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의 꽃이 된 '헬스테크'… 한국은 규제에 발목

입력 2019.01.12 03:07

주목할 만한 신기술로 떠오르다
요람이 아기 위급 상황 알리고, 거울이 건강 상태 수시 체크… 500개 업체서 제품·기술 선봬

"입술을 내밀면 앞으로 갑니다. 웃으면 오른쪽으로 돌고요."

9일(현지 시각)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19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중앙홀.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 부스에 전시된 휠체어에 앉자 직원이 몇 가지 표정을 알려줬다. 잠시 뒤 휠체어에 달린 카메라를 향해 웃거나 한쪽 입술을 올리는 표정을 짓자 휠체어가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이 휠체어는 인텔이 개발한 '표정 제어 휠체어'로 카메라가 표정을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의도를 읽고 움직인다. 인텔 관계자는 "인텔은 1997년부터 사지 마비 장애인 과학자인 고(故) 스티븐 호킹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위한 휠체어를 개발해왔다"면서 "호킹의 휠체어는 고성능 컴퓨터가 탑재된 고가 제품이었지만, AI의 등장으로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는 표정 제어 휠체어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이 바꾼 헬스 케어

CES를 주관하는 미국소비자가전협회(CTA)는 올해 CES에서 주목할 기술로 '헬스 테크(건강 기술)'를 꼽았다. AI·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이 헬스케어(건강관리)의 미래를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CES에 헬스 테크 관련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인 기업도 500여곳에 달했다.

미국 스타트업(초기 창업 기업) 미쿠는 아기 요람을 모니터링하는 기기를 선보였다. 요람 위에 기기를 설치하면 아기의 심박수와 호흡을 체크하고 AI로 분석해 아기가 울거나 엎어져서 숨을 못 쉬는 위급 상황을 부모의 스마트폰으로 알려준다. 미쿠 관계자는 "혼자 사는 노인이 집에서 넘어지거나 움직임이 없는 이상 징후도 포착할 수 있다"고 했다.

9일(현지 시각) CES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서 한 관람객이 인텔의 표정 제어 휠체어를 체험해보고 있다(위 사진). 이 휠체어는 AI가 얼굴 표정을 분석해 작동한다. 아래 사진은 파나소닉의 거울형 건강 측정기 앞에 선 관람객이 자신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있는 모습.
9일(현지 시각) CES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서 한 관람객이 인텔의 표정 제어 휠체어를 체험해보고 있다(위 사진). 이 휠체어는 AI가 얼굴 표정을 분석해 작동한다. 아래 사진은 파나소닉의 거울형 건강 측정기 앞에 선 관람객이 자신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있는 모습. /라스베이거스=박건형 특파원
일본 파나소닉의 거울형 기기는 앞에 서 있기만 하면 카메라와 센서가 사람의 심박수와 체온 등을 측정해 화면에 표시해준다. 부정맥 같은 위험이 감지되면 의사와 연결해준다. 파나소닉은 "10만번에 한 번 오차가 생기는 정확도"라며 "신원 식별 같은 보안 분야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고령화 시대를 대비한 아이디어도 대거 등장했다. 미국 필로는 노인을 위한 '복약 도우미 기기'를 전시했다. 이 기기는 28회분의 약을 종류와 순서를 구분해 미리 채워넣을 수 있다. 정해진 시간마다 알람이 울리고 약이 기계 아래로 나온다. 약을 먹지 않으면 기기가 알아서 자녀의 스마트폰으로 영상 통화를 연결한다. 미국은퇴자협회(AARP)가 선보인 가상현실(VR) 서비스는 과거의 사진이나 영상을 VR로 생생하게 보여주며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기억력 저하를 늦춰준다.

기술력 있어도 규제에 막힌 한국

올해 CES에 등장한 헬스케어 제품

헬스 테크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은 아직 뚜렷한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과도한 규제와 복잡한 인허가 절차로 인해 기업들이 상용화에 도전할 기회조차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CES에 부스를 차린 한국 스타트업 네오펙트의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는 신체 일부가 마비된 사람들을 위한 재활 기기로 전시회 내내 큰 관심을 모았다. 장갑을 끼고 TV와 연결하면 집에서 간단한 게임을 하면서 재활운동을 할 수 있다. 네오펙트 관계자는 "재활 상태를 의사에게 보내서 점검하고 새로운 처방을 받으면 매번 병원을 찾지 않아도 된다"면서 "하지만 재활 상황을 전송하고 처방받는 원격 의료는 한국에선 법으로 금지돼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DNA) 분석을 통해 정확하게 진단하고 발병 가능성까지 예측하는 유전자 진단 서비스도 여러 기업이 선보였다. 미국 스타트업 오리진은 입안을 가볍게 긁은 면봉만 있으면 걸릴 위험이 높은 질병과 이를 막을 수 있는 운동법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시연했다. 하지만 유전자를 이용한 질병 진단이나 예측 기술은 한국에서는 의료 행위라는 이유로 일반 기업이 서비스할 수 없다. 김영수 연세대 약대 교수는 "헬스 테크 분야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고 있는데 한국은 여전히 각종 인허가와 규제에 가로막혀 시기를 놓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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