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밀착 마케팅으로… '아동복 성지' 만들었죠

조선일보
  • 이성훈 기자
    입력 2019.04.23 03:08

    [이랜드리테일 석창현 대표]
    독신자 많은 곳엔 패스트 패션, 3040 많은 강서점은 아동복… 석달만에 매출 25% 늘어
    소아마비 앓아 양손에 목발 "장애 틀 스스로 깨는게 중요"

    지난 17일 서울 발산역 인근 NC백화점 강서점. 오전 시간인데도 매장은 고객들로 붐볐다. 개점 8주년 기념 파격 세일에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6층 아동복 매장은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였다. 석창현(55) 이랜드리테일 사업 부문 대표는 양쪽에 목발을 짚고 매장을 꼼꼼히 살폈다. 생후 9개월에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하지만, 지나가다 비뚤어진 진열대가 있으면, 직접 손으로 정리했다. 고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반응도 살폈다. 석 대표는 "초등학교 이하 자녀가 많은 등촌동·가양동·발산동 등 주변 고객들이 많이 오셨다"며 웃었다.

    석창현 이랜드리테일 사업부문 대표
    장애인으로 유통업계 고위 임원이 된 석창현 이랜드리테일 사업부문 대표는 지난 17일 서울 강서구 NC백화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스스로 장애의 틀에 갇히면 기회의 문은 더욱 좁아진다"며 "먼저 그 틀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석 대표는 올 초 임원인사에서 NC백화점·킴스클럽 등 이랜드리테일 49개 점포를 총괄하는 사업 부문 대표에 올랐다. 온·오프라인 간 사활을 건 '유통 전쟁'의 최일선 지휘관으로 부임한 것이다. 석 대표는 "기존 대형 유통 업체들과 신흥 강자인 E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 간에 피아(彼我) 식별이 어려운 전면전이 벌어진 상황"이라며 "화력(자금)도 중요하지만 우리만의 기동력을 살리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자체 브랜드 의류 앞세워 지역 고객 잡는다"

    NC백화점 강서점은 석 대표가 시험 중인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고객 관계 관리) 2.0' 프로젝트의 핵심 점포다. 일반적으로 CRM은 수집한 고객 정보를 바탕으로 타깃 마케팅을 한다. 석 대표의 'CRM 2.0'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고객의 수요를 제품 생산과 유통에 신속히 반영하고, 이를 기반으로 고객 마케팅을 한다. 석 대표는 "다양한 PB(자체 브랜드) 상품과 지역 밀착형 매장을 가진 이랜드만의 장점을 결합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석 대표는 온라인에서 소비자 트렌드를 재빨리 파악한 후, 이를 PB 상품 생산에 반영한다. 이렇게 만든 제품을 오프라인 매장에 실시간으로 공급한다. 이때도 지역 특색에 맞게 매장에 따라 공급하는 제품과 매장 면적 등을 조정한다. 30~40대 고객이 많은 강서점에는 아동복 비중을 높이고, 젊은 독신자가 많은 지역 매장엔 패스트 패션(SPA) 브랜드 '스파오(SPAO)'를 강조하는 방식이다. 특히 매장 반경 3㎞ 이내 지역 고객을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석 대표는 "전국 또는 광역 단위 고객을 상대로 하는 다른 유통 업체보다 훨씬 지역 밀착형으로 마케팅을 할 수 있다"며 "고객들은 자신에게 꼭 맞는 제품을 가장 적당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석 대표의 프로젝트는 이미 성과를 내고 있다. 그가 대표를 맡은 지 석 달 만에 시범 점포로 꼽은 NC백화점 강서점의 지난 3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5%, 영업이익은 52% 늘었다. 어린 자녀를 둔 인근 주민들이 몰리면서 '아동복 성지(聖地)'라는 평가도 받았다. 석 대표는 "강서점의 성공 모델을 정밀 분석해 다른 매장에도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라는 틀에 갇히지 말아야"

    석 대표는 1993년 이랜드에 입사한 후 ㈜이랜드월드 캐주얼사업부와 아동사업부 본부장, 중국유통법인 대표이사 등을 지내며 유통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외부 활동이 많고 고객을 많이 만나야 하는 유통 업계에서 석 대표 같은 장애인이 고위직에 오르는 것은 흔치 않다. 고려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석 대표는 "나도 내가 이렇게 살 줄 몰랐다"며 웃었다.

    대학 시절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석 대표는 소아마비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아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취업을 준비했지만, 장애인이란 이유로 서류 전형에서 수차례 고배를 마셨다. 그때 '나이·장애 불문'이라는 문구가 적힌 이랜드 채용 공고를 본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입사 후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하던 석 대표는 10년쯤 지나 매장 현장에 배치됐다. 당시 고위 임원에게 "나 같은 장애인이 매장에 나가도 되느냐"고 묻자, 그 임원은 "안 되는 이유를 말해보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석 대표는 "이후 회사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어떤 혜택도,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중국 유통법인 대표로 있을 때는 일주일간 중국 대도시들을 하루에 2개씩 도는 강행군도 했다. 석 대표는 "장애인이라고 해서 스스로 장애의 틀에 갇히면 기회의 문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며 "먼저 그 틀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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