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中企 월급날, 사장님도 직원도 한숨만 쉬었다

입력 2019.02.13 03:09

[오늘의 세상]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씁쓸

지난 8일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중소 제조업체 D사(社). 이날은 물건 포장용 비닐을 만드는 이 회사가 새해 임금을 적용한 첫 월급날이었다. 중소기업들은 매달 10일을 전후해 전달의 월급을 주는 경우가 많다. 월말 정산을 마친 거래처에서 납품 대금을 받은 뒤 인건비를 처리하기 때문이다.

정모(64) 대표는 이날 점심 식사를 마친 직원들에게 "이번 달부터 야근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1월치 월급을 정산해보니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지출이 너무 커졌다"며 "현재의 인건비를 유지했다가는 실적이 조금만 나빠져도 직원 월급 주려고 빚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정 대표의 '야근 중단' 이야기에 월급날이지만 회사 분위기는 침울했다. 야근은 시간당 임금이 낮 근무보다 1.5배인데 이게 사라지면 봉급이 줄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본래 2년 전만 해도 한 달 인건비가 1억2000만원 안팎이었는데 작년에 이게 1억5000만원대로 뛰었고, 올해 1월치는 1억7500만원이었다"며 "이런 상황이면 연간 인건비가 21억원에 달할 텐데, 더는 버틸 수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작년에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올랐을 때부터 주요 거래처를 돌며 '제품 단가를 올려달라'고 사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 대표는 "거래처 사장들이 '우리 직원 월급도 인상해야 하는데 어떻게 단가를 올려주느냐'고 반대로 하소연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지난해 말부터 수량이 적은 주문은 받지 않고 있다. 그는 "들어오는 주문을 마다한 것은 34년 사업을 하며 처음"이라며 "임금 부담을 줄이려면 야근을 줄여야 하고, 근무시간이 짧아지면 생산량이 감소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연이어 큰 폭으로 최저임금이 오르자, 중소기업 사장들 사이에선 "폐업하지 않으려면 사업 규모를 줄여 야근 수당을 최소화하거나 직원을 내보내거나 하는 수밖에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분이 처음 적용된 월급 지급을 앞두고 직원을 해고하거나 상여금을 없애는 사례도 빈발하고 있다.

경남 진주에서 인테리어업체를 운영하는 신모 대표는 올해 상여금을 없앴다. 작년에는 월급은 최저임금에 맞춘 160만원 정도였지만 휴가·설·추석 때 상여금을 줘, 연간으로는 총 2160만원 정도를 줬다. 신 대표는 "인건비를 더 줄 여력은 없는데 법은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며 "상여금을 안 주면 월급여를 180만원으로 올려도 연간 지급액은 작년과 똑같다"고 말했다. 실제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중소기업(300인 미만)의 직원 월평균 특별급여(상여금)는 21만7000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2.7% 줄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한 중소기업은 전체 직원 40여 명 가운데 직원 10명을 줄일 계획이다. 인건비를 더 줬다간 바로 적자가 나기 때문이다. 벌써 한두 명을 내보냈다. 나간 직원의 빈자리는 이 회사의 이모 사장이 대신 메우고 있다.

◇야근 줄며 얇아진 월급봉투

지난 11일 경기도 한 중소 세탁업체의 6년 차 작업반장 송영희(37)씨는 스마트폰 앱으로 월 급여를 확인하고는 "역시나 예상대로 급여가 줄었다"고 말했다. 그의 입금 내역에는 회사 이름 옆에 200여만원이 찍혀 있었다. 본래 이 회사의 월급날은 10일이라 주말이 시작되기 전인 8일에 급여를 받아야 하지만, 사장이 "돈을 못 구했다"고 해 사흘 늦어졌다.

송씨의 월급봉투가 얇아진 이유는 야근과 휴일 근무가 확 줄었기 때문이다. 송씨는 "작년에는 월급이 230만~250만원 정도였다"며 "기본급에다 매달 60시간 정도 야근과 16시간의 휴일 근무 수당까지 모두 포함한 금액"이라고 했다. 그는 "올해는 사장님이 야근을 아예 없애버려 기본급만 받다 보니 월급이 대략 50만원이나 줄어버렸다"고 말했다. 이런 월급 감소는 송씨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당장 새집을 구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다. 그는 월세 100만원짜리 아파트에 살며 나머지 130만~150만원으로 생활해 왔는데 더 이상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수중에 돈이 많이 들어올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이런 걱정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월급이 줄어든 직원들끼리 야간 알바라도 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월급 감소가 송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1~11월) 중소기업 종사자의 월평균 근로시간은 164.3시간으로 전년 동기보다 2.5시간 줄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중소기업의 열악한 현실을 무시하고 최저임금만 끌어올린다면 오히려 고용률이 하락해 근로자·사업주 모두 상황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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