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천 칼럼] GM과 현대자동차

입력 2018.12.04 04:00

10년 전인 2008년 12월 3일 미국 자동차 3대 업체 회장들이 의회를 찾아가 모두 34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당시 릭 왜고너 GM 회장은 "우리가 실수를 저질러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지원이 없으면 가까운 시일내 부도가 날 것이라고 호소했다.

빅3 회장들은 디트로이트에서 워싱턴까지 800km가 넘는 길을 자동차로 갔다. 보름 전 처음 구제금융을 요청하러 갈 때 회사 전용기를 이용했다가 호된 질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회장들은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연봉을 1달러만 받고, 전용기를 팔겠다고도 했다.

의원들의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자동차 업계 경영진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결국 미 정부는 의회와 절충 끝에 GM과 크라이슬러에 174억 달러의 단기 구제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포드는 상대적으로 자금 사정이 낫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두 회사를 살리기에는 터무니 없이 적은 돈이었다. 이듬해 4월 크라이슬러가 파산 보호 절차에 들어갔고, 6월엔 GM이 뒤를 이었다. GM과 크라이슬러에 대한 구제금융 총액은 807억 달러로 늘어났다. 그중 2014년말까지 미 정부가 최종 회수한 돈은 705억 달러다. 102억 달러의 손실은 납세자 부담으로 돌아갔다.

구제금융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한편에선 구제금융에 이은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미 자동차 산업이 경쟁력을 되찾고, 100만개 일자리를 지켜냈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다. 반대로 GM과 크라이슬러가 망했더라도 포드와 외국 기업 미국 공장들이 그 공백을 메울 수 있어 별 문제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찌 됐든 빅3는 확실한 교훈을 얻었다. 아무리 미국의 상징 같은 기업이라도 경쟁력을 잃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구제금융이 절대 ‘공돈’이 아니라는 사실도 뼈에 새겼다. GM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14개 공장을 폐쇄하고 4만7000명을 감원했다. 기존 주주들의 주식은 휴지조각이 됐다. 임직원과 주주들이 모두 고통스러운 대가를 치렀다.

GM이 최근 ‘전세계 7개 공장 폐쇄, 1만4700여명 감원’이라는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은 것은 구제금융의 경험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GM은 그동안 유럽 사업을 매각하고, 세계 각지의 적자 공장을 폐쇄하고, 렌터카 사업을 축소하는 등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한 구조개혁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에 더 강력한 조치를 내놓았다.

재무제표만 보면 GM이 허리띠를 졸라맬 이유를 찾기 힘들다. EBIT 기준 영업이익률은 2013년 5%에서 작년 8.8%로 높아졌다. 올 3분기 영업이익은 작년보다 25%나 증가했다. 그런데도 GM은 구조조정의 고삐를 더 조이고 있다. 메리 바라 회장은 "GM과 미국 경제가 튼튼할 때 선제적으로 나서야 장기적 성공을 담보할 수 있다"고 했다.

잘 나갈 때 더 열심히 뛰겠다는 것은 자동차 산업의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전기차, 자율주행차, 차량공유 서비스 등으로 인해 자동차 산업에 격렬한 지각 변동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테슬라, 구글, 우버 같은 새로운 경쟁자들의 존재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컨설팅업체인 맥킨지는 앞으로 10년간 자동차 업계가 과거 50년 동안보다 더 많은 파란을 겪을 것으로 예측했다. GM을 비롯한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정부에 또다시 손 벌리는 사태를 피하고,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서두르는 것이다.

한국 자동차산업은 GM의 발빠른 움직임과 크게 대비된다. 현대자동차의 3분기 영업이익은 1년전보다 76%나 줄어들었다. 2012년 이후 줄곧 감소세다. 자동차 판매대수도 2015년 이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선제적 구조조정에 나설 시기를 놓친지 오래다. 위기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는 지금도 구조조정의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는 삼성동 한전 부지 매입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공기여금까지 합쳐 12조원이 넘는 돈을 들였지만 4년이 넘도록 공사 착공도 못하고 있다. 막대한 자금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 연구개발(R&D) 투자가 위축돼 미래차 개발경쟁에서 현대차가 크게 뒤지고 있는 게 단적인 사례다.

여권의 관심 프로젝트인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현대차가 끌려들어가 새 공장을 지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공급 과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10만대 규모의 새 경차 공장은 사업 타당성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구조조정이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전략 부재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여기다 결정적으로 노조 변수가 있다. 자동차 노조 앞에서는 구조조정의 ‘구’자도 꺼내지 못한다. 기업 실적이 아무리 나쁘고 전망이 불투명해도 노조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만 벌이지 않아도 다행이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노조의 위세가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 ‘민노총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GM을 비롯한 글로벌 선두기업들은 미래 시장을 겨냥한 장기 비전과 전략을 토대로 선제적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 업계는 이를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앞으로 갈수록 격차가 더 벌어질 게 뻔하다. 한국도 맥킨지가 언급한 파란을 피할 수는 없다. 한국 자동차 업계의 생존이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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