대신해 10만명이 사용할 전력을 생산하게 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로사톰의 이런 전략은 단순히 원자로 수출에 그치는 게 아니라, 앞으로 반세기 넘도록 러시아의 원전 수출국과 에너지·외교·안보 협력을 위한 장기 포석이다. 반면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에 바라카 원전 4기 수출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우리나라는 탈(脫)원전을 선언함으로써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스스로 깎아먹어버렸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국내에서 탈(脫)원전에 직면한 한국전력, 파산 위기를 겪은 미국 웨스팅하우스 등 러시아의 경쟁자들은 희망이 없는 상황"이라며 "러시아 정부 지원을 받는 로사톰이 세계 원전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사톰 원전 36기 수주, 한국은 4기

    로사톰은 중국·터키·인도·방글라데시 등 세계 12국에서 원전 36기를 건설하고 있다. 해외에서만 앞으로 10년 동안 1335억달러(약 158조원)어치 일감을 따놓았다. 러시아 현지 언론은 "러시아가 호황을 누리던 시기 무기 수출액과 맞먹는 규모"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전 세계 원전 건설 시장 67%를 로사톰이 차지했다. 지금도 50국 이상에서 원전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로사톰은 최근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현재 66억달러 수준인 연간 해외 매출을 2024년 150억달러로 배 이상 늘리겠다"고 했다.

    세계 원전 시장에서 러시아의 유일한 경쟁자로 중국이 거론되고 있지만 원전 산업의 역사나 기술력에서 러시아의 경쟁자가 되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로사톰은 세계 최초로 원자력 추진 쇄빙선을 만들었다. 올 연말에는 세계 최초로 해상 원전인 '아카데믹 로모노소프'가 노후 원전을 대신해 가동에 들어간다. 러시아에서 37기 원전이 운영 중이고, 자국 내에서도 6기를 추가로 짓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 후 원전 수출 강국으로

    러시아는 1986년 사상 최악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겪었다. 이후 체르노빌 원자로(RBMK) 생산을 중단하고, 3세대 원자로인 VVER-1200으로 대체했다. 2004년 러시아 원자력부가 러시아 연방 원자력청으로 재조직됐고, 2007년 11월 러시아 법에 의해 지금의 국영기업인 로사톰이 탄생했다.

    로사톰이 세계 원전 시장을 휩쓸게 된 건 서방 원전 기업과 달리 수직 통합된 국영기업이라는 점이 꼽힌다. 로사톰은 우라늄 탐사에서부터 생산·농축, 연료 제조, 원전 설계·건설·발전·해체, 핵폐기물까지 처리한다. 높은 기술력은 물론 낮은 건설 가격, 수출국에 대한 대규모 자금 지원을 통해 원전 수주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특히 러시아 정부 지원을 받는 로사톰은 원전을 수출하는 국가에 각각 다른 전략을 구사한다. 중국·인도로부터는 원전 건설 대금을 직접 받지만, 벨라루스·방글라데시·헝가리 같은 국가에서는 원전 건설 자금을 대출 등으로 지원해주는 방식을 취한다. 터키에서는 로사톰이 원전을 지어준 후, 이 원전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장기간에 걸쳐 판매해 수익을 내는 방식을 활용한다.

    러시아의 원전 세일즈 현장에는 늘 푸틴 대통령과 로사톰 회장을 지낸 세르게이 키리옌코 전 러시아 총리가 있다. 푸틴 대통령은 터키·중국·인도·이집트 등 원전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곳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원전 수출에 공을 들여왔다. 키리옌코 전 총리도 로사톰 회장을 맡는 동안 원전 40기를 수출했다.

    ◇원전으로 세계 에너지 시장 장악

    러시아가 원전 수출에 집중하는 건 원유·가스 등 화석연료를 수출하는 것보다 원전 기술을 전수하고 수십 년간 전기를 판매해 수익을 내는 고부가가치 산업이기 때문이다. 중동·아프리카 등에 원전을 수출하면 건설은 물론 앞으로 60년 동안 운영·정비 계약, 원료(우라늄) 공급 계약까지 체결할 수 있다. 또 과거 원유·가스를 수출해온 러시아나 이를 수입하던 국가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해주는 원전 건설로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에 따른 위험성도 줄일 수 있다.

    로사톰의 전략은 단순히 원전 몇기를 수출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러시아가 궁극적으로 신흥 시장에 원전 건설을 지원하면서 에너지 안보와 외교 등에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러시아 현지 모스크바타임스는 "로사톰 원전 수출은 전력난을 겪는 신흥 국가와 전략적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로사톰이 원전을 수출한 국가는 (설계 수명인) 60년 동안 러시아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최근 보고서에서 "로사톰의 원전 수출의 궁극적 전략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에너지 패권 다툼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분석했다.


    관련기사를 더 보시려면,

    세계 원전투자 작년 56조원… 6년새 2배로 안준호 기자
    핫뉴스 BEST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