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목화의 땅’ 조지아를 바꾼 기아차…텔루라이드로 재도약 꿈꾼다

입력 2018.12.08 06:00

지난 3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 국제공항. 목적지인 기아자동차(000270)조지아공장을 찾기 전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던 중 거대한 ‘기아(KIA)’ 로고와 함께 전시된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쏘렌토를 발견했다. 쏘렌토는 이용객들의 발길이 가장 많은 공항 내부 한가운데 전시돼 있었다.

입국장 출입문을 나선 뒤에도 여러 대의 기아차가 눈에 들어왔다. 쏘렌토를 비롯해 K5(현지 판매명 옵티마), 쏘울, 스포티지 등 기아차 로고를 단 차량들이 연신 공항 주변을 드나들었다.

애틀란타 국제공항 내부에 전시된 기아차 쏘렌토/진상훈 기자
"이 곳 주민들은 제너럴모터스(GM)나 포드차 안 탑니다. 미국을 제패한 도요타도 여기선 힘을 못 쓰죠. 조지아주를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는 단연 기아차입니다."

공항에서 조지아공장으로 이동하는 차를 운전한 기아차 관계자의 말은 허언(虛言)이 아니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주변 곳곳에서 다양한 기아차 광고와 차량들이 눈에 띄었다. 압권은 목적지가 가까워질 무렵 발견한 ‘KIA BLVD(boulevard)’와 ‘KIA PKWY(parkway)’ 표지판이었다. 고속도로에서 나오는 길목 중간에 기아차의 이름을 붙인 도로까지 발견한 것이다.

공항에서 한 시간여를 달려 공장이 있는 소도시 웨스트포인트에 도착했다. 약 890만제곱미터 규모의 거대한 부지 위에 여러 동의 완성차 공장과 간이 주행시험장이 조성돼 있었다. 기아차가 지난 2010년 약 1조1000억원을 투입해 만든 조지아공장은 완성차 생산 뿐 아니라 현대모비스(012330)모듈공장, 현대파워텍 변속기 공장 등 부품설비까지 갖춘 ‘완전 자족형 생산시설’이다.

◇ "이 차 통한다"…텔루라이드 양산 앞두고 막판 담금질 분주한 조지아공장

조지아공장 내부는 조업에 집중하는 생산직 근로자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차체 라인에서는 거대한 용접용 로봇들이 요란한 기계음과 함께 연신 불꽃을 튀기며 쉴새없이 뼈대와 강판을 이어붙였고 한 쪽에서는 몇몇 근로자들이 혹시모를 이상 유무를 체크하기 위해 컴퓨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텔루라이드 생산 조업 중인 기아차 조지아공장 생산직 근로자들/기아차 제공
90% 이상 사람의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마지막 의장라인에서의 열기는 더욱 뜨거웠다. 사소한 잡담조차 없이 분주히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근로자들의 표정은 전체적으로 밝았다.

작업장 대부분을 차지하는 쏘렌토의 생산라인 한 켠에선 낯선 차량을 둘러싸고 근로자들이 각종 부품을 분주히 조립하고 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쏘렌토에 비해 확연히 큰 차체, 바로 내년 1월 세계 최초로 공개된 후 판매가 시작될 대형 SUV 텔루라이드였다.

현재 쏘렌토와 옵티마 등 2종의 모델을 생산 중인 조지아공장은 내년부터 텔루라이드가 가세해 총 3종의 차량을 만들게 된다. 근로자들은 내년 1월 텔루라이드가 첫 선을 보일 디트로이트 모터쇼를 앞두고 본격 양산을 위한 막판 ‘담금질’에 여념이 없었다.

미국 현지 전용모델인 텔루라이드는 최근 주춤한 기아차의 미국 판매실적을 반등시킬 ‘히든카드’다. 특히 기아차 공장이 지역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조지아주에서도 이 차에 대한 기대감이 사뭇 컸다.

텔루라이드 생산 조업 중인 기아차 조지아공장 생산직 근로자들/기아차 제공
최근 들어 기아차 조지아공장의 성장세는 다소 꺾인 상태다. 조지아공장의 생산차량 판매대수는 지난 2010년 16만7122대를 기록한 후 매년 빠르게 성장했고 2016년에는 37만2502대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지난해 판매대수는 29만1981대로 크게 감소했다. 올들어 10월까지 판매량도 20만420대에 그쳤다. 이 때문에 기아차는 물론 조지아주 전체가 텔루라이드의 성공을 갈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현지 자동차 업계에서는 텔루라이드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미국 내 SUV의 수요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다, 최근 대형 SUV 차종에서 경쟁할 만한 신차가 적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공장에서 30분간 시승해 본 텔루라이드의 주행성능도 탁월했다. 가속페달에 한껏 힘을 주자 포구를 떠나는 포탄처럼 강하게 치고 나갔다. 거대한 덩치를 너끈히 감당해 내면서 안정적인 차체 제어력을 보였고 진동이나 소음도 적었다.

◇ 방직산업 쇠퇴로 몰락하던 조지아를 공업도시로 바꾼 기아차

이날 공장에서 만난 현지 근로자들은 기아차 조지아공장이 들어선 후 많은 지역 주민들의 삶이 바뀌었다고 입을 모았다.

기아차 조지아공장 외부 전경/기아차 제공
이 공장 조립부에서 근무 중인 생산직 근로자 킴벌리 시어스씨는 "지금도 공장이 첫 문을 연 8년 전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며 "죽어가던 지역경제를 되살리고 일자리를 만들어준 기아차는 이제 조지아주의 상징과 같은 존재가 됐다"고 말했다.

조지아주는 미국 건국 초기부터 ‘목화의 땅’으로 불린 남부의 대표적인 농업지역이다. 목화농장을 배경으로 땅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장소가 바로 조지아주다. 이 때문에 조지아주의 전통 산업은 방직산업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많은 방직공장과 의류업체들이 인건비 절감을 위해 중국 등 해외로 나가면서 조지아주의 경제는 빠르게 쇠락했다. 희망을 잃어가던 이 지역 주민들이 미국 현지 생산체제 구축을 위해 공장을 세운 기아차를 크게 환영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예수님. 기아차를 우리 마을에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직업 몰락으로 쇠퇴하던 조지아주에 기아차 공장이 들어서자 일자리가 늘었고 지역 경제도 활력을 되찾았다./조선일보DB
지난해 말 기준 기아차와 협력사들의 직접 고용효과는 약 1만5000명에 이른다. 공장이 위치한 트룹카운티의 인구수가 약 7만명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기아차가 지역경제를 거의 떠받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웨스트포인트의 실업률도 공장이 들어서기 전인 2009년 12.3%에서 올해는 3.3%까지 떨어졌다.

조지아주 지역 주민들과 현지 근로자들 역시 텔루라이드에 거는 기대는 사뭇 컸다. 조지아주 상공회의소의 페이지 에스테스 의장은 "텔루라이드가 미국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다양한 요소를 갖춘 모델이란 점을 이미 확인했다"며 "이 차는 기아차는 물론 조지아주 전체에도 큰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아차 조지아공장 품질부에서 일하는 테드 아놀드씨는 "미국인의 시각에서 봤을 때 텔루라이드는 디자인과 실내공간에서 인기를 끌 만한 요소를 두루 갖췄다"며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라도 텔루라이드를 베스트셀러 모델로 키우는데 모든 것을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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