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에도 열리는 '데이터 호수'… 금융혁신의 젖줄 만든다

조선일보
  • 이기훈 기자
    입력 2019.06.04 03:05

    4000만 신용정보 빅데이터 개방

    한때 노키아로 이름을 떨쳤던 핀란드는 이제 바이오·헬스케어라는 새 먹거리를 찾았다. 핀란드 국민 50여만명의 유전자 정보가 담긴 의료 빅데이터 시스템 '데이터 호수'가 그 젖줄이다. 민간 기업이 데이터 호수에 든 의료 빅데이터를 마음껏 활용하게 한 덕분에 관련 스타트업이 줄지어 나오고 있다.

    금융 당국은 이를 벤치마킹해 '한국형 금융 데이터 호수'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그 첫 출발점으로 4000만명의 신용 정보가 담긴 빅데이터를 민간에 개방하겠다고 3일 밝혔다. 기업들이 금융 관련 데이터를 사고팔 수 있는 '금융 데이터 거래소'도 내년에 문을 열기로 했다. 그러나 개인정보 관련 규제 완화가 수반되지 않으면 '앙꼬 없는 찐빵'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4000만명 정보 담긴 보물단지

    정부 방안의 골자는 신용정보원이 보유한 거대 개인 정보가 민간에 개방된다는 점이다. 신용정보원은 5000여개의 금융 회사로부터 약 4000만명의 신용정보를 받아 관리한다. 지금은 기존 금융회사만 개인의 대출이나 연체 현황, 카드 발급 정보, 보험 가입 및 해지 현황 등 정보를 활용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일반 기업과 연구기관 등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다만 특정 개인이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없도록 이름과 생일 등을 삭제하는 비식별화 절차를 거친다. 2014년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 같은 대형 금융사고를 막기 위해서다.

    금융 빅데이터 민간 개방 추진 일정 외
    핀테크 기업 등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실제 서비스로 구현하는 데 이런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예컨대 A 핀테크 기업이 자기만의 신용 평가 모형을 개발해 중금리 대출 사업을 하려고 해도 지금은 개발에 참조할 마땅한 자료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앞으로는 연령·직업 등 고객 특성별 대출 규모, 연체 현황 정보를 활용해 맞춤형 신용 평가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 또 성별·연령별 보험 가입 및 유지 현황 DB를 분석해, 생애주기에 따른 맞춤형 보험 설계를 지금보다 꼼꼼하게 해줄 수 있다.

    민간 회사끼리 서로 가지고 있는 금융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금융 데이터 거래소'도 올해 하반기부터 금융보안원 주도로 시범 운영에 들어간다. 내년 상반기 중에 정식으로 문을 열 예정이다. 이미 미국에선 2500개 이상의 데이터 중개상이 민간·공공부문 데이터를 모아 팔고 있고, 중국에서도 알리바바·텐센트 등 2000여개 기업이 빅데이터 거래소를 활용하고 있다.

    데이터 거래가 활성화되면 서로 다른 산업의 정보를 활용해 새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예컨대 공공기관이 갖고 있는 상권별 유동 인구 정보와 민간의 카드 매출 정보를 결합해 다양한 상권 분석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소셜 미디어(SNS) 업계의 특정 회사에 대한 검색 정보 등과 주가지수를 연계해 분석한 뒤 '검색 횟수가 많아지면 주가가 ○○% 오른다'는 식의 주가 예측 로보 어드바이저 개발도 가능해진다.

    ◇관건은 개인정보 규제 완화

    정부가 이번에 금융 데이터 개방의 폭을 넓히기로 했지만, 데이터의 질까지 높이려면 규제 완화가 수반돼야 한다. 현재 정부는 '가명 정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이를 당사자 동의 없이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가명 정보란 '서울 중구에 사는 41세 홍길동(남성)씨'를 '서울 중구에 사는 41세 남성 X씨'로 바꾸는 식으로, 개인을 특정하긴 어렵지만 구체적인 데이터가 담긴 정보다. 반면 지금은 익명 정보만 당사자 동의 없이 활용 가능하다. 익명 정보란 구체적인 정보를 더 지워 '서울에 사는 41세 남성' 정도로만 남기는 것을 말한다. 법 개정이 없으면 익명 정보밖에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이번에 개방되는 데이터의 활용 가치도 제한적인 수준에 그친다는 얘기다.

    금융위 관계자는 "우선 법 개정 이전에라도 가능한 방안을 즉시 시행하는 한편, 관련법 개정을 국회와 협의해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했다. 여당 역시 우호적이다. 이날 '금융 빅데이터 인프라' 개설 및 구축 방안 발표 행사에서 민병두(더불어민주당) 국회 정무위원장은 "이번에는 현행법을 토대로 빅데이터 인프라가 개방되지만, 향후 국회가 열리는 대로 신용정보법을 통과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 역시 법 개정 자체에 대한 이견이 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정국 경색 탓에 6월 임시 국회 소집이 불투명하고, 하반기에 총선 국면으로 들어가면 입법 동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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