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인사이더]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대표 “꼰대 안 되는 게 목표죠”

조선비즈
  • 박원익 기자
    입력 2019.01.07 06:00

    "꼰대 안 되는 게 개인적인 목표에요. 투자자에겐 귀를 열고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창업가가 ‘이게 문제에요. 이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고 했을 때 빙의가 잘 돼야 하거든요."

    초기 투자 전문 벤처캐피털(VC) 카카오벤처스를 이끄는 정신아 대표에겐 독특한 습관이 있다. 시간을 정해두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 다양한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다. 버스 정류장, 지하철, PC방.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정 대표는 이를 ‘혼자만의 필드 공부’라고 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늙는다"며 웃었다. 사람들의 고민이 무언지, 어떤 불편·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요즘 유행이 뭔지 파악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는 2007년 이베이(eBay Asia Pacific)에서 동남아 시장 개척 업무를 담당했던 때부터 이 습관을 이어왔다.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대표. /박원익 기자
    "다른 이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 문제)에 공감이 잘 안 되면 자신을 의심해 봐야 해요. 창업가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자기 인생을 건 사람들이거든요. 열 번 중 다섯 번 공감 못 한다면 제가 잘못된 거죠."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하는 정 대표의 태도는 경력에 오롯이 반영됐다. 보스턴컨설팅그룹 컨설턴트에 머물지 않고 이베이·NHN에서 신사업 개발에 도전했고, 2013년 12월 안정적인 대기업을 박차고 케이큐브벤처스(현 카카오벤처스)에 합류해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투자라는 낯선 길을 걸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2012년 설립한 카카오벤처스는 정 대표 합류 후 펀드 6개(총 2046억원 규모)를 운용하는 투자회사로 성장했다. 넵튠(게임), 두나무(암호화폐), 왓챠(콘텐츠), 루닛(AI) 등 작년까지 140여개 스타트업에 투자, 한국 벤처 생태계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말 단독 대표 체제 전환 후 더 큰 청사진을 준비 중인 정 대표를 판교 사무실에서 만났다.

    ◇ 미래 앞당길 스타트업 동반자…김범수 의장 "우리가 판 만들자"

    -카카오벤처스 초기 멤버로 합류했다.

    "임지훈 당시 대표를 제외하면 회사의 첫 번째 파트너였다. 새로운 파장을 일으키는 벤처 투자 회사를 만들어 보자는 마음이었다. 초기 투자라는 게 너무 재밌더라. 막 생겨난 회사들이라 투자자들이 발로 뛰며 도울 일이 많았다. 재밌어서 열정을 잃지 않고 달려왔고 벌써 5년이 됐다."

    -원래 벤처 투자에 관심이 있었나.

    "이베이에서 근무할 때 일본, 태국 시장 개척하는 일을 했는데 재밌고 보람 있었다. 컨설팅 회사에서도 신규 사업, IT 프로젝트 할 때 즐거웠다. 사실 VC에 대해선 잘 몰랐는데, 주변에서 내가 벤처 투자 좋아할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

    카카오벤처스가 투자한 스타트업들. 카카오벤처스는 투자한 스타트업을 패밀리라고 부른다. /홈페이지 캡처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큰 자본 투입해 이익 남기는 후기 투자는 파이낸스(금융)에 가깝지만, 초기 투자는 맨땅에 헤딩하는 일이다. 틀에서 벗어난 사고를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기에 합류를 결심했다.

    특히 김범수 의장의 영향이 컸다. ‘우리나라에 CEO·창업 스토리가 많아야 한다. 우리가 그런 판을 만들자’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가슴이 떨렸다."

    -최근 단독 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어떤 변화가 있나.

    "해야 할 일이 많이 생겼다. 정말 바쁘게 지내고 있다. 회사 방향성, 향후 전략 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고 내실을 다지는 시간도 가졌다.

    우선 미션을 새로 정립했다. 원래 ‘스타트업의 베스트 프랜드’였는데 ‘미래를 앞당길 혁신에 함께 하는 든든한 동반자’로 바꿨다. ‘필요한 미래를 앞당기는 개척자’로 창업가를 정의하고 그들이 성공할 이유를 찾아내 든든히 지원한다는 뜻이다. 미래를 앞당기려면 인사이트(insight·통찰)를 갖춰야 한다. 사업이 성공할 이유를 빠르게 파악하고, 가치를 더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평판·브랜드 관리, 촘촘한 투자처 발굴, 인사이트에 기반한 빠른 의사 결정 등을 통해 초기 투자에 집중할 계획이다.

