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가 짜는 '대한민국 산업정책'

조선일보
  • 박순찬 기자
    입력 2018.11.24 03:08 | 수정 2018.11.24 12:40

    참여연대 '삼성바이오 공격'에 금융당국 나서 "분식회계" 뒤집기
    통신 3사가 저소득층 요금 내려줬는데 "통신비 더 내려라" 압박

    지난해 2월 참여연대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의 분식(粉飾) 회계 의혹을 제기하며 금융 당국의 특별감리를 요청했다. 삼바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바이오의약품 공장을 지으며 글로벌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던 시기였다. 시민단체가 운을 띄우자 정의당을 비롯한 일부 정치권에서 이를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진웅섭 당시 금융감독원장이 국회에 출석해 "한국공인회계사회 등 외부 평가에서 문제가 없었고 감리는 구체적 혐의가 나와야 가능하다"고 했지만, 거듭된 압박에 결국 한 달 뒤 삼바를 상대로 특별감리에 착수했다. 그로부터 1년여 만인 지난 5월 금감원은 '회계 위반'으로 판단을 뒤집었고, 최근 증권선물위원회는 '고의 분식'이라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한 공인회계사는 "같은 재무제표를 두고 180도 다른 결론이 나온 것"이라고 했다.

    지난 4월 금감원장에 임명됐다가 도덕성 논란에 사퇴한 참여연대 사무처장 출신의 김기식 전 의원도 공세에 나섰다. 그는 지난 14일 증권선물위원회가 고의 분식 회계라는 결정을 내리자, 이튿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끝이 아니다. 삼성물산에 대한 특별감리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일주일 뒤인 지난 22일 참여연대는 금감원에 삼성물산 특별감리를 요청했다.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암묵적인 청탁을 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을 다시 겨눈 것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미리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기업을 때리는 것 같다"는 말도 나온다.

    현 정부 들어 시민단체가 대기업의 잘못에 문제를 제기하면 일부 정당이 이를 증폭시키고 결국 정부 기관이 총동원돼 기업을 옥죄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대기업들은 '재벌은 적폐'라는 프레임에 갇혀 제대로 대응조차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대기업 인사는 "현재 여권에서는 '대기업은 때려도 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것 같다"면서 "기업 경쟁력이 한 번 훼손되면 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한데도 이런 문제는 안중에도 없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지난 21일 이동통신사 1위 업체인 SK텔레콤을 상대로 "막대한 초과 이익을 거뒀으니 통신비를 추가로 인하하라"는 내용의 자료를 발표했다. 통신 3사는 이미 정부의 통신비 인하 시책에 따라 노인·저소득층 요금 감면과 선택약정 할인 확대 등으로 총 2조원이 넘는 손실을 본 상태다.

    참여연대는 기업의 영업 기밀에 해당하는 원가 자료까지 정부로부터 넘겨받아 통신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 1위 통신사인 버라이즌은 지난해 SK텔레콤 매출의 1.5배가 넘는 31조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정부와 시민단체 어디도 이런 요구는 하지 않는다.

    통신 3사의 수익성이 일제히 하락하면서 내년 3월 상용화 예정인 5G(5세대 이동통신) 통신망 투자가 부실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요금 인하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려면 결국 투자와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이는 중소 장비업체의 부진과 고용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탈(脫)원전도 마찬가지다. 여러 환경·시민단체들이 정부와 손잡고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였지만 전기료 인상 우려, 산업 경쟁력 훼손, 해외 원전 수출 악영향 등 다양한 문제점이 불거지고 있다. 인공지능(AI)이나 클라우드, 전기자동차, 로봇과 같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면 전기 수요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데도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 1위 경쟁력을 갖춘 원전 관련 기업들은 사업 수주가 끊기면서 구조조정에 내몰린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견제받지 않는 시민단체들이 정부와 기업을 감시하는 역할을 넘어 모든 정부 정책을 좌지우지하려 든다"면서 "현실과 괴리되거나 시장경제의 근간을 훼손하는 정책들이 정부와 일부 정치권의 지원 속에 구현되는 경우가 잦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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