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부산의 한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모(27)씨는 최근 3개월간 취업 원서를 50군데 넘게 썼다. 공인회계사가 꿈이었지만 시험 준비에 들어갈 비용이 부담스러워 포기했다. 이씨는 "부모님이 안 계셔서 스스로 용돈 벌어 써야 하는 상황에서 준비 기간이 길고 강의료 비싼 회계사 시험은 도저히 엄두를 낼 수 없었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따기 쉬운 유통관리사, 물류관리사 등 자격증을 5개나 땄지만, 입사 시험에서는 번번이 떨어졌다. 이씨는 취업 준비를 하며 가장 힘든 건 '돈 문제'라고 했다. "서울에서 아침 일찍 필기시험이나 면접시험이 있으면, 전날 가서 인근 모텔도 잡아야 하고 교통비도 만만치 않아요. 한 번 시험 치르고 오는 데 20만원은 드는데, 강의료에 식비·책값까지 계산하면 한 달에 100만원이 금방 나가요. 살면서 이렇게 많은 돈 써본 적이 처음이에요." 이씨는 이런 사연을 담은 '청년구직활동지원금 계획서'를 작성해 지난달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온라인 청년센터에 제출했다. 매월 50만원씩 6개월간 최대 300만원을 주는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을 받으려면 온라인 청년센터 사이트에 접속해 자격 요건이 충족되는지 확인한 후 지원금을 어떻게 쓸 것인지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고용부로 날아온 4만개 넘는 계획서

고용부가 지원 신청을 받기 시작한 지난달 25일부터 일주일간 4만8610개에 달하는 계획서가 온라인으로 접수됐다. 고용부는 이 계획서들을 평가해서 16일 지원 대상 1만1718명을 선정했다. 이들은 지역 고용센터에서 실시하는 취업 교육을 마친 뒤 5월부터 지원금을 받게 된다. 고용부는 매달 지원자들을 심사해 개별 통보할 방침이다.

구직활동지원금 신청자들이 낸 계획서는 지난달 25%를 넘어 사상 최고로 치솟은 청년 체감실업률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교재비가 버거워 취업 준비가 힘들다" "영어 실력이 부족한데 학원비가 비싸 등록 엄두를 못 낸다"는 청년들이 많았다. 청년층 체감실업률은 전체 체감실업률(12.6%)의 두 배나 된다. 체감실업률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취준생이나 아르바이트, 취업 포기자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실업률이다.

한식 요리사가 꿈인 한 조리학과 졸업생은 "홀어머니 지원으로 대학도 어렵게 졸업했는데, 금전 부담으로 영어 공부는커녕 조리 관련 책 사기도 버겁다"고 했다. 한 승무원 준비생은 "승무원이 되려면 면접·화법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전문 스터디에 참여하거나 학원에 다녀야 하는데, 돈이 부족해 그럴 수 없었다"며 "경제적 부담 때문에 취업에 실패하는 현실이 싫다"고 했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진모(24)씨는 지난달 카페·식당 아르바이트 10곳에 지원해 모두 탈락했다. 진씨는 "취업은커녕 아르바이트도 안 구해진다"며 "부모님에게 손 벌려야 하는 내 처지가 슬프다"고 했다. 실제로 청년희망재단이 2017년 실시한 '청년 삶의 질 실태 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은 취업 준비에 가장 어려운 점으로 '비용 마련'(26.6%)을 꼽았다.

장기 구직자 우선 등 선정 기준 불만도

청년구직활동지원금 대상자 선정 방식과 기준에 대해 일부에서는 형평성 논란을 제기한다. 고용부는 졸업 후 기간이 길고 비슷한 지원 사업에 참여한 경험이 없는 청년들을 우선 선발하고 있는데, "각종 취업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열심히 구직 노력을 한 사람이 그런 노력 없이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진 사람보다 후순위로 밀리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용부는 "예산 제약 때문에 우선 순위를 두긴 했지만, 한 번 탈락했더라도 다시 신청하면 지원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청년들의 고통 부담을 덜어준다는 측면은 있겠지만, 좀처럼 질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지 못 하고 있는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하는 상황에선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될 수밖에 없다"며 "노동시장 경직성을 풀면서 복지와 고용 서비스를 대폭 확충하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구직활동지원금

만 18~34세 미취업자 가운데 최종학교 졸업 또는 중퇴 2년 이내인 청년에게 고용노동부가 월 50만원씩 6개월, 최대 300만원을 카드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중위소득 120%(4인 가구 기준 553만6243원) 이하인 경우에만 신청할 수 있다. 올 한 해 8만명을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