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7인, 대통령 앞에서 하소연

조선일보
  • 이민석 기자
    입력 2019.02.08 03:07

    엔씨소프트 대표 "정부 지원책 나올때마다 시장 왜곡될까 우려"
    쿠팡 대표 "유니콘기업 탄생 어려운 건 정책의 불확실성 때문"

    문재인 대통령이 7일 벤처 기업 대표들과 청와대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참석 기업인들이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날 간담회에는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김범석 쿠팡 대표 등 대표적 벤처 기업인 7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택진 대표는 "정부 지원책이 있을 때마다 시장경제의 왜곡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우려하곤 했다"며 "정부가 지원을 하더라도 시장경제의 건강성을 유지시켜 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다른 나라는 자국(自國) 기업 보호를 위해 더 강고한 울타리를 만들고 있다. 이에 타국 기업들 진입이 어렵다"며 "하지만 우리는 거꾸로 해외 기업들이 (한국에) 들어오는 게 쉽고, 자국 기업들이 보호받기 어렵다. 정부가 좀 더 스마트해지면 좋겠다"고 했다. 김범석 쿠팡 대표는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기업이 많이 생기려면 외자 유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를 막는 것이 '불확실성'"이라며 "한국 시장이 작다는 편견, (정부) 규제의 폭과 해석이 자주 바뀌는 것이 주(主)원인"이라고 했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경쟁사들은 모두 글로벌 기업들인데 그들은 한국에서 다양한 혜택을 받고 있다"며 "인터넷망 사용료 등 세금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국내와 해외 기업들에 대한 법안이 동등하게 적용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간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기업들은 매년 수백억원에 달하는 망 이용료를 국내 통신 업체에 지불해 왔지만, 구글·페이스북 등 해외 인터넷 기업은 사실상 거의 내지 않아 역차별 논란이 불거졌었다.

    청와대서 간담회 -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청와대에서 ‘벤처 기업인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권오섭 L&P코스메틱 대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문 대통령, 김범석 쿠팡 대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청와대서 간담회 -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청와대에서 ‘벤처 기업인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권오섭 L&P코스메틱 대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문 대통령, 김범석 쿠팡 대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벤처 기업인들의 7일 청와대 간담회에선 '정부가 좀 더 스마트해졌으면 좋겠다' '반(反)기업 정서가 심하다' '규제 혁신이 시급하다'는 질책성 요구가 이어졌다. 경제계에선 "정부 눈치를 보는 대기업 총수들은 감히 못 했던 이야기들인데 벤처 기업인들이 속 시원하게 꺼내놓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송금 서비스 앱 '토스'를 개발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이날 "핀테크는 규제가 많아 외국 투자자들에게 설명하는 것도 시간이 걸린다"며 "그들에겐 한국 제도와 정책에 대한 구체적 데이터가 없다 보니 투자 유치 받는 게 어렵다. 규제 혁신이 서둘러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또 "주 52시간 근무 취지는 알겠지만 급격히 성장하는 기업에는 그것이 또 하나의 규제로 작용한다"며 "엄격한 관리·감독이 이뤄지는 곳에는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했다.

    배달 중개 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자본이 시장에 들어왔을 때 '스케일업(규모 확대)'이 중요하다"며 "(정부 주도의) 정책 목적 위주 펀드가 많은데 잘될 곳을 밀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권오섭 엘엔피코스메틱 대표는 "많은 청년이 취업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구직자와 기업을 이어주는 취업 방송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정선 마크로젠(생명공학기업) 회장은 "규제는 네거티브 규제로, 미래 지향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기업을 성장시켜보고 새롭게 창업하는 창업가들 입장에서 보면 아직도 여러모로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해당 부처들이 잘 살펴봐 달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청와대에서 열린 혁신벤처기업인 간담회에서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김 대표를 비롯해 네이버 이해진 창업자, 쿠팡 김범석 대표 등 국내의 대표적 벤처기업인 7명이 이날 간담회에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청와대에서 열린 혁신벤처기업인 간담회에서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김 대표를 비롯해 네이버 이해진 창업자, 쿠팡 김범석 대표 등 국내의 대표적 벤처기업인 7명이 이날 간담회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이어 "규제 샌드박스(규제 완화)를 통해 실적이 나온다면 국민도 규제 유무 차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으리라 본다. 자신 있게 기업 활동을 해달라"고 했다.

    벤처 기업인들은 문 대통령에게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국민이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날카로워지고 있다"며 "반(反)기업 정서가 심해지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반기업 정서는 빠른 시간 안에 해소되리라 본다"며 "초기 큰 부를 이룬 분들이 과정에서 정의롭지 못한 부분이 있지만 최근 기업들은 투명한 경영으로 여러 성취를 이뤘다"고 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정부 지원책이 있을 때마다 시장경제의 왜곡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우려했다'고 한 데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정부뿐만 아니라 역대 모든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을 말한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업인들이 제기한 문제점들에 대해 조만간 피드백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정우 청와대 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은 설 연휴 이후 '경제 챙기기' 일정을 더 폭넓고 깊이 있게 이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8일 전국 시·군·구청장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지역 경제 활력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또 다음 주엔 부산에서 열리는 '스마트시티 전략보고회'에 참석한다. 자영업계·소상공인을 청와대에 초청해 자영업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도 잡혀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경제 문제가 시급한 만큼 대통령이 경제 행사에 직접 참석하는 횟수를 늘려 구체적인 정책 추진 과정을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대통령이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해 관련 일정을 늘리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기업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규제 개혁 등이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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