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때 시작한 '노벨상 프로젝트', 연구비 대폭 깎이며 7년만에 위기

입력 2018.11.14 03:07

해외석학까지 모셔온 기초과학硏, 연구단별 예산 평균 35% 삭감
여권 "애초 할 필요가 없던 사업"

기초과학연구원 당초 계획과 현재

정부가 '한국판 노벨상 프로젝트'를 꿈꾸며 2011년 설립한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설립 7년 만에 위기를 맞고 있다. 단기 성과를 추구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중장기 대형 연구를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이 기관을 만들었는데, 현 정부 들어 매년 연구비가 대폭 삭감돼 연구 일정이 늦춰지거나 새로운 실험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IBS는 물리·화학·지구과학·생명과학·수학·융복합 등 6개 분야 30개 연구단으로 이뤄져 있다. 국내외 500여 명 과학자들이 연구 중이다. 13일 과학기술정통부·IBS에 따르면, 내년도 연구단별 연구비는 평균 65억원으로, 2012년 100억원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정부는 2011년 IBS 설립 때 "모든 연구단에 10년간 안정적으로 연간 100억원씩 주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이 깨진 것이다.

IBS는 '노벨상 산실'로 불리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를 모델로 만들었다. 최고 과학자에게 최고 대우를 해주고 자율성을 줘야 최고 결과를 내놓는다는 원칙이었다. '세계 10대 연구소', '노벨상급 과학자 보유 1위 연구소'로 만드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7년이 지난 현재 IBS 모습은 당초 계획과는 거리가 멀다. 연구단 수는 원래 2017년까지 50개 설립이 목표였는데, 현재는 목표치의 60% 수준인 30개만 운영 중이다. 내년엔 연구단이 2개 늘어나는데 그친다. 그런데도 정부는 내년도 IBS 총예산을 올해보다 오히려 200억원 줄어든 2365억원 편성했다. IBS 총예산이 줄어든 건 설립 7년 만에 처음이다.

IBS 관계자는 "정부·여당이 '지금 있는 연구단이나 효율적으로 운영하라'고 해 앞으로 연구단 확대는 사실상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당초 내년에 1130억원을 들여 첫 삽을 뜨려 했던 2차 연구단 건물 건립 계획도 올해 예산 편성 과정에서 대부분 삭감돼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다. 작년 완공 예정이었던 '중이온 가속기 구축'은 2021년으로 4년 늦춰졌다.

그동안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현 정부 들어 여당은 IBS 운영이 방만하다며 "종합 비리 세트" "애초 할 필요가 없던 사업"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IBS 예산이 문제 되자, 과기정통부는 지난 6일부터 IBS를 특별 감사하고 있다. 정부는 작년까진 IBS에 전체 30개 연구단 예산을 통으로 줬지만, 올해부터는 연구단별로 예산계획을 제출받아 일일이 심의해 주고 있다.

과학계는 정부의 IBS 운영 방침이 변한 데 대해 "자유롭게 10년간 연구할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을 깼다" "전전(前前) 정권에 대한 적폐몰이"라고 비판했다. 해외 연구소 자리를 박차고 온 외국인 연구단장들도 "한국 정부는 대체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IBS 30개 연구단 중 6개는 외국인 석학이 이끌고 있다. IBS 관계자는 "외국인 연구자들이 매년 예산이 깎여나가니 도저히 중장기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없다고 한다"고 했다.

독일 막스플랑크 이론물리연구소 출신인 세르게이 플라흐 IBS 연구단장은 최근 '대규모 IT 컴퓨터 클러스터'를 구축하기 위한 수퍼 컴퓨터를 신청했다가, 정부로부터 "그게 당신 연구 어디에 어떻게 왜 필요한지 세세하게 설명하고 증빙하라"는 회신을 받았다. 플라흐 단장은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해 2014년에 한국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예산은 매년 깎여나가고 정부 간섭은 너무 심하다"고 했다. 김두철 IBS 원장은 "초기엔 세계적인 과학자들을 좋은 조건으로 데려오니 전 세계 유수 과학자들이 몰려왔지만, 지금은 아무리 오라고 해도 관심 있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얼마 전 IBS의 A 연구단장은 내년도 연구비를 통보받고 좌절감을 느꼈다. A 단장은 IBS 설립 때 "10년간 매년 100억원씩 안정적으로 줄 테니 마음껏 연구하라"는 약속을 받고 국내 대학에서 IBS로 옮겼다. 그런데 매년 예산이 줄어 원래 실험 계획을 자꾸 수정하고 있다. A 연구단장은 "연구가 진행될수록 실험과 연구단 규모는 커지는데 예산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며 "새 실험을 시도하는 것은 꿈도 못 꾼다"고 했다.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과학자들이 미래 걱정 없이 꿈을 펼칠 수 있게 긴 호흡으로 지원하지 않으면 성과는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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