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사부터 비서 일자리까지… 이 기사도 AI가?

조선일보
  • 박순찬 기자
    입력 2019.06.07 03:09

    [AI 세계대전, 길 잃은 한국] [6] 현실로 닥친 '일자리 킬러' AI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에서 뉴스 편집을 담당해왔던 수십명의 담당자들은 지난 4월부터 새로운 업무를 맡고 있다. 회사가 인공지능(AI)에 뉴스 편집을 100% 맡겼기 때문이다. AI가 뉴스 편집에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2017년 2월. 차츰 인력은 줄었고 2년 2개월 만에 사람의 자리를 모두 꿰찬 셈이다. 기존 인력은 대부분 다른 업무를 맡았고, 일부는 AI와 협업(協業)을 시작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뉴스 편집자들이 AI 뉴스 추천 시스템인 에어스(AiRS)의 기초를 설계하고 성능을 고도화하는 데 참여하고 있다"며 "사람의 편집 노하우와 경험을 AI에 전수(傳授)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아마존 “자율운행 드론으로 소포 배달” - 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리마스 콘퍼런스에서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제프 윌키 소비자 부문 CEO가 몇 달 내로 도입될 배송용 전기 드론을 소개하고 있다. 아마존이 공개한 이 드론은 30분 내 거리에 있는 고객에게 2.3kg 무게의 소포를 배달할 수 있고, 최대 24km를 비행할 수 있다.
    아마존 “자율운행 드론으로 소포 배달” - 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리마스 콘퍼런스에서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제프 윌키 소비자 부문 CEO가 몇 달 내로 도입될 배송용 전기 드론을 소개하고 있다. 아마존이 공개한 이 드론은 30분 내 거리에 있는 고객에게 2.3kg 무게의 소포를 배달할 수 있고, 최대 24km를 비행할 수 있다. /아마존 홈페이지

    최근 행정안전부와 공정거래위원회, 일부 지자체와 시·군의회에는 'AI 속기사(速記士)'가 속속 배치되고 있다. 과거에는 인간 속기사가 길게는 수 시간씩 이어지는 회의를 일일이 받아쳤지만 이젠 AI와 업무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전문 AI 장비가 발언자별로 음성을 인식해 실시간으로 속기록 초안(草案)을 만들면 인간 속기사가 이를 검수하고 미흡한 부분을 수정하고 보완한다. 한국AI속기사협회 관계자는 "여러 명이 한꺼번에 발언하거나 장시간 이어지는 회의에도 지치지 않고 90% 이상의 정확도를 보인다는 것이 AI 속기의 강점"이라며 "사람의 일자리를 뺏는다기보다는 협업을 통해 속기의 품질과 속도를 더욱 높이게 됐다"고 했다.

    먼 일로만 여겼던 AI가 빠르게 우리 일자리를 파고들면서 사람의 일(業)이 바뀌고 있다.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뺏는다' '인간의 고유 능력은 대체할 수 없고 오히려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식의 논쟁이 채 결론 나기도 전에 현실로 닥치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과 정부, 학교 모두 AI 시대에 맞는 인재 양성을 위해 과감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423개 직업 얼마나 대체하나 보니

    주요 직업의 인공지능 대체 확률 그래프

    6일 본지가 입수한 LG경제연구원의 '직업별 AI 대체 확률' 원(原)자료는 국내 423개 업종이 얼마나 AI의 영향을 받을 것인지를 소수점 자리까지 분석했다. 소위 고소득 전문직으로 꼽히는 의사·변호사·회계사부터 택배기사·방수공(工)·구두미화원에 이르기까지 각 직업의 업무가 AI에 의해 대체될 확률을 계산한 것이다. 예를 들어 99%라면 현재 사람이 하는 업무의 상당 부분을 기계가 대체할 수 있다는 뜻이다. 텔레마케터, 통신서비스·인터넷 판매원, 사진인화·현상기 조작원이 99%에 해당했다. 그만큼 사람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이다. 전문직이라도 관세사(98.5%)와 회계사·세무사(95.7%), 손해사정인·감정평가 전문가(95.3%)는 AI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교육부가 매년 조사·발표하는 청소년 희망 직업에 단골손님으로 꼽히는 공무원(61.5%), 요리사(54.9%) 등도 대체 확률이 높았다. LG경제연구원 김건우 선임연구원은 "새로운 산업이 탄생해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해도 한 편에선 실업, 양극화 문제가 부각되면서 사회적 비용이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해외 기업들은 속속 체질을 바꾸고 있다.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은 지난달 500명의 고객센터 직원들을 재교육해 소셜미디어 매니저, 고객 경험 디자이너, 음성 인식·생체 전문가 등 13개의 새로운 직업군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연간 400만건 이상의 고객 전화가 쏟아지는 가운데 고객의 디지털 수준이 점차 높아지면서 전화보다 인터넷,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채널로 고객이 이동하는 데 따른 조치다. 회사가 무조건적인 감원(減員) 대신 AI 시대에 맞는 재교육에 나선 것이다.

    국내 산업 현장에선 AI 확산뿐만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 주 최대 52시간 근무제의 영향으로 무인화(無人化)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정부·기업의 업무 재교육, 전직(轉職) 지원 등 대응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정부의 압박 속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외주 업체 직고용 등 고용 경직성을 높이고 혁신보다 기존 일자리 지키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계에선 국토교통부와 한국도로공사가 2020년 6월부터 고속도로 무정차 요금 징수 시스템인 ‘스마트톨링’을 전면 도입하려다 6700여명의 수납원 일자리, 개인 정보 침해 우려 등을 감안해 지난해 계획을 대폭 축소시키고 유인(有人) 수납을 유지하기로 한 것을 대표 사례로 꼽는다.

    개인·기업·정부, AI 일자리 대비해야

    전문가들은 개인과 기업·정부, 교육계가 ‘AI 시대의 일자리’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AI의 직업 대체 확률을 연구한 김건우 선임연구원은 “개인은 창의력, 대인 관계 역량과 같은 인간 고유 능력을 더 발전시키고, 기업은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력과 유연한 조직을 갖추고, 정부는 다양한 고용 형태와 탄력적인 인력 운용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로봇공학자인 오준호 카이스트 교수는 “로봇은 사람이 위험하거나 맞지 않아서 못 했던 일을 대체하는 것일 뿐 1대1의 비율로 사람을 대체할 수는 없다”며 “객관적인 분석은 AI가 잘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창의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기 때문에 일자리는 훨씬 다양해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AI의 추천·판단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사람이 결국 좀비처럼 될 수 있는 만큼 주체적이고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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