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판결났는데… 금감원 "키코 사태 다시 파헤치겠다"

조선일보
  • 이기훈 기자
    입력 2019.03.15 03:11

    윤석헌 원장, 분쟁조정 추진

    금융감독원과 시중은행이 약 10년 전 키코(KIKO) 사건으로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14일 올해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키코 사태를 재조사하고 있고, 조만간 분쟁 조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시중은행들은 "대법원에서 상품 자체에 문제가 없다고 판결 내린 사안"이라며 "키코 사태를 '은행 적폐'라고 여기던 금감원장이 소신을 위해 새로 문제 삼겠다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10년 넘게 지난 키코, 다시 파헤치겠다는 금감원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기업이 미리 정해둔 환율로 외화를 팔 수 있게 하는 파생금융상품으로, 2007~2008년 당시 수출 기업들이 많이 가입했다. 하지만 이 상품은 환율이 일정 범위를 벗어나면 기업들이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 실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전후 환율이 요동치면서 키코에 가입한 기업들이 문 닫는 일도 있었다. 일부 기업이 "은행이 사기 상품을 팔았다"면서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은 2013년 "사기 상품이 아니다"라고 은행 손을 들어줬다.

    키코 재조사 둘러싼 주요 쟁점
    하지만 윤석헌 원장은 과거 교수 시절부터 키코 사태를 문제 삼았다. 2017년 금융행정혁신위원장 때는 "감독 당국이 금융회사의 이익을 소비자 보호에 우선해 처리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보고서에 썼다. 결국 작년 5월 금감원장 취임 후 키코 재조사를 선언했고, 금감원은 작년에 기업 4곳의 분쟁 조정 신청을 받아 최근까지 관련 검토를 해왔다. 그리고 곧 금감원 산하 분쟁조정위원회에서 은행과 기업이 합의할 수 있도록 중재안을 내겠다는 것이다.

    시중은행들은 "중재가 아니라 결국 소송전을 벌이라는 얘기"라는 반응이다. 앞서 법원은 상품 자체 문제가 없다고 보면서도 은행 측의 과실에 따라 피해액의 최대 35% 정도를 보상해주라고 했다. 은행들은 금감원이 이보다 더 후하게 보상하라고 하면 따르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권고를 받아들이면 실무자가 배임 등으로 처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은행이 분쟁조정위 권고에 불복하고 법정 다툼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이런 입장을 수차례 금감원에 전달했지만 특별한 반응이 없다"면서 "원장 의지가 워낙 강하니 '무조건 간다'는 입장인 것 같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키코 사태 당시 소송을 내지 않은 기업들만 대상으로 삼은 것이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또 법원 판례에서 상품 자체에 문제는 없다고 확인됐지만, 그래도 금융기관이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은 '불완전 판매' 가능성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관치 논란에도 "당국 의견 전달할 것"

    키코뿐만 아니라 윤 원장은 금융회사에 대해 더 고삐를 강하게 쥐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감원은 금융회사들이 최고경영자(CEO) 승계에 앞서 핵심 후보군(2~4명)을 선정해 관리하도록 할 방침이다. 지주 회장이 차기 후보를 좌지우지 못하게 감시한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임원은 "취지는 좋지만, 금감원이 누구를 미는지 눈치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 원장은 또 이날 즉시연금 사태로 소비자와 소송전을 시작한 삼성생명·한화생명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그는 "대형사들이 (감독원 권고에 따르는 등) 모범을 보여줬으면 하는데, 저희 희망처럼 만족스러운 행동을 보이지 않아 고민"이라며 "시장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니 우리 나름의 교류를 통해 의사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융 당국이 '의사를 전달한다'는 말은 금융회사에 커다란 압박이 된다"고 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 산업 발전과 금융 소비자 보호 모두 중요한 가치인데, 현 정부가 한쪽에 치우친 게 아닌지 걱정된다"면서 "금융회사를 규제 대상으로만 보면 서비스 질이 나빠지고 이는 결국 소비자에게도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키코(KIKO)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미리 정한 환율로 기업이 은행에 외화를 팔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 기업은 환율이 변하는 데 따른 위험을 줄일 수 있지만, 환율이 예상과 달리 일정 범위를 벗어나면 크게 손해를 본다. 2007~2008년 달러로 대금을 받는 수출업체들이 원화 환율 하락(원화 가치 상승) 위험을 피하려고 가입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전후로 원화 환율이 크게 치솟으면서 손실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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