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에 수수료 투항한 카드사, 유통·통신사엔 자신감

조선비즈
  • 이윤정 기자
    입력 2019.03.15 06:00

    유통·통신, ‘계약 해지’ 강수 두긴 어려울 것으로 판단
    카드사 마케팅 고객 유인 효과 크고 카드결제 비중 커

    현대자동차(005380)와의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협상에서 사실상 투항한 카드사들이 유통·통신 등 다른 대형가맹점과 수수료율 협상을 본격 시작한다. 대형마트, 백화점 등 유통업계와 통신업계는 수수료율 인상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카드사들은 이번만큼은 ‘현대차 때와 상황이 다르다’며 쉽게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대형마트와 백화점, 통신사들은 지난달 카드사가 통보한 가맹점 수수료율 인상에 대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최근 카드사에 전달했다. 업계 관계자는 "수수료율을 인상하려면 한 달 전에 가맹점에 통보해줘야 하는 만큼 현대차와 비슷한 시기에 전달했지만, 현대차 협상 추이를 지켜본 뒤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 이제서야 협상 테이블에 본격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카드사들은 지난달 대형마트 1위 업체인 이마트(139480)에 이달 1일부터 수수료율을 평균 0.14%포인트 인상한 2%대 초반으로 적용하겠다고 통보하고 그대로 부과하고 있다. 이후 최종 결정된 수수료율에 비해 현재 적용한 수수료율이 높거나 낮으면 차액을 추후 정산한다. 이마트는 카드사 요구대로 수수료율을 인상하면 연간 100억원 이상 추가 비용이 드는데, 카드사들이 수수료율 인상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며 반대하고 있다.

    롯데마트와 롯데백화점도 카드사로부터 0.04~0.26% 수수료율 인상 통보를 받고 최근 수용 불가 의견을 전달했다. 통신사들 역시 기존 1.8~1.9% 수준이던 수수료율이 2.0~2.1%로 인상 적용돼 카드사와 협상 중이다.

    카드사들이 유통·통신 등 나머지 대형가맹점과 수수료율 협상을 본격 시작한다./조선DB
    카드사들은 유통·통신업계가 현대차처럼 ‘계약 해지’라는 강수를 두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유통·통신업계의 경우 자동차업계에 비해 카드 결제가 빈번한데다 고객을 유인하는 카드 마케팅 혜택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수수료율 인상이 마케팅 혜택을 많이 주는 대형가맹점에 마케팅 비용을 더 많이 부과하는 ‘역진성 해소’를 위한 것인 만큼, 카드사들도 명분이 있다는 입장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자동차는 소비자가 자주 사는 물건도 아니고 카드 결제 비중도 낮아 협상 과정에서 카드사 파워가 약할 수밖에 없었다"며 "반면 유통·통신업계의 경우 카드사의 각종 프로모션과 이벤트 덕분에 고객을 끌어모을 수 있는데다, 대부분 결제가 카드로 이뤄지기 때문에 현대차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카드사가 홈쇼핑 업계와 일찌감치 수수료율 협상을 끝낼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CJ오쇼핑, GS홈쇼핑(028150), 현대홈쇼핑(057050)등 홈쇼핑 3사는 큰 잡음 없이 이달 초 수수료율 협상을 끝냈다. 카드사 관계자는 "홈쇼핑은 전체 결제 수단 중 카드가 압도적으로 많은데다, 카드사의 무이자할부 등을 구매 혜택으로 내세우는 등 카드 의존도가 굉장히 높다"며 "카드사와 관계가 악화되면 매출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빠르게 협상을 마무리지은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통신업계는 자동차업계와 달리 경쟁 구조가 형성돼 있다는 점도 카드사의 협상 포인트다. 카드사 관계자는 "현대·기아차의 경우 수입차가 있긴 하지만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독과점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는 서로 경쟁관계"라며 "조금이라도 뒤쳐질 경우 2위 업체가 1위 업체로 올라설 수 있는 만큼, 고객들이 받아가는 카드 혜택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점유율은 약 70%에 달하는 반면, 대형마트 1위 이마트는 30%대, 통신사 1위 SK텔레콤(017670)은 40%대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카드사들은 유통·통신업계가 현대차처럼 ‘계약 해지’라는 강수를 두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조선DB
    다만 현대차 사례 학습을 통해 유통·통신업계가 반발성 제스처를 취할 가능성은 있다. 카드사 관계자는 "현대차가 협상 과정에서 시장지배력을 이용했지만, 금융당국은 경고만 했을 뿐 실제로 개입하지는 못했다"며 "유통·통신업계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끝까지 싸우면 수수료율을 깎을 수 있다’는 것을 학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대차가 ‘계약 해지’ 카드까지 꺼낼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만큼, 유통·통신업계도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다른 카드사 관계자 역시 "계약 해지까진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카드사에 불만을 표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2013년 수수료율 인상에 반발한 이통사는 카드사가 대신 해주던 통신요금 자동이체 접수대행을 금지한 바 있다. 당시 통신사들은 ‘고객 민원’ 때문이라고 했지만, 수수료 인상에 반발해 취한 조치라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유통·통신업계와의 수수료율 협상은 다소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카드사 관계자는 "현대차의 경우 ‘벼랑 끝 전술’로 협상을 시작했고, 이 때문에 계약해지라는 데드라인이 생겨 협상 타결이 빠르게 이뤄질 수 있었다"며 "그러나 이전 수수료율 협상이 수개월씩 걸렸던 것을 생각해보면 유통·통신 등 다른 대형가맹점과의 협상 역시 장기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2016년 수수료율 인상 당시에도 5개월 이상 협상이 지연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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