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어버이날엔 로봇 하나 장만해드릴까요

조선일보
  • 최인준 기자
    입력 2019.05.13 03:06

    치매노인 돌봄로봇 개발 활발

    "어르신, 다시 화장실로 안내할까요?"

    지난 10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4개의 작은 바퀴가 달린 50㎝ 높이 로봇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연구원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이 로봇은 최근 KIST 연구진이 일반 가정에서 '경증(輕症) 치매' 노인을 보살피도록 개발한 인공지능(AI) 로봇 '마이봄'이다. 치매 노인 역할을 맡은 60대 남성이 화장실을 안내하는 로봇을 따라가다 갑자기 엉뚱한 곳을 향하자, 로봇이 이를 눈치 채고 그를 따라와 화장실로 가던 중이었음을 일깨워 준 것이다. 마이봄은 그를 화장실까지 안내한 이후 "어르신, 볼일 다 보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문 앞에 멈춰 섰다.

    KIST의 경증 치매 환자 돌봄 로봇 '마이봄'(왼쪽)이 치매 환자 역할의 60대 남성(오른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KIST의 경증 치매 환자 돌봄 로봇 '마이봄'(왼쪽)이 치매 환자 역할의 60대 남성(오른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KIST·각사 홈페이지
    치매 인구가 늘어나면서 가정에서 치매 환자를 돌볼 수 있는 '돌봄 로봇' 개발이 국내외에서 활발하다. 특허청에 따르면 이 분야의 국내 특허 출원은 2010~ 2012년 연평균 37건에 불과했지만, 최근 3년간은 연평균 72건으로 거의 두 배가 됐다. 정부도 최근 4대 유망 서비스 로봇 중 하나로 치매 돌봄 로봇을 선정했다. 이 중 경증 치매 노인을 대상으로 한 로봇 개발이 대세다. 국내 치매 환자 중 경증 환자의 비율이 56%로 시장이 크고, 로봇 도입에 따른 인력 절감의 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경증 치매는 언어·인지 능력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약속을 자주 잊거나 길을 헤매는 수준의 초기 치매다.

    늘어나는 치매 노인 돌봄 로봇

    현재 치매 돌보미 로봇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심각한 간병 인력 부족 문제 때문에 주로 중증 치매 환자를 돌보는 로봇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일본 리카가쿠(理化學)연구소가 개발 중인 '로베어(ROBEAR)' 같은 간호 로봇은 누워 있는 치매 환자를 부축해 일으키거나 직접 안아 올릴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반면 한국은 마이봄처럼 경증 치매 환자를 겨냥한 로봇 제품 개발에 전략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창수 한양대 교수(로봇공학과)는 "중증 환자용 로봇은 환자를 부축하고 대소변 활동도 도울 수 있어야 해, 상용화까지 10년 이상 걸린다"며 "현재로선 치매 환자와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일상생활을 보조해 주는 로봇이 더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다.

    로봇 업계도 노인 돌봄 로봇 개발에 한창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월 세계 최대 IT(정보기술) 전시회 'CES 2019'에서 '삼성봇 케어'를 공개했다. 치매 노인의 혈압과 심박수, 호흡·수면 상태를 측정하고, 약 복용 시간과 방법을 설명해 준다. 2월 발표된 국내 벤처기업 원더플플랫폼의 '다솜' 로봇은 치매 노인의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거나 방에서 쓰러지면 보호자에게 응급 상황을 알려준다. 평소 노인이 즐겨 듣는 음악도 알아서 재생시킨다.

    미국 로봇 스타트업 톰봇로보틱스가 지난 3월 내놓은 강아지 로봇 '톰봇'은 노인 목소리에 반응해 짖거나 꼬리를 흔든다. 치매 노인의 우울증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일본 로봇 스타트업 미라 로보틱스가 지난 2월 개발한 가사 지원 로봇 '유고(ugo)'는 이동이 가능한 양팔 로봇이다. 1.5㎏의 세탁물을 들 수 있고 옷도 갤 수 있다.

    환자와 가족 얼굴 알아보고 대화도 가능

    KIST 연구진은 내년 마이봄 출시에 앞서 소형 아파트를 본떠 만든 33㎡(약 10평) 크기의 공간에서 성능을 테스트하고 있다. '마이봄'은 로봇 윗부분에 장착된 고성능 카메라로 사람의 얼굴을 인식해 치매 환자와 가족 구성원을 구분해 알아본다. 약 복용 시간과 방법을 알려주고, 간단한 대화도 할 수 있다.

    치매 노인이 "나 점심 먹을래"라고 하면 "지금은 아침 10시이기 때문에 아직 점심때가 아닙니다. 조금 더 기다리세요"라고 답한다.

    마이봄은 '인공신경망' 기반 AI 기술로 사람처럼 스스로 판단을 내려 움직인다. 덕분에 '부엌으로 갔다가 거실로 가고 싶은데 안내해 줘' 같은 복잡한 명령도 수월하게 수행한다. 또 자신을 따라 화장실로 가던 사람이 갑자기 경로를 바꾸는 돌발 상황에도 침착하게 사람을 따라가 다시 화장실로 안내한다. 박성기 KIST 치매DTC융합연구단 책임연구원은 "다른 로봇이었다면 혼자 화장실로 가다가 멈춰 서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올 하반기부터 서울 성북구 지역 치매 환자 가정에 마이봄을 실전 배치해 6개월가량 실증 작업을 거칠 계획이다. 바퀴가 장애물을 넘기 어려워 문턱이 있는 집에서는 사용이 어렵다. 가격은 대당 500만원 선이 될 전망이다. 내년 상반기 출시가 목표다.


    ☞경증 치매(輕症癡呆)

    평소 언어·인지 능력에 큰 문제가 없지만, 약속을 자주 잊거나, 길을 찾지 못하는 약한 정도의 치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국내 경증 치매 환자(38만명)는 전체 치매 환자(65만명)의 약 56%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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