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만원 대출 퇴짜 맞은 청년, 지금 1600억 움직입니다

조선일보
  • 강동철 기자
    입력 2019.01.08 03:08

    [오늘의 세상]
    [실패를 이긴 벤처창업가들] [2] 낮은 신용등급에 대출 막혀 신개념 핀테크 창업한 김성준

    2014년 12월 8일. 미국에서 귀국한 김성준(34) 렌딧 대표는 서울의 한 은행 대출 창구에 앉았다. 당시 김 대표는 미국에서 패션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을 창업했다가 운영 자금이 떨어지자 3000만원을 빌리려 한국까지 온 것이다. 하지만 은행 대출 담당 직원은 김 대표에게 "신용 등급이 6등급이기 때문에 신용 대출(금리 4.5%)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장기간의 미국 생활 탓에 한국에서 금융 거래 내역이 없어 신용 등급이 떨어진 것이었다. 다음에 찾아간 저축은행에서는 금리 22%에 1500만원 대출을 제안했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종로타워에 있는 핀테크 스타트업 렌딧의 사무실에서 김성준(앞줄 오른쪽에서 둘째) 대표와 직원들이 활짝 웃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종로타워에 있는 핀테크 스타트업 렌딧의 사무실에서 김성준(앞줄 오른쪽에서 둘째) 대표와 직원들이 활짝 웃고 있다. 김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했다가 실패를 겪고 대출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상황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려 렌딧을 창업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지난달 26일 만난 김 대표는 "대출 금리가 4.5%에서 22%로 치솟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며 "동아줄로 생각해 찾아간 은행에서 대출을 거절당한 경험이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합성어) 스타트업 렌딧의 창업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렌딧은 빅데이터·머신러닝(기계 학습) 기술을 활용한 핀테크 스타트업이다. 신용 등급에 따라 일괄적으로 금리를 제공하는 대신 대출 신청자의 신용 정보 250여 종 등 빅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P2P(peer to peer·투자자와 대출자를 직접 연결)로 맞춤형 금리 대출을 해준다. 누적 대출액은 1600억원이 넘고 직원 수는 80여 명이 넘는다. 기업 가치는 1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한 차례의 중단, 한 차례의 실패

    그의 성공 이면(裏面)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맛본 실패가 있었다. 김 대표는 렌딧이 세 번째 창업이다. 첫 창업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재학 당시였던 2009년 설립한 '2분의 1 프로젝트'였다. 이 회사는 식음료 회사와 손잡고 제품의 절반만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나머지는 기부하는 사회적 기업이었다. 하지만 수익 모델이 없어 사업을 중단했다. 김 대표는 "사회적 기업은 향후 다시 시작할 계획"이라며 "실패가 아닌 중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핀테크 스타트업 렌딧
    이후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떠난 그는 1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2011년 스타일세즈를 창업했다. 사업 아이디어를 들은 지도 교수가 창업을 해보라고 권유한 게 계기가 됐다. 스타일세즈는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 가장 많이 공유·언급된 의류, 화장품 등을 머신러닝 기술로 찾아 사용자에게 추천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김 대표는 "당시 투자금을 150만달러(약 17억원) 넘게 받았고 사용자도 30만명까지 늘었다"며 "세계적인 사진 공유 서비스인 핀터레스트에서 400만달러(약 45억원)에 인수 제안도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핀터레스트보다 우리가 더 잘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계는 금방 찾아왔다. 수익을 위해 상품 추천에서 직접 판매로 전환했지만 고객들의 불만만 커졌다. 고객들이 스타일세즈에서 구매하면 배송료 9달러를 부담해야 했고, 배송 기간도 일주일 넘게 걸렸기 때문이다. 이때 아마존은 이미 유료 회원에게 배송비 없이 2~3일 이내에 물건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이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직원 40여 명 규모까지 성장했던 스타일세즈는 2014년 말 김 대표를 포함해 3명밖에 없는 회사로 쪼그라들었다. 김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서 직원들과 숙식을 해결하며 일했다. 끼니를 때우기 위해 매일 샌드위치를 하나씩 사 반으로 가르고 한쪽은 점심, 나머지 한쪽은 저녁 식사로 해결했다. 대출로 아파트 월세라도 내겠다는 생각에 한국으로 왔지만 이마저 거절당했다.

    실패에서 발견한 핀테크 아이디어

    김 대표는 "은행 대출은 거절당하고 저축은행은 턱없이 높은 금리를 제안하는 것을 겪으면서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이용해 투자자와 금융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 적정한 금리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핀테크 스타트업인 렌딩클럽이 나스닥 증시에 상장하며 핀테크 산업이 급성장하는 시기였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았다. 스탠퍼드대 동문이었던 박성용 공동 창업자와 의기투합해 2015년 3월 렌딧을 창업했다. 렌딧은 창업 한 달 만에 벤처 투자 업체인 알토스벤처스로부터 15억원을 투자받고 5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대출 신청자에 대한 방대한 빅데이터를 수집·분석해 개개인에게 맞는 적정 대출 금리를 제공해주는 것이 핵심 서비스다. 김 대표는 "스타일세즈의 실패를 겪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를 본 것"이라며 "실패에 주저앉지 않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으로 사업에 몰두해 재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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