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구글 없이는 버텨도 ARM 설계도 잃으면 완전 끝장"

입력 2019.05.24 03:11

[번지는 美中 무역전쟁]
ARM, 전세계 1000개 기업에 반도체 설계도 주는 '갑 중의 갑'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 회사(chip-designer)인 영국의 ARM이 중국 화웨이와 거래 중단을 선언하자 외신들은 미·중 무역 전쟁이 '기술 냉전(tech cold war)'으로 비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ARM은 스마트폰의 두뇌가 되는 모바일 반도체(AP)를 설계하는 기업이다. 현재 경쟁자가 사실상 없는 원천 기술을 갖고 있어 삼성·퀄컴·애플·화웨이와 같은 주요 IT(정보기술) 기업에 '갑(甲) 중의 갑'으로 꼽힌다. ARM 없이는 스마트폰 핵심 반도체의 개발과 생산이 불가능할 정도다.

미 행정부가 지난 16일(현지 시각) '화웨이-미 기업 간 거래 금지' 조치를 내린 지 일주일여 만에 미국 테크 기업들뿐만 아니라 영국·일본 기업들까지 속속 참전하며 화웨이를 사실상 '식물 기업'으로 만들고 있다.

◇미·중과 동맹국 중심의 '기술 냉전' 양상

영국 기업인 ARM이 화웨이와 거래를 끊고 나선 것은 미국과의 기술 협력 관계 때문이다. BBC에 따르면 ARM은 "반도체 설계도에 미국의 원천 기술이 깔려 있다"며 "우리는 미국 정부와 지속적으로 대화하며 최신 제한 사항을 준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화웨이가 장악한 필리핀서도… 성김 美대사 “화웨이의 위험 알아야” - 성김 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가 23일 필리핀 쿠에존시의 한 행사장을 떠나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성김 대사는 이날 행사에서 중국 화웨이 장비의 보안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우리는 각국이 그 같은 기업(화웨이)의 기술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위험을 알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5G 등 각종 통신 분야에서 화웨이의 기술을 도입한 필리핀에 ‘반(反)화웨이’ 전선에 동참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화웨이가 장악한 필리핀서도… 성김 美대사 “화웨이의 위험 알아야” - 성김 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가 23일 필리핀 쿠에존시의 한 행사장을 떠나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성김 대사는 이날 행사에서 중국 화웨이 장비의 보안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우리는 각국이 그 같은 기업(화웨이)의 기술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위험을 알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5G 등 각종 통신 분야에서 화웨이의 기술을 도입한 필리핀에 ‘반(反)화웨이’ 전선에 동참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EPA 연합뉴스
외신들은 ARM의 거래 중단 선언이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기술 지원 및 주요 앱 공급 중단보다 화웨이에 더 큰 타격이 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 IT(정보기술) 전문 매체 와이어드는 "화웨이가 ARM의 설계도를 잃으면 완전히 끝장(it' s toast)"이라고 했다. '화웨이가 구글 없이는 생존할 수 있어도 ARM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영국의 반도체 기업 ARM은 전 세계 IT 기업에 모바일 반도체 기술의 '대부'로 여겨진다. 이 회사는 반도체 공장 없이 반도체 설계도를 만들어 판다. 삼성전자·퀄컴·애플·화웨이 등 전 세계 1000여개 기업이 ARM의 설계도를 가져다 다양한 반도체를 만들고 있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AP)의 경우 90%가ARM의 설계도로 만들어지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ARM 설계에 기반해 생산된 반도체는 229억개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은 2016년 320억달러(약 38조원)에 ARM을 인수하며 "바둑으로 치면 50수(手) 앞을 내다보고 인생 최대의 베팅을 했다"고 했다. 그만큼 ARM의 영향력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화웨이는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통신 장비, 서버(중앙 컴퓨터) 등 주력 생산품에 ARM 설계에 기반한 반도체를 사용하고 있다. 화웨이는 미국 반도체 기업 퀄컴·인텔·브로드컴이 거래 중단을 통보했을 때 "자체 반도체를 쓰겠다"고 했지만 ARM의 설계도를 쓸 수 없으면 자체 설계도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日 기업들도 속속 거래 중단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 기업들도 미 상무부의 '블랙리스트' 발표 이후 자발적으로 거래 중단에 동참하며 반(反)화웨이 전선에 힘을 싣고 있다. LG유플러스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이 거래를 유지하며 상황을 지켜보는 것과는 상반된 행보다. 화웨이는 일본 기업들로부터 지난해 7000억엔(약 7조원)가량의 부품을 구매했다. 소니의 카메라 센서를 비롯해 도시바 메모리 반도체 등이 주요 품목이다.

NTT도코모와 KDDI·소프트뱅크 등 일본 통신 3사도 화웨이의 최신 스마트폰 P30의 출시 연기와 구매 예약 접수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구글의 거래 중단 선언에 따라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파나소닉도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기업으로부터 조달받은 부품과 기술로 각종 중간 제품을 만들어 화웨이에 공급해왔던 것을 중단하고, 그 밖에 수출 금지 대상이 없는지 조사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도가 나오자 파나소닉은 중문(中文) 사이트에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고객사에 제품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것'이라는 입장문을 올렸다.

화웨이 스마트폰, 통신 장비의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일본 업체들도 거래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무라타제작소와 교세라는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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