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내고 더 받는 묘안 어디서 찾나"…복지부 '멘붕'

조선비즈
  • 전준범 기자
    입력 2018.11.08 18:49 | 수정 2018.11.08 21:15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린 8일, 세종정부청사 보건복지부 7층 연금정책국에는 적막이 흘렀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복지부가 마련한 국민연금 개혁안 초안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참석차 서울 출장을 떠난 연금국 주요 간부들은 전화기를 꺼둔 채 언론 접촉을 피하려고 애썼다. 복지부 관계자는 "재검토 지시를 받은 후 곧바로 긴급회의를 소집해 논의 중"이라며 "수정안이 나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에 참여한 적 있는 한 연금 전문가는 "문 대통령이 사실상 덜 내고 더 받아가는 방향으로 국민연금 제도를 다듬으라고 주문한 셈인데, 실무자 입장에서는 아주 난처할 것"이라며 "재정건전성을 지키면서 대통령 주문까지 소화할 수 있는 묘안을 찾을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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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고 2회 받은 복지부…제도개선 기약 없어져

    사실 정부의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 추진은 진작부터 예고됐던 일이다. 지난 8월 제4차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는 국민연금 기금이 오는 2057년 소진된다고 발표했다. 5년 전 3차 재정추계에서 나온 예상 소진 시기(2060년)보다 3년 앞당겨진 것이다.

    이에 국민연금제도발전위는 소득대체율(연금 수령액이 평생 월평균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올해 수준인 45%로 유지하되 현재 월소득의 9%인 보험료율을 내년부터 즉시 11%로 올리는 방안, 소득대체율을 2028년 40%로 낮추도록 한 현행법을 유지하는 대신 보험료율을 향후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13.5%까지 인상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복지부도 전문가 그룹의 이 제안을 토대로 정부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당시 보험료 인상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감지한 문 대통령이 "국민 동의와 사회적 합의 없는 정부의 일방적인 국민연금 개편은 없을 것"이라고 발언하자 복지부는 포커스그룹 토론 17회, 지역 순회 토론 16회 등 총 33회의 의견수렴 행사를 두 달간 열기도 했다. 그렇게 완성한 국민연금 개혁안을 이달 7일 보고했지만 문 대통령은 "국민 의견이 보다 폭넓고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수정 보완하라"고 퇴짜를 놨다.

    서울의 한 대학 교수(사회복지학)는 "8월에 문 대통령이 ‘보험료 부담 주지 말자’고 복지부에 공개적으로 신호를 보냈는데도 기대에 못 미치는 안을 들고 오니 (대통령 입장에서는) 화가 났을 것"이라며 "2회 경고를 받은 복지부는 이제 대통령 미션을 반드시 수행하면서 기금의 재정건전성도 지켜내야 하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졌다"고 말했다.

    당초 복지부는 오는 15일 공청회를 열어 국민연금 개혁안을 공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전면 재검토 지시로 공청회도 연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헌주 복지부 대변인은 8일 진행된 정례브리핑에서 "아직 확정된 건 없지만 계획해둔 일정을 가급적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은 그러나 "정부안을 통째로 손질해야 하는데 15일에 공청회를 여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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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 없다던 기초·국민연금 통합카드?

    현재 복지부는 국민연금과 다른 노후보장 시스템과의 연계 방안을 찾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전날 청와대가 "문 대통령이 해결책을 국민연금 체계 안에서만 찾지 말고 다른 사회보장제도와 함께 고려하라고 강조했는데, 이번 초안에서는 그런 것이 안 보인다"고 지적한 데 따른 조치다. 문제는 다른 연금 체계와의 연계 강화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는 기초연금 제도를 도입하면서 국민연금 재정 활용 방안을 마련하려다가 가입자들의 극심한 반발에 부딪혀 뜻을 접었다. 현재 두 연금 제도는 우리 국민의 노후 안정화를 돕는다는 측면에서 비슷한 기능을 하지만 돈이 나오는 주머니가 다르다.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낸 보험료로 조성되는 사회보장제도이고, 기초연금은 국가가 세금으로 지원하는 공적부조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국민연금·기초연금 통합설이 돌았으나 권덕철 복지부 차관이 지난달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전면 부인했다.

    연금 전문가들은 그러나 대통령에게 만족할 만한 성과물을 보고해야만 하는 정부가 입장을 바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간 통합 카드를 다시 꺼내들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국민연금 수령액은 최근 3년간 전체 가입자의 월평균 소득인 ‘균등부분’과 가입자 개인의 월평균 소득인 ‘비례부분’을 합친 금액이다. 이중 균등부분의 성격이 기초연금과 유사하기 때문에 둘을 통합 운용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용하 국민연금연구원 원장은 "이 두 연금을 합해서 보면 공적연금에서 55%가량의 소득대체율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원장은 "합리적인 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연금 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잘 설득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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