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눈먼 자들의 나라

조선비즈
  • 김종호 산업부장
    입력 2018.12.08 06:00

    국민 안전을 위해 노후 원전은 폐쇄하고 신재생 에너지로 전환하겠습니다. 국민 지갑이 두툼해지는 소득주도 성장을 이루겠습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구축하겠습니다.···

    열광적 지지자들은 공약을 듣기 전부터 눈멀었다. 반대했던 이들도 나름 참신해 보이는 공약에 눈감았다. 하지만 장밋빛 공약과 달리 결과는 엉망이었다.

    노후 원전 폐쇄는 ‘탈핵’으로 바뀌고, 원전은 악(惡)으로 규정됐다. 수천억원을 들여 수명을 연장한 원전을 하루아침에 세우고 핵연료까지 꺼내 버렸다. 잘 돌아가던 원전도 예방 점검을 한다며 가동을 중단한 다음, 점검 기간을 늦추며 계속 세워뒀다. 미래 전력 계획에 따라 부지까지 확보한 신규 원전들은 건설 계획을 백지화했다.

    원전 가동을 줄이자 곧바로 전기가 부족해졌다. 폭염이 찾아오고 나라 전체가 블랙아웃 위기를 맞았다. 태양광, 풍력으로 대체하기에는 어림없었다.

    하루아침에 악으로 몰린 원전 기술자들은 마음의 상처와 실직 위기를 겪으며 하나둘 해외로 떠나고 있다. 선진국들이 극비로 취급하며 넘겨주지 않은 원전 기술을 50년 가까이 자체 개발해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했는데, 탈원전 정책 1년여 만에 스스로 궤멸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올해 16.4%, 내년 10.9%. 최저임금을 2년 연속 큰 폭으로 인상해놓고, 소득이 높아졌으니 소비가 늘고 내수가 활기를 띨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급격한 임금 인상으로 적자에 몰린 중소기업들은 직원 수를 줄이고 채용을 중단했다. 자영업자들은 인건비 부담을 감당할 수 없어 자기 혼자 일하기로 하고 알바를 내보냈다.

    최저임금이 급등하기 전에는 낮은 수준의 임금이라도 받을 수 있었던 취업자들이 이제 실업자가 되면서 소득이 제로가 됐다. 소비는 늘어나지 않고 소득주도 성장은 물거품이 됐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50조원을 쏟아부었지만, 월별 취업자 수 증가 폭이 3000명까지 떨어지는 ‘일자리 대참사’가 터졌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드라마틱하게 시작된 남북 대화는 전 국민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남북 정상에 이어 미·북 정상까지 만나면서 혹시나 하는 기대감도 커졌다. 하지만 비핵화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서 역시나 하는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무리하게 추진한 남북 교류는 부작용을 낳았다. 바쁜 일정을 쪼개 북한에 간 대기업 총수들은 "냉면이 목구멍에…" 같은 욕설에 가까운 말을 들어야 했다. 최고위층이 북한에 매달리는 듯한 모습이 여러 번 노출되면서 10여년 만의 남북 대화는 신선함이 사라지고 어느새 피로감이 느껴진다.

    장밋빛 공약들이 당초 취지와 달리 대혼란을 초래한 것은 추진 과정이 너무 빠르고 거칠었기 때문이다. 임기 안에 이뤄야 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30~40년 전 개발 연대의 ‘빨리빨리’ 악습을 답습했다. 공약 이행 속도를 조금만 늦추고 피해 보는 국민은 없는지 살폈다면 일이 이렇게 꼬이진 않았을 것이다.

    지난 19개월, 권력과 감언에 눈멀고, 부조리와 대혼란에 눈감은 상황은 20년 전 읽었던 책 ‘눈먼 자들의 도시’를 떠올리게 한다. 멀쩡한 사람들이 갑자기 앞을 볼 수 없게 되자 서로에게 몹쓸 짓을 하고, 세상이 아수라장으로 바뀌는 과정을 생생하게 다룬 소설이다. 읽는 내내 독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래도 책은 집중해서 빨리 읽으면 눈멀었던 사람들이 시력을 되찾는 장면을 곧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눈멀고 눈감은 사람들이 언제 눈뜰지 알 수 없어 절망적이다.

    일 잘하던 직원은 갑자기 잘리고, 자영업자는 혼자 20시간 넘게 일해야 한다. 원전 수출은 막히고, 대학의 원자력 학과는 학생이 들어오지 않는다. 참전용사의 후손은 별세한 할아버지에 대한 사과도 받지 못한 채 전쟁을 일으킨 자의 손자를 쌍수로 환영해 달라는 메시지를 듣는다.

    이 암흑의 터널은 언제 끝날까. 우리는 언제 눈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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