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관승의 리더의 여행가방] 미니정보: 프라하와 유대인

조선비즈
  • 손관승·언론사 CEO출신 저술가
    입력 2019.01.08 05:00

    카프카는 1883년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카프카의 아버지 헤르만은 보젝이라는 남보헤미아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유대인 거주 제한이 해제되자 프라하로 이주해 귀부인용 장신구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상인이었다.

    그는 프라하의 유대인 게토인 요제프슈타트(Josefstadt)의 가장 끝자락, 즉 구시가와 바로 마주한 곳에 집을 얻어 그곳에서 장남 카프카를 낳았다.

    1910년의 프란츠 카프카. 독일어를 쓰는 프라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사진=위키피디아
    약 1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프라하의 유대인 공동체는 유럽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유대생활 중심지였다. 10세기 무렵부터 프라하로 이주하기 시작한 유대인들은 1851년 게토를 프라하의 제 5구역으로 편입시켜 ‘요제프 구역’(Josevov)으로 명명하면서 크게 확장되었다. 그 이전까지 7천명에 불과했던 프라하의 유대인은 4만 명 가량으로 급증했다.
    2차 대전을 거치면서 현재 프라하의 유대인 인구는 약 1,300 명가량으로 크게 줄었다. 다만 유대박물관, 유대인 묘지, 시너고그(synagogue) 등에서 그 자취를 확인할 뿐이다.

    구(舊) 시너고그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유대인 건축물로 기록되며, 5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대인 묘지에는 20만 구 이상의 사자(死者)의 묘비석이 여기저기 엉켜있다. 카프카도 이곳에 묻혀있다.

    프라하 유대인 묘지에 묻혀있는 프란츠 카프카./사진=손관승
    1924년 그가 사망한 이후 정부나 시당국으로부터는 공식적으로 대접받는 게 거의 없다. 프라하에는 ‘카프코바’(Kafkova)라는 카프카를 기리는 이름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작가 카프카 거리가 아니고 조각가 보후밀 카프카의 생전 업적을 기리는 곳이다.

    구시가지 시청 건물 앞에 있는 카페 ‘밀레나’(Milena)는 프라하 카프카의 구심점이다. 프란츠 카프카 학회가 바로 이곳에서 1989년 11월 설립되어 약 800여명의 회원을 헤아린다. 그러나 정작 카프카가 생전에 애용했던 곳은 카페 ‘슬라비아’(Slavia)였다.

    작가이자 공산주의 붕괴 후 초대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이었던 바츨라프 하벨의 단골 카페로 유명하다.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이라는 그림이 그려진 장소가 가장 인기가 있는데, 하벨 대통령의 단골 자리였다.

    카프카가 애용했던 카페 슬라비아의 실내 모습./사진=위키피디아
    세계적으로 손꼽힐 정도로 맛있는 맥주 맛에 가려져 있지만 사실 프라하는 파리, 빈, 베네치아와 더불어 대표적인 카페 문화의 도시였다. 슬라비아뿐 아니라 '아르코'(Arco), ‘유니언’(Union) 같은 카페도 프라하 지식인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프라하는 베를린과 빈과 함께 독문학의 3각축을 이루는 특이한 장소였다. 카프카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카프카의 친구이자 그 자신도 유명한 작가였던 막스 브로트, 프란츠 베르펠,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같은 사람들이 프라하 독일어권 문단의 중심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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