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 지키려던 소상공인법… USTR "무역장벽이다"

입력 2019.06.11 03:08

美 '수퍼 301조' 근거로 삼았던 보고서에 포함… 무역분쟁 불씨로

10일 경기도 하남 미사강변도시 인근의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 하남점'은 평일인데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정부가 '개점 일시 정지' 명령을 내렸지만, 지난 4월 30일 예정대로 문을 열었다.
10일 경기도 하남 미사강변도시 인근의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 하남점'은 평일인데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정부가 '개점 일시 정지' 명령을 내렸지만, 지난 4월 30일 예정대로 문을 열었다. /김연정 객원기자
한 달여 전인 4월 30일 경기도 하남 미사강변도시 인근에 미국에 본사를 둔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 하남점'이 문을 열었다. 1998년 한국 시장 진출 후 16번째 매장이다. 연면적 5만400㎡(약 1만5000평)의 '코스트코 하남점'엔 주말이면 주변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사람이 몰린다. 하지만 이 매장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법(상생법)'〈그래픽 참조〉 위반으로 곧 정부로부터 '5000만원 이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개점 일시 정지' 명령을 어기고 매장 운영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코스트코는 매장 운영을 중단할 계획은 없다. 설령 과태료를 부과받더라도 추가 제재는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상생법을 둘러싸고 외국계 유통 업체와 정부가 충돌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은 한 번 '찍히면'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게 되기 때문에 정부의 요구를 대부분 따르지만, 외국계 기업은 다르다"며 "불합리하다고 판단한 법에 대해서는 정면 돌파를 불사하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중소기업·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도입한 각종 제도와 법들이 '무역 분쟁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 3월 발표한 '무역장벽보고서(NTE)'에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을 포함한 사실이 10일 확인됐다. NTE는 미 정부가 각국의 무역 장벽 요인을 매년 정리해 발표하는 보고서다. 1988년 미국 정부가 강력한 무역 보복 조치인 '수퍼 301조'를 발동할 때 근거로 삼을 정도로 미국 무역정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한다. 전문가들은 "각종 대기업의 사업 진출 제한 조치가 '국민 정서법'에는 부합할지 모르지만, 글로벌 기준에서 보면 통상 마찰을 일으킬 우려가 커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외국 기업과 잇따르는 마찰

'무역 분쟁' 우려되는 중기·소상공인 보호법
정부가 코스트코에 '개점 일시 정지' 명령을 내린 근거는 상생법(32조 등)이다. 이에 따르면 중소기업자단체(50명 이상의 중소기업인, 소상공인이 관청에 등록한 단체)는 특정 기업의 사업 개시로 피해가 우려될 경우,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게 사업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서울경기동부슈퍼조합 등 6개 중소기업자 단체가 '코스트코 하남점'에 대해 사업 조정 신청을 했고, 중기부는 지난 4월 25일 개점을 보류하라며 코스트코에 '일시 정지 권고'를 했다.

보통 이 경우 국내 유통 업체들은 상생 기금을 제공하거나 취급 물품 수를 축소하는 등의 상생안을 내고 중소기업자 단체와 합의한다. 코스트코는 지역 주민 우선 고용 등을 담은 '지역협력계획서'를 제출한 만큼, 개점을 철회할 이유는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지역 소상공인 단체는 "상생 내용이 미흡하다"며 보완을 요구 중이다.

외국 관련 유통 업체와 정부의 마찰은 처음이 아니다. 유진그룹 계열사인 이에이치씨(EHC)는 지난해 3월 서울 독산동에 창고형 건축·인테리어 전문 매장을 내려고 했다. EHC는 미국의 건자재 업체 에이스하드웨어(AH)와 물품 구매 관련 제휴를 맺었다. EHC는 유통산업발전법의 규제를 충실하게 따랐다. 하지만 중기부는 주변 상인의 반발을 이유로 '개점 3년 연기'를 권고했다.

미국의 AH는 주한 미국 대사관에 "60여 국에 진출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 겪는다"는 항의 서한을 보냈다. 유진그룹 측에서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고, 지난 2월 1심에서 승소했다.

국내 외식업계는 오히려 외면… 무역 분쟁 불씨만

정부가 중소기업·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도입한 정책은 상생법뿐 아니라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과 '유통산업발전법' 등이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그동안 정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소상공인 간 합의를 유도하는 주체인 동반성장위원회가 민간 조직이라는 근거로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국제통상규범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은 법률로 생계형 적합업종을 지정할 수 있게 돼, 정부의 논리도 궁색해졌다. 이화여대 최병일 국제대학원 교수는 "외국계 유통 기업 중 특히 FTA를 맺고 있는 미국·유럽 업체가 투자자 국가소송제도(ISD)를 앞세워 소송을 걸어오면 방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이 소상공인 보호라는 입법 취지는 달성하지 못하고, 통상 분쟁의 빌미만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한국외식업중앙회는 지난달 법적으로 대기업의 출점을 막는 생계형 적합업종을 신청하지 않고 대기업과 상생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대기업 출점 규제가 소상공인 보호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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