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트럼프식 통상 공세 시작하나…”조선업은 시작일 뿐”

입력 2018.11.08 17:20 | 수정 2018.11.12 10:25

일본 최대 조선소 이마바리조선이 2017년 준공한 초대형 도크 시설. 이마바리조선은 초대형컨테이너선 사업 확대를 위해 이 시설을 건설했다. 일본 조선업계에서 대형 도크가 새로 건설된 것은 2000년 이후 17년만이었다. /이마바리조선
"그 동안 통상 문제에 방어적 입장이었던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공세에 나섰다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통상 정책의 기조가 바뀌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최석영 전 주제네바 대사 ·전 외교통상부 FTA 교섭대표)

6일 일본이 한국 정부의 조선 산업 공적자금 지원을 문제삼아 WTO(세계무역기구) 제소에 나선 것에 대해 여러 전문가들이 일본 정부의 통상 정책 기조가 변한 것 아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자국 산업 육성 및 보호를 위해 한국의 산업 정책을 문제삼아 통상 분쟁을 일으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번 제소가 정치 논리 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제기된 것이란 얘기다. 조선업 뿐만 아니라 철강, 자동차, 기계, 전자부품 등 해외 시장에서 경쟁관계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아 다른 산업에서도 공세를 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6일 한국 정부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를 통해 대우조선해양에 1조2000억엔(11조9000억원)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게 WTO 보조금 협정 위반이라며 WTO 분쟁해결절차 내 양자협의를 요청했다. 대우조선해양에 투입된 공적자금이 정부의 우회적인 보조금이고, 이 보조금 덕에 대우조선해양이 저가 수주에 나섰다는 게 일본 측 논리다.

이시이 게이이치(石井啓一) 일본 국토교통상은 "한국의 (조선 업계에 대한) 공적 자금 지원은 시장을 왜곡하고 공급 과잉 문제 시정을 늦출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산업정책 본격적으로 문제 삼기 시작"


일본경제신문의 자매지 일본산업신문은 8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의 경쟁력을 분석한 기사에서 무역보험공사의 선수금보증(RG)와 2015년 경영위기 당시 공적자금 투입 등 한국 정부의 정책을 문제삼았다. /일본경제신문사 캡처.
일본 정부는 과거의 공적자금 투입 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 정부의 조선업 육성 정책도 문제 삼았다. 특히 조선사가 생산 원가 이하로 입찰가로 적어낼 경우에도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무역보험공사가 선수금 환급보증(RG)을 발급할 수 있도록 한 것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에 대해 "일본은 한국선박해양과 현대상선간 선박건조 금융계약, ‘해운재건 5개년 계획’에 따른 선박 신조 지원, ‘조선산업 발전전략’에 따른 친환경선박 건조 지원 등에 대해서도 WTO 보조금협정에 위반한다는 취지의 양자협의 요청서를 보내왔다"고 밝혔다.

WTO 분쟁해결절차에 따르면 무역 분쟁 당사자 가운데 한 나라가 양자 협의를 요청하면 30일 이내에 협의가 시작된다. 협의 요청 후 60 일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으면, WTO 분쟁 해결 기관에 안건을 심리하는 소위원회가 설치된다. 소위원회는 원칙적으로 6 개월 이내에 최종 보고서를 만들고, WTO 협정에 위반하는지 여부를 결정한다. 사실상 WTO 제소에 나선 것이다.

전문가들은 두 가지 측면에 주목한다. 먼저 일본이 그 동안 통상 분쟁에서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던 이전과 달라졌다는 것이다. 최 전 대사는 "일본은 자국 농업 보호가 걸려있어 통상 문제에 방어적인 기조를 유지해왔고, 2015년을 전후해 미국·EU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나서면서 자유 무역을 강력히 옹호해왔다"며 "조선산업 전반을 대상으로 공세에 나섰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설명했다. "WTO 제소는 판결이 어떻게 나던 간에 상대 국가의 정책을 문제 삼는 것이라 대단히 공격적인 포석"이라는 게 최 전 대사의 설명이다.

일본은 2015년부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협의체 등에서 한국 조선업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이 건으로 WTO 제소를 선택한 것은 완전히 다른 수준의 대응이라는 얘기다.

배찬권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실장은 "특정 기업이나 제품을 문제삼지 않고 정부의 산업 정책을 보조금 지급이라 규정하고, 통상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과거에 거의 없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이 중국 등 다른 나라를 상대로 내세우던 논리를 일본이 차용했다고도 볼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LNG선 시장 진입 안간힘 쓰는 조선업계


또 전문가들은 일본의 이번 WTO 제소를 자국 조선산업 육성을 위한 행보로 보고 있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조선업 내에서 한국과 일본이 경합 관계에 있는 선종(船種)은 LNG선과 초대형컨테이너선"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최대 조선사 이마바리조선(今治造船)과 2위 조선사 JMU(재팬마린유나이티드)는 LNG 운반선 건조 등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데, 건조 노하우가 부족해 올 3분기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내에서는 자국 조선업체의 부진과 LNG선 등을 중심으로 한 한국 조선업체의 독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었다. 일본산업신문은 지난 8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을 다룬 르포 기사에서 "대우조선해양은 2015년 경영 위기에 빠졌을 때 산업은행으로부터 10조원 규모의 재정 지원을 받고, 2017년 4분기 흑자로 전환했다"며 "한국 정부의 조선업 지원을 상징하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 기사에서 일본산업신문은 "한국 조선사가 세계 시장을 석권한 데에는 탄탄한 원가 경쟁력에 있다"고도 했다.

◇ "조선업 뿐만아니라 자동차·기계류 등으로 전선 넓힐수도"

일본 정부가 조선업 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에 대해서도 보호무역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공목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제조업 경쟁력이 강화되면서 한국 업체가 그동안 입지를 넓혔던 전자부품, 가전, 화학제품 등에서 두 나라 간의 경쟁이 더욱 심화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공 연구위원은 "자동차, 기계류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산업별로 한일간의 주력 상품이 많이 겹치는 곳들이 있는 데, 여기서 일본이 산업정책 일환으로 통상 공세를 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최 전 대사는 "정치적인 배경과 별개로 일본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취하는 조치들이 양적, 질적으로 강화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면서 "보호무역주의 조치가 도미노처럼 확산되는 특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도 적극적인 대응으로 기울기 시작한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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