    시드(seed, 최초 투자)부터 시작해 기업 성장 단계에 맞춰 스타트업의 가치를 높여주는 전략을 펼치고, 넵튠처럼 초기 투자에 이어 후속 투자까지 집행하는 사례도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 인사이트, 공격성, 밸류 강화 전략…"비타민보단 진통제"

    -스타트업의 가치는 어떻게 높이나.

    "제일 어려운 작업이다. 예를들면 홍보를 전략적으로 도와 스타트업의 마케팅 비용을 줄여줄 수 있다. 최근 ‘밸류업(value up) 파트너’란 프로그램을 새로 만들었는데, 이를 통해 자문도 제공할 계획이다. 밸류업 파트너는 각 분야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게임 부문 밸류업 파트너는 게임 체인저, 블록체인 분야는 밸류 마이너(miner)라고 부른다.

    스타트업 대표가 원할 경우 데이터 수집·분석 능력을 갖춘 비즈니스 애널리스트(BA)를 무료로 파견해 지원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대표. /박원익 기자
    -투자 전략을 소개한다면.

    "인사이트, 공격성, 밸류업 이 세 가지가 중심이다. 이를 강화해 창업가를 돕는다는 미션을 달성하려고 한다.

    밸류업은 말씀드렸고, 인사이트는 결과 도출을 전제로 한 태스크포스(TF)를 조직해 얻고 있다. 실제로 블록체인·암호화폐 분야 TF를 만들어 3개월 운영한 후 신현성 티몬 의장이 창립한 블록체인 프로젝트 ‘테라’에 투자하기도 했다. 아무 성과 없이 공부만 하고 끝내는 걸 싫어한다. 내부에 ‘마켓 인사이트’란 조직도 신설해 투자 심사팀과 인사이트를 공유하도록 하고 있다."

    -공격성은 일하는 방식·문화를 뜻하나.

    "그렇다. 능동적이고 공격적으로 일하는 걸 좋아한다. 이를 위해 내부 토의·질의가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투자를 결정할 때 그 스타트업이 잘 될 이유를 적극적이고 빠르게 찾아내는 일에도 집중하고 있다."

    -투자할 때 어떤 점을 중요하게 보나.

    "창업가가 해결하려는 문제가 무엇인지 본다. 비타민보단 진통제 같은 해결법을 선호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 깊게 파고 들어가는 창업가, 솔직한 창업가가 좋더라. 질문을 던졌을 때 얼버무리며 동문서답하는 것보단 모른다고 솔직하게 대답하는 편이 낫다. 끈기와 집념도 중요한 요소다. 제일 아쉬울 때는 투자한 스타트업의 대표가 빨리 포기해버릴 때다. 이직 제안 받았다며 회사를 접고 취업하는 사례도 있다."

    ◇ 올 상반기 1호 펀드 청산…한 걸음 앞서는 VC 목표

    -첫 펀드 청산을 앞두고 있다. 수익률은 어떻게 예상하나.

    "상반기 1호 펀드 청산 시점이 됐다. 왓챠, 루닛, 스탠다임, 두나무, 데이블, 헬로히어로, 넵튠 등에 투자한 펀드다.

    기준수익률이 190억원인데 이미 210억원 정도 배분을 끝냈다. 남은 지분은 다 초과수익률로 잡히기 때문에 성과가 괜찮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주 의미 있는 해가 될 것 같다. "

    카카오벤처스 현황. /홈페이지 캡처
    -열정의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히딩크 감독을 좋아한다. 팀으로 함께 성장하고, 목표를 이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도 그런 사단이 되면 좋겠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성장하는 건 행복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열정이 솟아난다. 우리 회사에 그런 사람이 더 많이 모이면 좋겠다. 그러면 업계 전체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카카오벤처스의 목표는 무엇인가.

    "벤처 투자는 자칫 잘못하면 편하게 하는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 사람은 편하면 익숙해지고 나태해지는 본능이 있다. 창업 트렌드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오히려 투자자들이 못 따라가는 실정이다.

    스타트업, VC 업계에서 의미 있는 걸음을 카카오벤처스가 한 걸음씩 먼저 갔으면 좋겠다. 회사 구성원들이 한배를 탔으니 이 배 안에서 즐겁게 일했으면 한다. 그 판을 깔아주는 게 제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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