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천 칼럼] 공정위원장의 허언과 오지랖

입력 2019.03.14 06:00

"대기업 매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4.2%이다. 미국은 11.8%, 일본은 24.6%이다. 삼성전자, 현대차 매출이 GDP의 20%에 달한다. 대기업 경제력이 집중, 심화되고 있다. 그렇지만 고용창출 능력은 형편없이 떨어지고 있다."

얼마전 더불어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나온 발언이다. 여기서 대기업은 매출액 상위 10대 기업을 가리킨다. 경제력 집중 문제와 관련해 흔히 들을 수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10대 기업 매출이 GDP의 44%에 이른다는 사실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이를 근거로 경제력 집중이 심화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궤변에 가깝다.

GDP는 매출액이 아니라 부가가치의 합이다. 국내 기업의 매출액을 모두 합치면 GDP의 몇 배가 된다. 매출액과 GDP를 비교해 경제력 집중도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영업이익 100억원인 기업과 매출액 1000억원인 기업을 단순 비교해 후자의 규모가 10배나 더 크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더욱이 대기업들은 해외매출 비중이 크다. 삼성전자의 경우 해외매출 비중이 90%에 이른다. 외국 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해외에서 많은 매출을 올리는 게 어째서 경제력 집중의 증거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해외 시장 개척에 실패하고, 국내에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는 주장인가.

매출이 아닌 다른 기준을 내세워도 억지이기는 마찬가지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유럽 세르비아에서 열린 국제워크숍 기조강연에서 "한국 30대 재벌 집단의 자산총액이 한국 국내총생산(GDP)보다 커질 정도로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10대 재벌의 자산총액이 GDP의 80%에 달한다"고도 했다.

자산총액은 수년, 수십년에 걸친 축적의 결과다. 대기업들의 자산 총액이 GDP를 웃도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국내 가계의 총자산은 GDP의 6배에 이른다고 한다. 더욱이 기업의 자산총액에는 해외 공장·설비 등의 가치가 포함돼 있다. 매출액과 마찬가지로 기업의 자산 증가는 적극적인 해외시장 진출의 결과이기도 하다. 경제력 집중으로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반론도 먹히지 않고 있다. 좌파 진영은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고 있다는 편견, 대기업은 악(惡)이라는 고정관념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다. 이들은 사실(fact)의 정확성보다 정치적 선전·선동 효과를 훨씬 중요하게 여긴다. 낡은 이념의 색안경 너머로 보이는 흐릿한 세상을 진실이라고 우긴다. 통계 조작·왜곡·오류에 대한 지적에 개의치 않는다.

김상조 위원장은 미리 배포한 강연자료에서 "재벌들은 관료·정치인을 포획하고 언론마저 장악하는 등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주장까지 폈다. 장관급 고위 공직자가 해외에 나가서 자국 기업을 이렇게 음해하는 것은 초유의 일이다. 역대 대통령과 장관은 물론 외국에서도 유사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김 위원장이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경제학자로 계속 남아 있었다면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위 공직자가 국제회의에서 자국 기업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독일 장관들이 ‘디젤게이트’와 관련해 해외에서 자국 자동차 회사들을 비난한 일이 한번이라도 있었는지 의문이다. 더욱이 김 위원장의 주장은 사실과 편견, 억측이 뒤섞여 있다는 점에서 망언(妄言)에 가깝다.

김 위원장은 실제 강연에서는 사회적 병리 현상운운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재벌을 좋아한다"고 했다. 다른 회의에서는 "모든 한국인은 재벌 기업들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라고도 했다. 사전 배포 원고가 거센 논란을 부르자 본격적인 재벌 비판에 앞서 예정에 없던 말을 덧붙였다. 일종의 면피성 발언이다.

하지만 임기응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나간 느낌이다. 허튼소리, 실없는 소리로 들린다. 공정위원장이 재벌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발언이다.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사람도 없다. ‘악어의 눈물’처럼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면 기업들은 더 불안하고 뜨악해진다.

김 위원장은 유럽 방문 도중 삼성과 현대차 그룹의 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논평까지 했다. 오지랖이 넓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는 삼성에 대해 "이해는 하지만 아쉽다"고 했다. 사외이사 후보의 독립성 논란 등에 대한 지적이다. 현대차 그룹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김 위원장은 아직도 자신이 시민단체 활동가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김 위원장은 취임 이후 여러차례 가벼운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확대경제장관회의에 다소 늦게 도착하면서 "재벌을 혼내주고 오느라 늦었다"고 했다. 언론 인터뷰에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같은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때마다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했지만 말 뿐이었다.

김 위원장이 가볍게 톡톡 던진 말이 기업들에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경제력 집중에 대한 허언(虛言)과 기업 지배구조 간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재벌 저격수’로 평생을 살았다지만 그래도 고위 공직자로서의 자각과 분별은 있어야 한다. 자국 우선의 글로벌 경제전쟁터에서 국내 기업을 도와주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등뒤에서 비수를 들어대지는 말아야 한다. 공정위원장이 언제까지 ‘어공’ 티만 내고 있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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