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조원 쏟아붓고도 양극화 더 심화…참담한 '소·주·성' 성적표

입력 2019.02.21 16:32 | 수정 2019.02.21 16:35

文정부 출범 후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54조원 투입
최저임금탓 일자리 줄면서 저소득층 근로소득 급감
대기업 근로자 등 고소득층은 소득 증가 사상최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깃발을 내건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복지 예산을 146조원 규모로 편성했다. 전년대비 16조원 이상 늘어난 금액이다. 소득주도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도입 등을 위해 증액된 예산은 9조6000억원 이른다. 최저임금 16.4%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도입된 일자리안정자금 예산(3조원)을 합치면 12조원 이상의 정부 예산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위해 투입된 셈이다.

이를 포함해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추진된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투입된 정부 예산은 54조원에 이른다. 50조원 이상의 뭉터기 예산이 투입됐지만, 소득분배가 개선되기는커녕 더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정책 등 올 한해 경제정책 성과와 과제 등에 대한 생각을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소득층 소득만 늘어난 소득주도성장 성적표

21일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에 따르면, 소득 상하위 격차를 나타내는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47배로 4분기 기준으로 2003년 통계 작성 후 최대치를 나타냈다. 소득하위 20%인 1분위 소득이 사상 최대폭인 17.7% 감소한 반면, 소득 상위 20%인 5분위 소득은 사상 최대인 10.4% 증가하면서 격차가 벌어졌다.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끌어올리고, 정부가 각종 수당 등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저소득층의 소득을 확대하겠다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결과가 ‘부익부·빈익빈’이라는 역설적인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소득 1분위와 5분위 사이의 소득 양극화가 사상 최대 수준으로 악화된 것은 근로소득 격차 때문으로 분석된다. 작년 4분기 1분위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전년대비 36.8% 급감한 43만5000원에 불과한 반면, 5분위 근로소득은 전년대비 14.2% 증가한 688만5600원으로 조사됐다. 1분위와 5분위 사이의 근로소득 격차가 15배 이상 벌어진 셈이다.


2018년 소득 1분위와 소득 5분위의 근로소득 증가율 추이(단위: %, 통계청)
전문가들은 이 같은 근로 소득 격차를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보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력조정이 저소득층 일자리가 많은 서비스부문의 저숙련 직종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2018년 고용동향 등에 따르면, 음식·숙박업과 도·소매 판매업, 사업시설관리와 같은 ‘최저임금 인상 취약 업종’에서만 총 19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종사자 지위별로는 일용·임시직 취업자가 19만5000명 감소했다. 이로 인해 소득 1분위 중 무직가구 비중은 지난 2017년 4분기 43.6%에서 지난해 4분기 55.7%로 12.1%포인트(p) 급증했다.

반면 고소득층 취업자가 많은 업종에서는 일자리가 늘었다. 금융·보험업에서 4만6000개, 공공행정 등에서 5만2000개, 정보통신업 5만5000개씩 일자리가 늘어났고, 종사자 지위별로도 상용직 취업자는 34만5000명 증가했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전 통계청장)는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르면 고용주의 인건비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숙련도가 낮은 단순 일용직을 줄이거나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영세업체 종사자의 채용이 급격하게 줄어든다. 반면, 노조의 영향력이 강한 대기업과 공공부문 종사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임금 소득 증가 효과를 누리게 된다"고 했다. 이어 "2018년 소득부문 가계동향 통계는 이런 경향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저소득층 지원 확대"만 외치는 정부

전문가들은 올해에도 10.9% 인상된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분배 지표 등에 부정적인 효과를 나타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 13일 발표된 1월 고용동향에서도 서비스 부문의 저숙력 일자리가 크게 줄어드는 모습을 나타냈다.

1월 고용동향을 보면 음식·숙박업(-4만명), 도매 및 소매업(-6만7000명), 사업지원 및 임대서비스업(-7만6000명) 등 최저임금에 민감한 3대 업종에서만 취업자가 18만3000명 줄었고, 임시 일용직에서도 19만명 줄었다. 저소득층 취업자 비중이 큰 이 부문의 일자리 감소 추세가 멈추지 않는 한 1분위(소득하위 20%)와 2분위(소득하위 20~40%) 소득이 증가세로 전환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정부는 저소득층에 대한 각종 수당, 지원금 확대 등으로 소득분배 악화에 대응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 홍종학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등과 소득분배 관련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1분위 소득이 감소되고 5분위 배율이 높게 나타남에 따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저소득층을 위한 맞춤형 사회안전망 확충 패키지 사업들을 집행하고,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도 2020년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오는 4월부터 시작되는 소득하위 20% 대상 기초연금 지급액 인상(25만원→30만원), 오는 7월부터 시작되는 실업급여 보장성 강화, 근로빈곤층 대상 EITC(근로장려금) 지급대상 및 지급액 확대 등이 실시되면 소득분배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기초연금 확대에 11조원, 실업급여 확대에 7조원, EITC 등에 3조8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작년에 비해 각각 1조~2조원 가량 예산 증액됐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1분위 소득이 감소하고 5분위 소득이 매우 증가해서 소득불균형이 확대된 것은 악성 양극화가 광범위하게 악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보편적 복지’ 개념으로 추진되고 있는 현 정부 정책은 특정 취약 계층을 겨낭해서 지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분배효과를 오히려 약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정책 우선 순위와 수단 등이 조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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