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미⋅중 무역협상과 ‘조용한 외교’

입력 2019.02.09 10:00

"중국에서 사업하는 환경이 좀 더 공정해지지 않을까요." 베이징에서 만나는 한국 기업인들과 미⋅중 무역전쟁을 얘기하다보면 흔히 듣게 되는 ‘기대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협상 시한인 3월 1일 이전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담판을 짓겠다는 종전의 발언을 뒤집었지만 기대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올 1월초 베이징에서 차관급 협상이 열린데 이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대표와 류허(劉鶴)중국 부총리가 이끄는 대표단이 1월말 워싱턴에 이어 14~15일 베이징에서 협상을 이어갈 예정이서다. 앞서 11일부터 차관급 협상이 시작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 신년 국정연설에서 "중국과의 무역협상에는 불공정 교역관행을 끝내고, 고질적인 무역적자를 줄이고,미국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한 진짜 구조적인 변화가 반드시 포함돼야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중국이 비관세장벽을 세우고 자국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것도 불공정 관행이라고 비난해왔다.

미⋅중 협상 타결이 만들 중국 사업환경 개선은 미국 기업만을 위한 ‘전리품’이 아니다. 다른 나라 기업들도 공유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트럼프 대통령은 철저하게 미국 기업 입장에서 받는 불이익을 개선하는 쪽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하늘에서 비 내리기만을 기다리는 천수답(天水畓)농민처럼 미⋅중 협상 타결의 외부효과(떡고물)를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중 양국기업이 불이익을 함께 받는 사례를 발굴해서 ‘조용한 협공’을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국 공업신식화부는 지난 1월 18일 올해 첫 형식승인 예비공고를 웹사이트에 올렸다. 2253개 모델이 명단에 올랐다.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형식승인이 확정된다. 형식승인을 받아야 판매가 가능하다.

중국 자동차 업계에 정통한 소식통은 "미국 자동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가 형식승인을 신청한 하이브리드자동차의 배터리 생산기업으로 상하이GM이 적시돼 있는데 상하이GM은 배터리를 만들지 않는다"며 "미국에서 한국 기업의 배터리를 탑재해 팔고 있는 모델을 수입 판매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은 2년 넘게 보조금 제공은 물론이고 형식승인도 내주지 않아 판로까지 막은 현실을 감안한 ‘위장’이라는 것이다.

중국 배터리 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비관세장벽 탓에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배터리업체만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작년 5월 독일 벤츠의 중국 합작사인 ‘북경벤츠’가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형식승인을 획득한 것도 한국에 대한 개방 신호라기보다는 독일 기업의 민원이 주효했기 때문이라는 게 현지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한국의 전기차 배터리업체들은 2020년 이후 보조금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전세계 전기차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에서 ‘진검 승부’를 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투자 확대에 잇따라 나서는 배경이다.

하지만 중국 당국이 한국 배터리 탑재 차량에 형식승인까지 내주지 않는 정책이 지속되는 한 한국 기업은 경기장에 입장 자체를 할 수도 없다. 중국 당국은 특히 한국 기업의 기술이 앞선 삼원계 배터리의 화재 위험성을 들어 이를 사실상 보조금 대상에서 빼고 있다. 중국에서 토종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의 화재사건이 잇따르고 있지만 한국 배터리를 상대하는 것과는 달리 포용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미래 통신 인프라인 5G(5세대)통신장비 기술이 세계 최고인 화웨이(華爲)의 장비 배제 움직임을 두고 중국 외교부는 "개방의 도량과 포용의 태도를 가질 때 비로서 자신도 발전할 수 있다" "모든 국가가 중국 기업을 공정하고 평등하게 대우하기를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 배터리가 처한 어려움은 중국에서 개방의 도량과 포용의 태도를 보기 힘든 한 사례일 뿐이다.

사실 중국의 불공정 사업 환경에 노출될 가능성은 한국 기업이 미국 기업 못지 않게 크다. 미국은 지난해 중국의 1위 교역대상국이자 3위 수입 대상국이다. 한국은 중국의 3위 교역대상국이지만 1위 수입대상국이다. 우리 기업이 미국 기업 보다 중국에 더 많은 상품을 수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중국에 직접투자한 외국자본 중 중개지 성격의 홍콩과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한국은 46억 7000만달러로 대만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미국은 34억 5000만달러로 6위에 그쳤다.

한⋅미 기업이 글로벌 공급사슬로 엮인 현실은 중국 시장에서 불이익을 함께 받는 사례가 배터리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을 뒷받침한다. 미⋅중 무역협상이 우리에게도 유리한 쪽으로 타결시키도록 하는 ‘지렛대 외교’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한⋅미 동맹이닌까 한국의 이익도 배려해주겠지라고 막연히 기대하는 건 순진하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이익만이 영원하다"고 한 19세기 영국 정치가 파머슨터 경의 말을 떠올릴 필요도 없다.

물론 중국을 자극시킬 이유는 없다. 중국에서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이 한창일 때 중국 앞에서 작아지는 ‘조용한 외교’를 두고 적지 않은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이런 ‘조용한 지렛대 외교’는 필요해 보인다. 미⋅중 무역전쟁은 우리에게 경제 불확실성 증폭이라는 ‘위기’로 다가오지만 우리의 불이익을 줄이는 ‘기회’로 활용될 수도 있다. 우리 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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