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펑크 우려에 연내 거래세 인하 어려울듯
여당 "올해 말 개편" vs 정부 "내년 중반 이후"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직접 팔을 걷어 붙히고 추진하는 ‘증권거래세 폐지’가 용두사미로 끝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증권거래세 뿐만 아니라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과세 체계를 전반적으로 정비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두 번째는 올해와 내년 세수 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이라 증권거래세만 인하하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이유다. 여당이 무리한 정책 드라이브를 펼치면서 시장에 혼선만 일으켰다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 "증권거래세 개편, 내년 중반 이후에나"
민주당 자본시장특위는 지난 5일 ‘자본시장 과세체계 개편 논의 결과’를 발표했다. 위원장을 맡은 최운열 의원은 "증권거래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주식·펀드 등 금융투자상품에서 발생한 손익을 모두 합산한 뒤 이익을 본 만큼만 세금을 내는 방향으로 관련 세제를 바꿀 것"이라 밝혔다.
최 의원은 6일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당 내 ‘가업 상속 및 자본시장 과세체계 개선 TF(태스크포스·작업반)’가 정부와 협의에 4월 말까지 최종안을 만들 것"이라며 "올해 안으로 작업을 마무리해서 예산 부수 법안으로 집어넣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제를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이런 증권거래세 개편 일정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기재부는 특위안이 발표된 5일 보도해명자료 형식을 빌려 "(민주당) 자본시장 특위에서 마련한 과세체계 개편안을 포함해 주식 양도세와 증권거래세간 전반적인 조정방안에 대해 관련 용역 및 TF 논의 등 심도있는 검토를 거쳐 2020년 중반 이후에 최종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내년 중반 이후에 최종 방안을 발표하겠다는 정부 구상은 최운열 의원이 제시한 ‘4월말 협의안 도출→세법개정안 반영’ 계획과는 전혀 다른 얘기다. 올해 중 증권거래세를 낮출 계획은 전혀 없고, 내년부터 적용될 올해 세법개정안에도 반영하지 않겠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증권거래세를 단계적으로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홍남기 부총리의 구상은 내년이후부터 추진할 중장기 과제라는 게 기재부 세제실의 입장이다.
◇靑 재정특위도 반대한 증권거래세 폐지안
민주당과 기재부가 이렇게 이견을 노출한 가장 큰 이유는 금융투자상품 과세 제도 개편이 세법 전반을 바꿔야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주식 매매만 놓고 봐도 양도 차익에 대해 과세하려면 금융소득에 대한 세법을 다 손질해야 하는 ‘대공사’가 되어버린다"며 "간단히 법 조문 몇 개를 바꿀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증권거래세를 양도소득세로 전환하는 방안은 주식 뿐만 아니라 펀드나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 등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세제까지 함께 개편할 수 밖에 없는 복잡한 사안이다. 과거 손실을 이월(移越)해 손익 산정에 반영하게 할 것인지 등 논쟁거리도 많다.
또 금융소득종합과세 등 도미노처럼 바꿔야하는 세제도 여럿이다. 이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금융자산 과세 제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개편안을 심의·결정하는 과정도 그만큼 시간이 많이 걸릴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발표된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의 ‘재정개혁 보고서’도 국민의 예측 가능성과 세제 안정성 유지를 위해 제도 증권거래세 관련 개편 시기를 2022년 이후로 하라고 권고했다. 강병구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인하대 교수)은 "증권거래세만 떼어서 판단할 사항이 아니다. 제도 개편이 금융시장, 주식 시장에 미치는 여러 요인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세수 둔화 전망도 걸림돌
결국 현재 가능한 정책 옵션은 증권거래세를 선제적으로 인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게 정부 내 기류다. 증권거래세로 인한 세수 전망치가 이미 올해 세입예산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올해 중 증권거래세 세율 인하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세입예산을 수정하는 추가경정예산편성을 해야 한다.
게다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복지지출 증가로 세출은 급격히 늘어나는 데 경기 둔화로 세수가 쪼그라들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도 증권거래세 개편을 가로막고 있는 난관이다.
정부 내에서는 벌써부터 ‘세수결손(세수가 당초 전망을 밑도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재부는 2019년 국세 세입이 299조3000억원으로 전년(293조6000억원)보다 5조7000억원 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부동산 경기 활황으로 큰 폭으로 늘었던 양도소득세를 비롯해 소득세가 줄지만, 법인세(79조3000억원)가 8조4000억원가량 늘어날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지난해 4분기 상장사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0.0% 줄어드는 등 기업 실적이 급격히 악화된 상황이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법인세의 9~10%를 삼성전자가 내고 있는데, 작년 말부터 반도체 성과가 좋지 않았고 올해도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세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증권거래세는 작년에 6조2000억원이 걷혔고, 올해는 4조5000억원이 걷힐 것으로 기재부는 예상했다. 올해의 경우 국세 수입의 1.5% 수준이다. 유가증권시장 기준 거래대금의 0.3%(농어촌특별세 0.15% 포함)인 거래세를 절반으로 낮춘다고 하면 2조2500억원의 세수가 줄어드는 것이다. 문제는 이 줄어드는 세수를 어디서 메꾸느냐다.
기재부 안팎에서는 "증권거래세 인하가 내수 부양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일시 인하 명분도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각종 경제활성화 사업 재원 마련방안에 머리가 아픈 상황인데, 세수까지 줄이라는 이야기는 난감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