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0일 오후 전북 전주시내 최대 번화가인 서부신시가지. 홍산중앙로를 따라 일본식 주점, 아이스크림 가게, 카페 등의 간판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대부분 내부가 텅텅 비어 있었다. 건물마다 세입자를 찾는 현수막이 겨울바람에 나부꼈다. 지역 공인중개사는 한 1층 주점 자리를 가리키며 "여긴 5개월 넘게 공실"이라고 했다. 이 일대에 술을 납품하는 신일주류상사 직원 김모씨는 "여기는 2~3년 전만 해도 술이 하룻저녁에 두어 트럭씩 들어갔는데, 요즘은 한 트럭도 안 된다"고 말했다. A 간판 제작 업체 대표는 "간판 주문도 1년 새 반 토막 났다"고 했다.

#2. 지난 29일 오후 서울 홍익대 앞 상권의 큰길 중 하나인 '어울마당로'를 따라 상수역 방면으로 내려가자 양쪽에서 1층 빈 상가들이 나타났다. M공인중개 관계자는 "최근 1년 새 공실이 생기기 시작했고, 20평 기준 300만원이던 월세가 200만원대 중반까지 내렸지만 계약이 잘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 도심 대로변도 - 30일 서울 종로에 있는 한 상가에 임차인을 구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경기 불황 탓에 최근 종로, 강남 등 서울 핵심 상권에서도 비어 있는 상가가 늘고 있다.
지방은 건물이 통째로 - 충북 음성군의 한국가스안전공사 인근에 있는 건물 1·2층이 통째로 비어 있다. 정부가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시켰지만 상권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

상가가 텅텅 비어가고 있다. 2017년 1분기 9.5%이던 공실률(이하 100평 이상 중·대형 상가 기준)이 작년 1분기엔 10.4%로 올랐고, 4분기엔 10.8%로 2013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이태원 21.6%, 청담동 11.2%, 도산대로 10%, 동대문 14.6% 등 불황을 모르던 핵심 상권에서조차 두 자릿수 공실률이 흔하게 나온다.

소비 심리 냉각에 따른 자영업 창업 기피, 인건비 급등, 지방 제조업 몰락, 소비 방식의 변화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한 상가주택 건물주는 "권리금이 없어지고 임대료를 아무리 낮춰도 장사를 하려는 사람이 아예 없다"고 말했다.

◇임대료 내리고 권리금 사라져도 공실

지방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경북은 18.8%로 전국 시·도 가운데 공실률이 가장 높다. 한때 '공장 생산직 근로자들도 양주를 먹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활황이던 구미산업단지 공실률은 개별 상권 가운데 최고치인 33.1%를 기록했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삼성·LG 등 대기업의 공장이 수도권으로 옮겨간 영향"이라고 했다. 전북 15.2%, 충북 14.8%, 충남 14.2% 등 다른 지방도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빈 상가가 늘면서 임대료는 내리고 있다. 전국 중·대형 상가 임대료는 1년 새 0.2% 내렸다. 지방에서는 충남(-2.6%), 경남(-1.8%), 경북·울산(-1.7%) 등 9개 시도가 내렸다. 서울도 강남권과 영등포권·신촌권 임대료는 하락했다.

장사를 하려는 사람이 없다 보니 상인들끼리 주고받는 '권리금'도 재작년 4777만원에서 작년 4535만원으로 줄었다. 권리금이 아예 없는 점포의 비율도 재작년 말 29%에서 작년 30.5%로 늘어났다.

◇불경기·높은 인건비, 온라인 쇼핑 등 복합 작용

상가 공실 급증의 배경에는 자영업의 몰락이 있다. 소상공인진흥공단이 집계하는 '소상공인 경기체감지수'는 작년 10월 72.7에서 12월 62.1로 급락했다. 경기전망지수 역시 93.7에서 86.8로 떨어졌다. 두 지수 모두 100보다 낮으면 긍정적인 응답보다 부정적 응답이 많다는 뜻이다. 국내 자영업자 수는 작년 말 기준으로 1년 사이 9만4000명 줄었다. 상가정보연구소에 따르면 전국 자영업자 폐업률은 2.5%로 창업률(2.1%)을 앞질렀다.

자영업 몰락의 원인은 다양하다. 우선 소비 심리 냉각이다. 통계청의 소비자심리지수는 작년 1월 110에서 이달 98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은 급등했다. 최저임금은 2년 새 29% 올랐다. 영세 자영업자는 일반 기업보다 최저임금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외식업체는 매출의 24.7%를 인건비로 지출한다는 정부 조사도 있다.

구조적 문제도 있다. 예컨대 동대문은 과거 전국 각지 의류, 잡화 소매업자들이 모여들던 '쇼핑의 메카'였지만 최근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면서 오프라인 매장 수요가 급감했다. 그 여파로 2013년 1분기 5.8%였던 동대문 공실률이 작년 4분기에는 14.6%로 올랐다. 이상혁 상가정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금 자영업 경기는 바닥 밑으로 내려간 최악의 상황"이라며 "정부가 경기 활성화 정책을 펴고는 있지만 체감하기 어렵다는 게 현장 목소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