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진, 불거지는 정부 책임론…지열발전 R&D 영구 중단

입력 2019.03.20 16:12 | 수정 2019.03.20 16:33

산업부 "부지 선정, R&D 과정에 문제 있었는지 조사"
지진 피해금액 3323억원, 소송금액 최대 수조원 전망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이 지난 2017년 11월 발생한 포항지진의 원인이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R&D) 사업'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사업을 추진한 정부의 책임론이 불거질 전망이다.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일부 포항시민들은 정부와 지열발전소 운영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한 상태인데, 이번 결과 발표로 소송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 포항본부가 조사한 지진 피해금액은 3323억원에 달한다.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 측은 현재 약 1300명이 소송인단에 참여하고 있으며 포항시민 전원이 소송에 참여하면 총 소송금액이 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날 R&D 영구중단 및 부지 원상 복구, 2200억원대 복구 지원 등의 방안을 발표했지만, 정부의 책임 소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20일 "부지 선정 단계부터 사업 진행 과정까지 절차적으로 적절히 추진됐는 지는 엄중하게 조사하겠다"면서도 "(정부의 책임 소재와 관련해서는) 이 건은 감사원의 국민감사가 청구돼 있는 데다, 소송이 진행 중이라 법원의 판단을 따르겠다는 말 외에 추가적으로 드릴 말씀은 없다"고 했다.

조선DB
포항 지열발전소는 한국에서 지열발전의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2010년 '㎿(메가와트)급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이라는 이름의 정부 지원 연구개발사업으로 추진됐다. ㈜넥스지오가 사업 주관기관으로 POSCO(005490), 이노지오테크놀로지, 지질자원연구원, 건설기술연구원, 서울대 등이 컨소시엄을 꾸려 연구에 참여했다.

지열발전소는 지하 4㎞ 내외까지 물을 내려보낸 뒤 다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지열로 만들어진 수증기로 터빈을 돌린다. 지열발전소를 지으려면 땅속 깊이 들어가는 파이프라인을 깔아야 한다. 조사단은 라인을 설치할 구멍을 뚫고 물을 주입하고 빼는 작업을 반복하는 과정이 단층을 자극해 지진을 촉발했다고 봤다.

다만, 조사단은 지열발전소가 지진을 직접적으로 일으킨 '유발’ 지진이 아니라 이미 지진이 날 가능성이 큰 단층에 자극을 줘 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촉발’ 지진이라고 했다. 향후 손배소 과정에서 책임 여부를 따질 때 이 부분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에 따르면 사업주관사인 넥스지오는 지질조사와 문헌조사, 지진 발생 빈도 등 여러 자료를 검토해 강릉, 석모도, 제주도, 울릉도, 포항 등 5개 후보지를 추렸고 민간전문가 자문위원회 등을 거쳐 포항을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

포스코는 지상 플랜트 설계 및 건설을 담당했고, 지질자원연구원은 미소진동 계측 시스템 구축 및 모니터링, 해석 등의 업무를 맡았다. 건기연과 이노지오테크놀로지는 각각 시추관련 최적화 방안과 정책수립방안·지열발전 사업화 방안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는 지열발전 사업이 안전과 관련된 국제적 매뉴얼에 따라 진행됐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국제적 표준을 따르는 '미소진동 관리 신호등 체계'를 마련해 이를 준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체계에 따르면 일정 규모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지진 규모에 따라 물 주입 중단, 배수 등의 절차를 진행하도록 돼있다"고 했다.

정 차관은 "이번 조사단 연구는 수행 과정의 독립성 등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일절 관여치 않아 조사 결과 등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부지 선정 단계부터 R&D 진행 과정에서 절차상 문제가 있었는지 여부도 엄중히 조사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사업주관사인 넥스지오가 법정관리 상태로 손해배상 능력이 불투명하다는 데 있다. ‘정부가 우선 변제 후 구상권을 청구할 것이냐’는 물음에 정 차관은 "이 부분도 마찬가지로 국가와 연구 수행 기관이 동시에 소송을 진행 중이기 때문에 법원에서 판단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정부는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R&D) 사업을 영구 중단하고, 해당 부지를 빠른 시일 내에 원상 복구하기로 했다. 아울러 올해부터 향후 5년간 ‘포항 홍해 특별재생사업’에 2257억원을 투입해 지진 피해지역의 복구를 지원할 계획이다.

정 차관은 "어떤 조치가 추가적으로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관계부처 및 포항시 등과 긴밀하게 협의하면서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지진발생 이후 정부는 포항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복구지원비 1712억원, 재난안전특별교부세 132억원, 재난 구호 지원사업비 3억원 등 지진 피해 복구와 관련해 총 1847억원을 투입했다. 이 외에도 저수지 내진설계 및 보강 26억원, 재해특별교부금 400억원, 학자금 지원 115억원, 의료급여비 107억원 등 총 651억원을 재정지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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