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블랙썸머' 한국인 주인공 크리스틴 리

입력 2019.05.19 08:00

[이코노미조선]
주인공‘ 경선’은 어머니 이름
한국어 대사 전부 직접 번역
수퍼히어로 역할 맡고 싶어

크리스틴 리. 미국 극예술 아카데미 수료, 영화 ‘콜로설’, ‘Aliens Ate My Homework (외계인이 숙제를 먹어버렸어요)’, 드라마 ‘시간여행자’, ‘블랙썸머’, 게임 ‘레인보우 식스 시즈’ 성우.
4월 11일 공개된 넷플릭스의 미국 좀비 드라마 ‘블랙썸머(Black Summer)’는 ‘좀비 사태 발생으로 붕괴된 문명(Zombie Apocalypse)’이라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이처럼 좀비와 ‘묵시록’을 결합한 콘텐츠는 서양에 이미 많다. 그러나 한국인 시청자라면 이렇게 넘치는 좀비물 속에서 ‘블랙썸머’를 보고 ‘어라?’ 하게 될 것이다. 한국인 주인공 ‘경선(Kyungsun)’은 영어 대신 한국어만, 그것도 제대로 된 한국어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경선은 ‘블랙썸머’ 시즌 1의 시작부터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비중 있게 등장한다. 좀비가 되지 않고 살아남은 이들의 최종 목적지인 경기장까지 무사히 도착한 다섯 명 중 한 명이다. 경선 외 나머지 넷의 생존자들은 영어를 유창히 사용하는 흑인과 백인이다. 경선은 영어를 할 줄 모르지만, 지도를 읽어 무리를 안내하고 좀비가 된 동료를 과감히 처리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뇌를 터뜨려야만 좀비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아낸 사람도 경선이다. 미국의 여러 뉴스매체도 ‘블랙썸머’를 비평하며 ‘한국인 경선’과 그를 연기한 배우 ‘크리스틴 리(Christine Lee)’에 주목했다. ‘Mashable’은 드라마 내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로 경선을 꼽으며 "시리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경선을 연기한 크리스틴 리"라고 했다. ‘ZIMBIO’는 "우리에게 경선을 더 달라"며 리의 연기를 칭찬했다. 리는 "사람들이 경선을 멋있게 생각해주어 기쁘다"며 "영어를 사용하는 시청자들이 경선을 통해 한국계 연예인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배우 크리스틴 리(한국명 이수형·李秀亨)는 한국계 캐나다인이다. 밴쿠버에서 태어났지만 리를 한국어·영어 이중언어구사자로 만들고자 하는 부모의 확고한 교육열로 인해 밴쿠버, 서울, 미국의 테네시주를 오가며 생활했다. 현재 미국과 캐나다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 리의 인스타그램 소개란 첫번째 문구는 ‘Proud Korean Canadian(자랑스러운 한국계 캐나다인)’이다.

스스로의 문화적 정체성을 알려달라.

"까다로운 질문이다. 나처럼 여러 문화권을 오가며 자란 경우,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이방인이라고 느끼기 쉽다. 캐나다와 미국에서 나는 ‘그 한국 여자애’다. 한국에서는 나더러 ‘한국인답지 않다’고 한다. 오랫동안 나는 내가 어느 한쪽 문화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한쪽 틀에 맞추기에는 너무 복잡한 환경에서 자랐으니까.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나를 ‘한국계 캐나다인’이라고 소개한다. 두 문화를 내 방식으로 끌어안는 동시에 남들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기억은 어떤지.

"한국에는 총 15년 정도 살았다. 나에게 한국은 어릴 적 집이자 연기를 향한 사랑을 발견한 곳이다. 내 마음에는 항상 한국을 향한 특별한 감정이 있다."

배우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어릴 때부터 인물을 상상해 연기하는 걸 좋아했고 지금도 그렇다. ‘배우를 해야겠다’고 결정하게 된 계기는 딱히 없다. 서태지 음악에 맞춰 춤을 췄던 것부터, 바비인형을 가지고 가족서사극을 연출하며 노는 것으로 연결되어 프로들과 함께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까지 서서히 발전했다. 배우로서 연기의 첫맛을 느낀 건 고등학생 때 학교연극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의 ‘마사 크라칫’ 역을 맡으면서다."

