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 없는 50·60대 동남아 가봐라" 靑경제보좌관 발언에 분노한 재계

조선비즈
  • 한동희 기자
    입력 2019.01.28 13:32 | 수정 2019.01.28 13:41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 가서 맨땅에 박치기하라고 장려하는 게 청와대 방침입니까. 50~60대가 할일 없이 산이나 다니게 된 경제 상황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집니까. 정말 손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납니다." 국내 중소기업 대표 정모(61)씨의 얘기다.

    김현철 신남방특별위원회 위원장(청와대 경제보좌관)의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촉발점은 김 위원장이 2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CEO 조찬 간담회 강연에서 한 말이었다.

    김 위원장은 "지금 50~60대는 한국에서 할 일 없다고 산에 가거나 SNS(소셜네트워크)에서 험악한 댓글만 달지 말고 동남아, 인도로 가야 한다"며 "박항서 감독도 (한국에서) 구조조정되고 베트남으로 건너가 인생 이모작 대박을 터뜨리지 않았나"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우리 기업들의 아세안(ASEAN), 인도 경제시장 진출을 돕는 '신남방(新南方) 정책'을 홍보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김현철 신남방특별위원장이 28일 대한상의에서 연 CEO조찬간담회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대한상의 제공
    재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실상을 모르고 국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한 발언"이라는 분노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국내에서 고용 기회를 줄이는 정책을 써오던 정부가 결국 국민들에게 해외로 탈출해서 각자도생하라는 얘기"라며, "이는 현재 베네수엘라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경제 정책을 고쳐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아줘도 모자랄 판에 무턱대고 나가라는 것은 '인지부조화'"라고 비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부가 본인들의 책무를 망각한 안하무인적 발언을 한 것"이라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김 위원장의 말대로 50~60대가 할일이 없게된 건 우리 경제·사회 구조가 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구조기 때문입니다. 50~60대는 20대 자녀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어 늙어서까지 자녀를 부양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은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세대에 대해 모욕적인 발언을 한 것입니다. 만약 유머였다면 감각이 없는 것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사립대 사회학과 A교수는 "50대의 민심이 돌아선 데 대한 청와대의 불만이 은연중에 표출된 것"이라고 봤다. A교수는 "50대는 문재인 정부 당선에 큰 역할을 했지만, 생활경제에서 기대했던 성과가 안나오자 실망하고 여권에 등을 돌리고 있다"며 "청와대가 이들을 '할 일 없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하는 건 ‘배신자’라며 윽박지르는 꼴"이라고 했다.

    동남아 국가에서 무역업을 하는 홍모(32)씨는 "동남아 국가들이 성장성이 좋다고 해서 장밋빛 일색인 것은 아니다"며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이해가 아직 낮은 상황에서 무턱대고 덤벼들었다가는 실패하기 십상"이라고 했다.

    이날 김 위원장이 현 정부가 반(反)기업적이라고 보는 시각에 대해 내놓은 해명도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김 위원장은 "저를 아는 기업인들은 절대 반기업 정부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며 "왜냐면 제가 가장 기업인들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이재용 삼성 부회장도 평양 갈 때 제 옆에 왔지 않습니까"라고 덧붙였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했던 재계 관계자는 "현 정부에 대해 반기업적이라는 불만이 나오는 것은 시장의 자유·자율에 대한 존중이 없는 정책들 때문"이라며 "청와대 보좌관이 기업인들을 많이 알고 있고 이재용 부회장을 동행시킨 것이 무슨 연관인지 모르겠다. 자화자찬에 지나지 않은 발언"이라고 했다.

    김현철 위원장의 발언이 논란을 빚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에도 한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우리 경제가 4~5% 성장률을 보이지 못한다고 위기라고 하는 것은 전혀 경제를 모르는 것"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당시 경제 전문가들은 "4~5%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갑자기 비현실적 수치를 제시하며 현재의 '경제 참사'를 정당화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과거 정권 평균 성장률은 물론 잠재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의 본질인데 엉뚱한 논리로 여론을 호도하려 한다"고 했다.

    김 보좌관은 작년 11월 열린 토론회 축사에서도 "(경제) 위기론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개혁의 싹을 미리 자르려는 사회적 분위기"라고 했었다. 그러나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김 보좌관 발언이 끝난 뒤 "위기의식이 있다는 것은 위기를 대처해 모면한다는 것"이라며 "정부에 대한 불신이나 정책 흔들기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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