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천 칼럼] 제철소 조업정지 처분, 제정신으로 한 일인가

입력 2019.06.11 12:00 | 수정 2019.06.11 17:35

"갯벌을 매립해 활주로를 만들면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 지반이 가라앉을 것이다." "봄, 가을에 영종도 일대를 이동하는 철새가 30만 마리나 돼 항공 참사가 발생할 위험이 높다." "세계 주요 공항 가운데 해일 위험에 노출돼 있는 유일한 공항이다."

인천공항 건설 과정에서 환경단체와 시민단체들은 온갖 이유를 들어 반대운동을 벌였다. 서해안 생태계가 파괴될 것이라고 했고, 새와 비행기가 충돌할 수 있다고 했다. 국가 안보 위험을 들고 나왔고, 동아시아 허브 공항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없어 예산낭비라고 주장했다. 속아 넘어간 사람들이 많았지만 결국은 모두 헛소리였다.

‘천성산 도롱뇽’은 또 어떤가. 어느 비구니와 환경·시민단체들은 경부고속철도(KTX)의 천성산 터널공사가 고산 습지의 자연생태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격렬한 반대운동을 벌였다. 단식 농성과 3보1배 시위, 공사중지가처분 신청 등으로 정부를 압박하고 공사에 제동을 걸었다.

대구~부산 구간 공사가 세 차례에 걸쳐 289일간이나 중단됐고, 막대한 직·간접 피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환경단체가 주장했던 생태계 파괴 우려는 망상이었다. KTX 운행 이후에도 도롱뇽은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다. 도롱뇽을 살려야 한다며 거의 4년간 난리를 피운 사실이 허망하게 느껴질 정도다.

환경 원리주의자들은 이런 ‘흑역사’를 절대 입에 올리지 않는다. 잘못된 판단이었다거나 경솔한 주장이었다는 반성도, 국가적 손실에 대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 떼고는 새로운 ‘사냥감’으로 눈을 돌렸다. 근거 없는 시비와 선동, 괴담으로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내고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고 교묘하게 여론을 조작하는 게 이들의 장기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환경 원리주의자들이 더 기세등등해졌다. 친환경의 세계적인 흐름을 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정부의 적극적인 호응과 배려에 힘 입어 환경정책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탈원전을 내세워 원전 산업의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4대강 보 해체 정책을 이끌어내는 등 거침 없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제철소 핵심설비인 고로(용광로)에 대한 조업정치 처분은 이번 분위기에서 나왔다. 먼저 환경·시민단체들이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고로내 분진과 유독가스를 주기적으로 무단 배출해 지역 주민건강에 위해를 가하고 있다"고 검찰에 고발했다. 지자체들은 사실 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채 ‘10일 조업정지’의 강력한 행정처분을 통보했다.

따져봐야 할 문제가 몇 개 있다. 첫째, 고로의 블리더(안전밸브) 개방이 불법이냐는 것이다. 환경부와 지자체 등은 폭발위험이 감지된 비상상황이 아니라 주기적인 고로 정비 과정에서 블리더를 개방해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한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는 입장이다. 법규를 엄격히 해석하면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현실에 맞지 않는 지나치게 편협한 시각이다.

전세계 모든 제철소들이 고로를 정비할 때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똑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 안전밸브를 열어 고로내 잔여가스를 방출하지 않으면 고로가 폭발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비상상황에서만 블리더 개방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은 철강산업과 고로 설비의 특성을 도외시한 주장이다.

둘째, 오염 물질 배출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한 의문이다. 철강협회측은 "고로 한 개의 블리더 개방을 통해 배출되는 가스는 승용차 한 대가 하루 8시간씩 10여 일간 운행하며 배출하는 정도"라고 했다. "포항제철소 주변 지역의 대기환경측정망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블리더 개방의 영향이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도 했다. 추가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셋째, 블리더 개방이 아닌 다른 방안이 있느냐는 것이다. 철강협회가 최근 세계철강협회에 문의한 결과 "현재까지 대체기술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따라서 이번 제재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연간 6~8회 고로 정비 때마다 블리더 개방에 대한 제재를 피할 수 없다. 한국이 철강산업을 포기해야만 해결될 문제라는 것이다. 제정신 갖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넷째, ‘조업정지 10일’의 적정성 여부다. 조업정지 기간이 4~5일을 넘으면 고로 안의 쇳물이 굳어 재가동이 불가능해진다. 이를 복구하는 데 3개월, 경우에 따라서는 6개월 이상 걸린다. 조업정지 처분을 받은 현대제철 제2 고로의 경우 3개월 이상 멈춰서면 보수 비용을 빼고 매출 손실만 8000억원을 넘는다고 한다. 누가 봐도 행정권 남용이고 횡포가 아닐 수 없다.

세계 모든 제철소가 시행하고 있는 필수 안전조치에 대해 환경단체가 ‘불법’ 의혹을 제기한 것 자체는 이해할 부분이 있다. 철강산업의 특성을 잘 모르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더라도 문제 제기를 할 수는 있다. 과거 이보다 훨씬 심한 엉터리 주장이 많았던 사실에 비추어 보면 이번 케이스는 별로 이례적인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정부의 대응과 조치도 환경단체 수준에 머무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환경 중시는 시대의 흐름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비롯해 환경 규제를 더 강화하고 환경 투자도 늘려야 한다. 하지만 돌도끼 휘두르던 시대를 ‘이상향’으로 여기고, 자연에 손끝 하나 대면 안된다는 식의 환경 원리주의와는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위생 점검에 걸린 식당에 ‘영업정지 10일’ 처분을 내리는 것과 고로에 대한 조업정지 처분은 차원이 다르다. 국가 기간산업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조치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최소한 오염물질에 대한 분석과 대기환경에 대한 영향 평가는 해본 뒤 제재 수위를 조절했어야 한다. 그게 정상적인 정부의 업무 처리 방식이고 절차다. 정부가 환경단체처럼 행동하면 안된다는 정도의 자각과 분별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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