‘블랙썸머’의 오디션은 어땠는지.

"제작진이 영어로 된 대사를 주며 모국어로 연기를 해달라고 했다. 그들은 영어나 프랑스어 이외의 언어로 대사를 바꾸고 그 언어로 즉흥연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중이었다. 이후 오디션을 보자고 연락이 왔다. 내 방에서 스카이프를 통해 두 번째 에피소드에 나오는 자전거 신을 연기했다. 노트북을 캣타워(탑 모양의 고양이용 놀이기구)에 고정해놓고, 한껏 분노한 상태로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자전거 소품의 대용이었던 작은 사다리를 앞으로 내던졌다. 내가 했던 가장 재밌는 오디션이었다."

영어 대사를 혼자서 전부 번역했나.

"그렇다. 제작자인 존과 함께 앉아 장면마다 대사를 한국어로 고쳤는데, 존은 한국어로 고쳤을 때 그 대사의 느낌이 어떠한지까지 세세하게 물었다. 이런 협의 과정을 거쳐 한국어 대사를 완성했다."

드라마의 주인공 경선을 소개해달라.

"경선은 한국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좀비 사태에서 살아남으려는 인물이다. 경선이 처음부터 경선이었던 건 아니다. 내가 캐스팅된 후에야 인물의 배경이 한국 난민으로 결정됐다. 첫 번째 회의에서 존이 ‘사용하고 싶은 한국 이름이 있냐’고 물었다. 바로 어머니 이름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나의 가장 큰 후원자이자 영감의 원천이기 때문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 배역의 이름으로 어머니 이름인 ‘경선’을 사용하게 됐다. 어머니의 이름으로 드라마의 강한 여성상을 만들어낼 수 있게 돼 기쁘다. 캐릭터 경선 또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삶의 동력이다. 어머니 사진을 넣은 목걸이를 보면서 연기한 것이 극 속에서 어머니에 대한 경선의 사랑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됐다."

각국 시청자들의 경선에 대한 반응은.

"경선은 드라마에서 제일 약한 존재다. 경선의 팬들은 그가 생존을 위해 스스로의 능력을 계속 증명해야 했다는 점 때문에 경선에게 공감하는 것 같다. 무리에 끼지 못해 느끼는 외로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가진다. 그래서 한국, 브라질, 미국 등 국적에 상관없이 경선에게 같은 방식으로 공감하는 것 같다."

한국계 배우로서 한국을 대표한다는 생각이 있는지.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소수민족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나라에 대한 책임감이 있을 것이다. 할리우드도 나아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소수민족에 대한 대표성과 묘사가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할 하나 얻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리고 어떤 역할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면 ‘그 역할이 충분한 서사를 가진, 진짜 인간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우리 문화를 편견으로 일축하지 않고 존중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길을 택했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해외에서 일하는 아시아계 배우들은 유대감이 강하다."

도전하고 싶은 배역과 장르가 있다면.

"하고 싶은 배역은 수퍼히어로! 아직 할리우드에 한국인 영웅이 많이 없어서 도전해 보고 싶다. 미국 시청자를 대상으로 명성황후에 관한 드라마도 만들어보고 싶고. 해보고 싶은 장르는 시대극이나 뮤지컬이다."

한국 활동 계획도 있는지.

"당연하다. 나는 ‘왕의 남자’ ‘은교’ ‘원라인’ ‘괴물’ ‘죽여주는 여자’ ‘부산행’ ‘버닝’ 등 한국 영화를 사랑한다. 한국 배우들은 사람 마음을 어떻게 울리는지 딱 안다. 우리는 연기를 솔직하고 단순하게 한다."

최종 꿈은.

"창작의 자유. 연기도 하고, 혁신적인 영화나 TV시리즈, 연극도 감독하고 싶다. 자기만의 독특한 사고로 세계를 바라보는 별난 애들(weirdos)을 위한 공간을 조직하고 싶다. 나는 별난 아이이고 너드(nerd·한 분야에 몰두해 다른 일은 신경 쓰지 않는 사람)다. 최근에서야 내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나 같은 사람들이 주목받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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