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많은 집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 아파트 분양시장은 물론 매매·임대시장에서는 ‘숲세권’과 ‘더블·트리플 역세권’이란 신조어가 자주 등장한다. 자연 환경과 교통망이 집의 가치를 평가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반영되는 분위기다.

그동안 지역을 선정하는 기준은 크게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5~10분 안팎인 지역을 뜻하는 ‘역세권’과 명문 중·고등학교에 배정될 수 있는 학군에 해당하는 ‘학세권’ 정도였다. 아파트 건물 안에서 따지는 소위 ‘로열층’은 일조권과 조망권을 고려한 것으로, 대개 아파트 건물의 중상층 이상을 뜻한다.

숲과 가까운 집을 가리키는 숲세권과 공원 근처 집을 뜻하는 공세권은 초미세먼지 등 공기 오염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부상했다. 서울의 경우, 초미세먼지 상황은 관측 이래 최악이다.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초미세먼지(PM 2.5) 농도는 평균 44.6㎍/㎥로, 집계가 시작된 2015년 이래로 가장 짙다.

이 때문에 서울에서 새로 짓는 아파트는 숲이나 공원, 호수 등이 가까우면 선호된다. 인구 밀도가 높고 초고층 건물과 교통량이 많다 보니 쾌적한 자연환경을 누릴 수 있는 집의 희소성이 높아진 셈이다. 숲세권 대형 아파트가 학군이 좋기로 유명한 강남권 아파트와 맞먹는 고급 아파트로 부상했을 정도다.

연예인 아파트란 별명이 붙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 ‘한화 갤러리아 포레’나 ‘트리마제’가 대표적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거래된 한화 갤러리아 포레 전용면적 195㎡ 규모형은 2건이다. 매매가는 각각 33억5000만원, 31억9000만원으로 신고됐다. 지난 2018년 2월 거래된 같은 면적 주택의 매매가격인 34억원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다.

SK건설의 버스 정류장용 공기정화시스템인 ‘클린에어 스테이션’의 개념도

건설사들도 주택 수요자들의 관심사에 맞춰 설계 기술과 주택 시스템을 개발하는 중이다. SK건설은 공기 질을 개선하는 종합관리시스템인 ‘SK뷰 클린에어8’을 출시하고, ‘SK뷰’ 단지에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지난달 밝혔다. 단지 입구의 버스 정류장부터 지하주차장과 아파트 출입구, 엘리베이터에 공기청정시스템을 설치하고 집안에는 가전기기와 연동되는 지능형 환기시스템도 배치한다.

한화건설은 에너지 효율을 높인 공기청정시스템인 ‘클린케어IAQ’를 개발 중이다. 집안에 설치된 센서가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해 자동으로 공기청정 기능을 작동하는 방식이다.

역세권의 개념도 한층 세분화됐다. 두 개 노선이 만나는 ‘더블 역세권’이나 세 개 노선과 가까운 ‘트리플 역세권’이란 단어는 단순히 지하철역과 가까운 것보다 여러 노선이 만나는 환승역이나 두 개 이상의 역과 가까운 지를 따지는 분위기다. 지하철 2·6호선 합정역 근처인 ‘마포 한강 푸르지오’와 지하철 5·6호선과 경의중앙선·공항철도까지 만나는 공덕역 ‘공덕 래미안’ 등이 대표적이다.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부부 양쪽의 직장으로 이동하기 편한 지역을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통계청의 가장 최근 집계인 ‘2017년 신혼부부 통계’를 보면, 맞벌이 부부는 전체의 44.9%를 차지했다. 열 쌍 중 최소 네 쌍은 맞벌이 가정이란 뜻이다. 맞벌이 비중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의 3대 업무지구인 도심권(종로·광화문), 강남권, 여의도권으로 이동하기 좋을수록 주택 수요가 많은 편이다. 최근 2~3년 새 서울 서대문구와 용산구, 동작구의 집값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이유 중 하나다.

실제로 환승역 부근의 대형 건설사 아파트는 9·13 대책이 본격적으로 부동산시장에 영향을 미친 이후로도 집값이 하락 조정을 받지 않고 그대로다. 지난해 3월 9억원에 팔린 ‘공덕1 삼성래미안’의 전용면적 84㎡ 규모형은 지난해 10월 12억원까지 올랐고, 올 1월에도 같은 가격에 거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