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미계약과 이성 잃은 분양시장

입력 2019.04.15 10:30

얼마 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공급된 ‘홍제역해링턴플레이스’는 전용 84㎡ 분양가가 9억원에 달해 청약경쟁률이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지하철역은 가깝지만, 아직 주변 지역 정돈이 끝나지 않았고 때마침 서울 집값도 하락 조정을 받고 있었다.

예상은 빗나갔다. 특별공급을 제외한 일반분양분 263가구를 모집하는데 2930명이 청약에 나서 평균 11.14대 1의 경쟁률로 1순위 해당 지역에서 청약이 마감됐다.

그랬던 이 아파트에서 특별공급을 제외한 일반공급물량 263가구의 66%에 달하는 174가구가 잔여가구로 나왔다. 잔여물량이 가장 많은 전용 84㎡의 경우 계약금만 2억원에 가까운 목돈이 드는 탓에 자금 마련을 하지 못하거나 분양 메리트가 없다고 본 소비자들이 계약을 포기했다.

사실 잘 나가던 서울 아파트 분양시장이 주춤대고 있다는 신호는 진작부터 나타났다. 앞서 노원구 공릉동에 공급된 ‘태릉해링턴플레이스’도 일반분양 물량의 20%에 달하는 62가구가 잔여가구로 나왔다. 1월 광진구 화양동에 분양한 ‘e편한세상 광진 그랜드파크’ 는 1순위 청약이 미달돼 아직 계약자를 찾고 있다. 부동산전문가 열에 여섯은 1년 뒤 서울 집값이 지금보다 더 떨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데도 아직 청약시장엔 ‘로또 아파트’의 주인공은 내가 될 것이란 기대를 못 버린 사람들이 많다. ‘청량리역 한양수자인 192’가 11일 진행한 무순위 청약에는 1만4376명이 몰렸다. 무순위 청약은 청약통장과 주택보유, 가구주 여부와 무관하게 신청할 수 있다. 청약자격이 없는 수요자들이 몰린 것인데, 이들 중 상당수는 자금 마련 계획 없이 일단 당첨되고 보자는 생각으로 청약에 뛰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청약에 당첨된다고 한들 현금 수억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며, 마련한다고 치더라도 우울한 시장 전망과 자금 압박을 버틸 여력이 있는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 11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청약 당첨자들이 계약을 포기한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분양권에 웃돈이 붙으면 이를 바로 되팔아 현금화하던 시기는 지났고, 당분간 주택시장도 조정기를 거쳐야 한다. 팔려 해도 거주기간에 따른 양도소득세 등을 꼼꼼히 따져야 하고 갖고 있으려면 보유세와 시장 전망에 대한 걱정이 뒤따른다. 어느 때보다 치밀하고 이성적으로 자금 계획을 세우고 주택시장을 바라볼 시기에 헛다리 짚는 ‘장밋빛 꿈’은 아닌지 살펴보는 냉정함이 필요하지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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