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스턴에 설립 중인 자회사가 올해 1분기 내 운영됩니다. 미국의 경험 많은 인재와 한국의 역량있는 인재들이 모이는 글로벌 바이오텍으로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이승주(사진) 오름테라퓨틱 대표는 신약 개발의 긴 여정을 두고 히말라야의 많은 봉우리 중에 험하기로 유명한 "K2 등정과 같다"고 비유했다. 그래서 회사명도 '오름'이다.
대전에 있는 오름테라퓨틱은 LG생명과학 연구원과 사노피 아시아연구소장을 지낸 이승주 대표와 원천 기술을 개발한 김용성 아주대 공대 교수가 2016년 8월 공동 창업한 바이오 기업이다. 이 회사는 미국 매사추세츠 보스턴에 설립 중인 자회사를 올해 1분기 내에 운영하고, 회사를 글로벌 바이오벤처로 발돋움한다는 계획이다.
이승주 대표는 "미국 보스턴에 설립 중인 자회사를 올해 1분기 안에 열 계획"이라며 "최근 현지에서 최고과학책임자(CSO) 한 명도 채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창업 초기보다 연구팀을 증원해 공간을 확장하고, 연구실 규모도 3배 이상 커졌다"며 "현재 총 13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으며 인재들을 계속 영입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글로벌 바이오벤처가 되기 위해 미국 자회사 설립을 준비해왔다"며 "회사 내에서 영어로 회의를 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초기 단계 연구를 하고, 미국에서 중개 연구를 하는 시스템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훌륭한 인재와 미국의 경험많은 인재들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연구 개발을 가속화하겠다"고 밝혔다.
오름테라퓨틱이 보유한 핵심 기술은 개발 치료제가 암세포 안으로 들어가 질병의 원인인 라스(RAS) 돌연변이 단백질을 잡아내는 것으로, 라스 단백질 돌연변이를 직접 표적하는 항체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이 대표는 "다양한 기업과 연구소를 거치면서 기존의 약물로 해결할 수 없는 ‘라스(RAS)’ 돌연변이 문제를 풀고자 창업했다"며 "난공불락 표적이라 불리는 ‘라스’는 글로벌 제약사와 의학계가 꼭 풀고 싶어하는 도전적인 과제"라고 말했다.
‘라스 돌연변이’는 체내에서 종양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 단백질로, 모든 인간 종양의 약 30%에서 발견된다. 5년 생존율이 10%도 채 안되는 췌장암의 약 95%, 대장암의 52%, 비소세포폐암의 30%에서 라스 돌연변이 단백질이 확인됐다. 항체 개발이 매우 시급한 표적(타깃)이지만 1982년 발견된 이후 30여년간 라스 돌연변이 단백질을 직접 표적하는 약물이 개발된 적이 없다.
글로벌 제약사는 물론 2014년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 암연구소(NCI)에서도 ‘라스 이니셔티브’를 선포하고 라스 표적항암제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2018년 12월 미국암연구학회 (AACR)에서는 ‘라스’만을 위한 학회를 열기도 했다.
오름테라퓨틱은 라스 돌연변이 단백질을 직접 표적하는 최초의 신약 항체 원천 기술을 확보해, 세계 학계 및 제약계의 주목을 받았다.
쉽게 설명하면, 기존 합성신약은 세포 안으로 들어가는 능력이 있어 세포질 안에 있는 단백질을 저해한다. 즉 질병을 유발하는 단백질 홈에 들어가 달라붙는 방식이다. 문제는 표면이 맨들맨들한 단백질에는 약물이 붙을 수 없다는 점이다. 또 항체신약(바이오의약품)의 경우, 합성신약과 달리 표면이 맨들맨들한 타깃 단백질(세포막 단백질)에 달라붙을 수는 있지만 세포질안에 들어 갈 수는 없는 특성이 있다.
오름테락퓨틱 공동창업자인 김용성 교수팀이 개발한 '세포침투 간섭항체'는 세포질 안까지 들어가 라스 돌연변이 단백질과 결합한다. 기존 항암제가 세포 바깥이나 세포막 표면에서 작용하던 것과 다르다. 그리고 이 항체가 라스 단백질 돌연변이가 보내는 종양 성장 신호를 차단하면서 암 세포의 성장을 느리게 한다. 즉 항체가 종양세포에 침투해 라스 표적에만 선택적으로 결합하고 비정상적 신호 전달을 차단하는 기술이다.
연구팀은 원천기술로 종양세포의 성장과 분열, 촉진을 방해하는데 성공했다. 실험 쥐
동물 실험에서 이 항체는 대장암의 성장을 46%까지, 피부암 일종인 섬유육종의 성장은 70%까지 억제하는 결과를 확인했다. 해당 연구 논문은 지난 2017년 저명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 판 최신호에 게재된 바 있다.
연구팀은 지난 2014년 미래부가 선정하는 미래유망 융합기술 파이오니어사업·연구과제로 선정돼 오는 2020년까지 지원을 받고 있다. 국내 특허는 물론 미국, 유럽 등 14개국에 국외특허를 출원했다.
이 대표는 "현재 수십종류 이상의 암 모델 실험을 통해 어떤 암종 및 어떤 유전자를 가진 암에 치료 효과가 있을지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며 "최적화된 후보물질로 상업화를 준비하기 위한 동물실험"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올해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도 참가했다. 전세계 주요 제약·바이오 업계 핵심 인사들이 모이는 자리인데다, 이 행사 전후로 주목할 만한 거래와 계약이 이뤄져 이목이 집중되는 행사다.
이 대표는 "그동안 오름테라퓨틱의 기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업체 측에서 미팅에 초청해왔다"며 "오름을 글로벌 바이오벤처로 발돋움시키기 위해 글로벌 제약사, 투자자들과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기 상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밝힐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신약개발 경험이 많은 글로벌 제약사와 혁신적인 기술을 가진 대학과 일찍부터 손잡는 것이 오름의 혁신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인터뷰 중 이 대표의 신중한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언제쯤 나오나", "얼마나 걸릴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직은 연구 단계입니다"라는 답변이 몇번씩 돌아왔다.
지난하게 보이지만, 신약 개발의 여정이 원래 그렇다.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기 까지 걸리는 기간은 10~15년이고, 성공률은 0.02%미만으로 매우 낮다.
이 대표는 "한번도 안 가본 길을 갈 때는 실패해본 경험도 중요하다"며 "그래서 그동안 성공과 실패를 경험한 많은 해외 신약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해왔고, 이들도 오름의 기술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왔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국가, 조직, 경험을 넘나들면서 필요한 역량을 총동원해 성공률을 끌어올려야 한다"며 "오름이 한국의 뛰어난 인재와 미국의 혁신신약 경력자들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훗날 내 자녀가 대학에 들어갈 때 쯤에는 대학 교과서에 실릴 만큼 획기적이고,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신약을 여러 개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