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천 칼럼] 마이크로소프트의 환골탈태

입력 2019.05.14 06:00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Y콤비네이터의 공동창업자 폴 그래엄은 2007년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죽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여전히 많은 수익을 내고 있지만 더이상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이 됐다"고 주장했다.

5년전까지만 해도 그래엄의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다. MS는 2000년대 들어 인터넷 산업의 새로운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며 계속 뒤쳐지는 모습을 보였다. 스마트폰, 검색엔진, SNS 등에서 거듭 뒷북을 치며 테크 산업의 대표 자리에서 밀려났다. 여전히 무시 못할 존재이기는 했지만 세간의 화제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런 MS가 작년말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의 자리에 다시 올라섰다. 2002년 이후 16년만에 이루어진 ‘왕의 귀환’이다. 올들어 아마존에 1위를 내줬다가 되찾는 등 애플과 함께 3개사가 선두 각축을 벌이고 있다. 한때 유행했던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 대신 MAGA(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애플)라는 새 조어도 등장했다.

MS의 재기는 망해가던 애플이 스티브 잡스의 복귀와 함께 테크 산업의 간판스타로 떠오른 것만큼이나 극적인 변화다. 소프트웨어 기업으로는 전례 없는 일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한 제목인 ‘제국의 역습’에 비유했다. 다시 두려운 존재가 되고 있다는 의미다.

지금의 MS는 5년전과는 전혀 다른 기업이다. 과거의 MS는 모든 일이 pc운영체제인 윈도 중심으로 돌아갔다. 스티브 발머 전 회장은 직원들을 모아놓고 연단을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윈도! 윈도! 윈도!"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직원들이 윈도폰 대신 아이폰이나 삼성폰을 쓰는 모습을 보면 그 자리에서 휴대폰을 박살낼 정도로 윈도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2014년 2월 사티아 나델라의 CEO 취임과 함께 MS의 환골탈태(換骨奪胎)가 시작됐다. 나델라는 취임 후 한달여만에 가진 첫 공식행사에서 애플의 아이패드용 오피스 제품을 선보였다. 발머 시대에 개발에 착수한 제품이었지만 나델라가 이를 들고나온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한 마디로 ‘윈도 제일주의’에서 벗어나겠다는 선언이었다.

나델라는 직원들에게 보낸 장문의 첫 이메일에서도 윈도를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윈도에 대한 집착을 깨기 위해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이후 윈도폰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했고, 기존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 서비스 명칭인 ‘윈도 애저’에서 윈도를 빼버렸다. 대신 클라우드 중심으로 사업과 조직 구조를 바꿔나갔다.

과거 MS는 윈도 경쟁제품을 내놓는 기업을 철천지 원수 대하듯 했다. 공존이 아니라 타도와 제거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나델라는 정반대로 했다. 애플, 구글, 리눅스 등과의 경쟁을 포기하고 오히려 손을 잡았다. 그 결과 MS는 급성장하는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에서 선발주자인 아마존을 위협하는 맞수로 떠오르며 시가총액 1위 자리에 복귀했다.

기업 문화, 조직 분위기도 180도 달라졌다는 평가다. MS는 조직 이기주의와 사내 정치가 판을 쳤던 기업이었다. 부서들이 서로 ‘총질’하며 따로 노는 분위기가 강했다. 나델라는 공감과 팀웍을 강조하며 회사 전체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진할 수 있도록 임직원들의 마음을 얻는 데 집중했다. ‘뭐든 다 아는 체’하는 문화를 ‘뭐든 다 배우는’ 문화로 바꿔나갔다.

그 과정에서 MS에 대한 평판도 크게 개선됐다. 무자비한 독점기업이 아니라 ‘기업 시민’의 역할을 중시하는 모범적인 기업으로 이미지가 바뀌고 있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거대 테크기업들이 여러 이유로 정치권과 여론의 몰매를 맞고 있다. 기업 분할 주장까지 나올 정도다. 하지만 MS에 대한 비판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5년 만에 이런 변화를 만들어낸 것은 기적에 가깝다. 나델라의 리더십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나델라의 가치와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를 MS의 3대 CEO로 발탁한 이사회의 혜안(慧眼)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발머의 후계자 선정 작업이 시작됐을 때 나델라는 유력한 후보가 아니었다. 포드자동차와 퀄컴, 에릭슨, 노키아 등 다른 기업의 전·현직 CEO들이 주로 거론됐다. 과감한 개혁을 위해 외부 인사를 발탁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나델라는 내부 후보 중에서도 선두 주자가 아니었다.

인도 출신인 나델라는 1992년에 MS에 입사했다. 20년 이상 근무하며 회사 내부에서 두터운 신망을 쌓았지만 CEO가 되기에는 2% 부족했다. 무엇보다 핵심 부서인 윈도 사업부에서 근무한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 큰 약점이었다. 나델라는 검색엔진 ‘빙(Bing)’과 클라우드 사업 등 당시까지만 해도 주변부로 간주됐던 부서에서 주로 일했다.

하지만 6개월 넘게 100명 이상의 후보를 검토한 끝에 이사회는 나델라를 선택했다.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그의 성품 및 비전, 역량과 함께 회사내 비주류 출신으로 ‘외부자의 시각’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고 뒷말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MS의 부활은 CEO 승계 작업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나델라 리더십의 구체적인 내용 못지 않게 CEO 선정을 위한 치열한 고민과 탐색 과정이 중요하다. 기업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 리더를 찾아내고 발탁하는 것은 글로벌 기업으로 장수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3세, 4세 경영시대를 맞아 온갖 잡음이 끊이지 않는 한국 대기업들이 MS의 환골탈태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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