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자전문위)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003490)사내이사 재선임을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또 위원회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SK(034730)이사 선임에 대해서도 반대표를 던지기로 했다. 수탁자전문위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와 책임투자 방향을 검토·결정하는 민간인 전문가 기구다.
수탁자전문위는 26일 오후 3시 30분 서울 모처에 모여 대한항공과 SK 정기 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심의했다고 밝혔다. 5시간 가까운 논의 끝에 결론을 낸 수탁자전문위는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 침해 이력이 있다고 판단해 조 회장의 이사 선임을 반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수탁자전문위 심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요청으로 진행됐다. 국민연금기금운용지침 제17조의3 제5항에 따르면 의결권 행사는 원칙적으로 국민연금이 행사하되 공단이 찬반 여부를 판단하기 곤란한 사안은 수탁자전문위에서 결정할 수 있다.
이날 회의는 이상훈 변호사(민주노총 추천)의 위원 자격에 대한 논의로 시작됐다. 이 변호사는 현재 개인 자격으로 조 회장의 이사 재선임을 막기 위해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활동을 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이 변호사의 이런 활동이 수탁자전문위 제5조와 국민연금기금 윤리강령 제7조에서 명시한 ‘이해관계 직무의 회피’ 규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수탁자전문위는 이 변호사가 대한항공 관련 심의에는 관여할 수 없다고 결론 짓고 그를 회의장에서 내보냈다. 이후 나머지 주주권행사 분과위원 8명이 논의를 재개했으나 찬반이 4대4로 팽팽하게 맞서며 오후 6시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위원들은 수탁자전문위의 또다른 축인 책임투자 분과위원회(5명)까지 포함한 전체회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수탁자전문위 운영규정 제6조 6항에 따르면 위원 5인 이상 또는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전체회의를 개최할 수 있다.
책임투자 분과위원 5명 가운데 2명이 급히 회의에 참여했고, 이 두명이 모두 조 회장 연임에 반대 입장을 밝혀 국민연금의 조 회장 재선임 반대가 확정됐다.
이날 수탁자전문위는 최태원 회장의 SK 사내이사 선임에 대해서도 조 회장과 같은 이유를 들어 반대를 결정했다. 최 회장은 2015년 지주사 지분이 0.02%에 불과했지만 SK C&C(지분율 32.92%)를 통해 통합 지주사 지배권을 굳힐 수 있었다. SK와 SK C&C는 2015년에 합병했다.
또 수탁자전문위는 염재호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서도 "이해 상충에 따른 독립성 훼손이 염려된다"며 반대표를 행사하기로 했다. 다만 위원회는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회 위원(김병호) 선임의 건에 대해서는 찬성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