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閑담] 시민단체 목소리만 들리는 국민연금 운용위원회

조선비즈
  • 전준범 기자
    입력 2019.01.25 07:00

    8차례 회의록 분석…참여연대 혼자 전체발언의 24% 차지

    현 정권 출범 이후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이 정부 정책을 좌지우지한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국민 노후자금 637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의 상황은 어떨까요. 국민연금 기금운용에 관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 내부에서도 비슷한 말이 종종 흘러나오는 걸 보면 특정 집단의 입김이 세긴 센 모양입니다.

    전·현직 기금위 참여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지침) 도입을 한창 논의하던 2018년에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특히 커졌다고 합니다. 현 정권 최고 실세로 거론되는 참여연대가 지난해부터 기금위에 합류해 회의 분위기를 주도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10월 5일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18년도 제7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 장관 뒤로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금운용체계 개편에 반대한다며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 보건복지부 제공
    직접 회의장에 들어가보면 좋겠지만 기금위는 비공개로 진행돼 아쉬운대로 회의록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각 위원의 발언 횟수가 회의 참여의 적극성과 꽤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학생이 발표도 많이 하듯 말입니다. 반대로 한 집단의 대표로 회의에 참석해 입도 뻥긋 안하는 위원을 파악할 수도 있을테고요.

    2017년 이후 기금위가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의결권 행사지침 개정, 대한항공(003490)사태 등을 안건으로 상정해 논의한 8번의 회의 기록을 모아 각 위원의 발언 횟수를 세어봤습니다. 대상은 사용자(재계) 대표 3명, 근로자 대표 3명, 지역가입자 대표 6명으로 한정했고 정부측 위원들은 제외했습니다. ‘네’ ‘맞아요’ 같은 짧은 발언 기록도 카운팅에서 뺐습니다.

    집계 결과를 보니 발언 횟수는 사용자 대표 63회, 근로자 대표 45회, 지역가입자 대표 117회로 나타났습니다. 사용자 대표들 중에서는 한국경영자총협회 소속 위원의 발언 횟수가 37회로 최다를 기록했습니다. 반대로 중소기업중앙회는 겨우 2회 발언에 그쳤습니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안에 중소기업인들의 목소리는 거의 담기지 않았다고 해석하면 무리일까요.

    초반에 언급한 참여연대의 존재감은 지역가입자 대표 6명의 발언 횟수를 세분화할 때 확연히 드러납니다. 참여연대 소속 위원의 발언 횟수는 무려 54회로 집계됐습니다. 지역가입자 대표 전체 발언의 절반 가까이(46.15%)를 참여연대 혼자 책임진 것입니다. 비교 범위를 모든 조사대상 위원으로 확대해봐도 참여연대의 발언권 장악력은 24%로 단연 돋보입니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논의 과정에서 나온 모든 제안·설명·항의·질문의 4분의 1이 참여연대 위원 입에서 쏟아졌다는 의미입니다.

    조선DB
    더구나 참여연대는 2018년부터 기금위에 자리를 얻었습니다. 2017년까지는 참여연대 자리에 보수 성향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 소속 위원이 앉아있었습니다. 민주노총 등 근로자 대표 3명이 참여연대 위원과 힘을 합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사대상 기금위 위원 12명 가운데 4명이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에 관한 전체 발언권의 44%를 차지한 셈이기도 합니다. 반면 지역가입자 대표 중 농협중앙회와 수협중앙회에서 온 위원들은 사용자측 중기중앙회처럼 회의 내내 좀처럼 입을 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물론 회의 분위기를 주도한 집단의 목소리가 정부 정책에 반드시 더 많이 담긴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정부가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안을 발표한 후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는 "겨우 이 정도 수준으로 주주를 우롱하는 적폐 기업들을 잡을 수 있겠느냐"는 불만이 쏟아진 바 있습니다.

    그러나 현 정권 들어 시민단체와 노조의 위력을 톡톡히 체감하고 있는 재계 관계자들은 걱정이 태산입니다. 사용자 대표로 기금위 활동을 한 경험이 있는 한 재계 전문가는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을 구호로 내걸고 출범했다는 사실 자체가 재계 입장에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는 요인인데, 그 정부의 실세로 불리는 단체가 기금위에 등장해 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며 "적진 한 가운데 떨어져 외로운 전투를 벌이는 기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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