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죽 전문점 본죽 매장. 직장인 박수지(24)씨는 '트러플(송로버섯) 전복죽'을 먹고 있었다. 전복 내장과 살을 넣은 전통적 전복죽에 세계 3대 진미라는 트러플 오일을 두른 것이다. 일반 전복죽(1만1000원)보다 5000원 비싸지만, 이 매장에서 하루 10그릇 이상 팔린다. 박씨는 "죽이라고 하면 팥죽·야채죽 같은 걸 떠올렸는데, 트러플 오일 넣은 죽은 처음 봤다"며 "신기해서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고 했다.
가볍게 한 끼 때울 때 먹던 죽과 김밥, 라면, 떡 같은 간편식·분식이 '고급화 바람'을 타고 변신 중이다. 트러플 오일과 랍스터 같은 고급 식재료를 곁들이거나 치즈 등 외국 식재료와 결합해 색다른 메뉴로 나오고 있다. 이런 재료는 값비싼 양식당에서 쓰던 것인데, 최근엔 프랜차이즈 식당이나 분식집으로 진출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불황 속에 기존 메뉴로는 한계를 느끼는 업체들이 '튀는 메뉴'에 사활을 걸고 있는 데다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를 추구하는 20·30 세대 직장인들을 겨냥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송로버섯 죽에, 랍스터 라면까지
현대홈쇼핑은 지난해 9월 퓨전 떡을 전문으로 하는 온라인 가게 청년떡집의 제품을 팔았다. 티라미슈(커피, 마스카르포네 치즈 등으로 만든 이탈리아 디저트)와 카카오 크림 등을 넣은 61개들이 떡 3000세트가 한 시간도 안 돼 모두 팔렸다. 물량이 달려 500세트를 더 만들었다. 현대홈쇼핑 관계자는 "떡과 티라미슈라는 이색 조합에 소비자들이 끌렸다"고 말했다.
최근 간편식과 분식이 외국 식재료와 음식을 적극적으로 흡수하고 있다. 즉석 떡볶이 전문점 청년다방은 작년 초 '치믈렛 떡볶이'를 내놓았다. 떡볶이에 치즈를 넣는 경우는 많았는데, 여기에 오믈렛까지 곁들인 것이다. 본죽의 '트러플 전복죽'에 들어간 트러플 오일은 맛을 살리는 효과가 뛰어나 외국에선 '요리 초보자의 필수품'이라고 한다. 본죽을 운영하는 본아이에프는 가정 간편식으로 '트러플 크림 리조또' '씨푸드토마토 리조또' '비프로제 리조또'도 출시했다. 현대백화점의 가정 간편식 브랜드인 '원테이블'의 '모짜렐라김치 서울만두'는 김치만두 안에 쫀득한 모짜렐라 치즈를 넣은 것이다.
분식 프랜차이즈 바르다 김선생은 작년 9월 '랍스터 김밥' 메뉴를 내놓았다. 오이·당근 등 야채와 함께 랍스터 살을 김밥에 넣었다. 값은 한 줄에 4900원. 이 회사 관계자는 "가볍게 한 끼를 먹더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려는 10~30대가 주로 찾는다"고 말했다.
분식도 만만히 볼 메뉴가 아니다. 식품 스타트업 팔킨은 랍스터에서 추출한 분말을 넣은 컵라면과 봉지라면을 판매 중이다. 1개당 2000원 안팎으로 인스턴트 라면으로는 고가이지만, '부자들의 라면'이라는 소문을 타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한 끼라도 제대로… 20·30대의 '가심비'
고급스러워진 간편식·분식의 주 소비층은 20·30대 직장인이다. 현대홈쇼핑에서 '청년떡집'의 티라미슈·카카오크림 떡을 구매한 고객 중 20·30대가 64%였다. 식품 스타트업 옥토끼 프로젝트는 이 세대를 겨냥한 '해장 라면'으로 봉골레 맛 라면을 내놓았다. 이 라면은 2017년 말 출시 후 지금까지 40만개 이상 팔렸다. 옥토끼 프로젝트의 박리안 부사장은 "20·30대에서 평범한 음식보다 이색적인 맛을 먹어보고 SNS에서 공유하는 것이 하나의 놀이 문화가 됐다"며 "금전 부담은 있지만, 심리적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지갑을 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을 활용한다. SPC삼립의 떡 프랜차이즈 '빚은'은 콩고물 크림과 흑임자 크림 등을 넣은 '우리 쌀 롤케익'을 출시하면서 젊은 층에게 인기가 높은 캐릭터 카카오프렌즈와 협업했다.
식품·외식 업체들이 고급화를 추구하는 것은 가격 경쟁으로 낮아진 영업이익을 회복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지적도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전미영 연구위원은 "치열한 가격 경쟁으로 수익성이 떨어진 식품·외식 기업들이 돌파구를 찾고자 고급화 전략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