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인재 블랙홀' 된 유통업계, 백지 수표까지 내민다

조선일보
  • 이동휘 기자
    입력 2018.11.07 03:07

    인공지능 접목 따라 기반기술 선점 위해 인력 채용 경쟁

    온라인 쇼핑몰 위메프는 최근 경쟁 업체에서 40대 초반 '인공지능(AI)' 개발자를 스카우트했다. 당시 업계에는 "연봉을 두 배로 불려 자리를 옮겼다"는 소문이 돌았다. 위메프는 "연봉 공개는 어렵지만, 삼고초려해 모셔온 것은 맞는다"고 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4월 박종만(52) 전 캠프모바일 대표를 영입하고 '디지털 전략 유닛'을 신설했다. 박 전무는 네이버 이커머스본부장, 캠프모바일 대표를 지낸 전자상거래 전문가였다.

    소비재·유통기업이 IT(정보기술) 인재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롯데·신세계 등 유통업체는 물론 아모레퍼시픽 같은 화장품업체들도 'IT 인재 모시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오프라인 유통업의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날로 커지는 온라인 쇼핑 공간을 선점하려면 기반 기술인 IT를 선점해야 하기 때문이다. 맥킨지 글로벌연구소(MGI)는 전 세계 유통업계에 AI를 접목했을 때 창출되는 경제적 가치가 최대 800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불붙은 유통업체 IT 인력 확보 경쟁

    현재 'IT 인력 블랙홀'은 롯데다. 지난 8월 7개 자사 온라인 쇼핑몰을 하나로 합한 e커머스본부를 만들고 내년까지 IT 인력 400명을 신규 채용하기로 했다. 지난달 말 신동빈 롯데 회장이 2023년까지 12조5000억원을 투입해 온라인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롯데는 인재 쟁탈전에 더욱 공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업계에 근무하는 IT 기술자 수는 얼마 안 되기 때문에, 400명 신규 채용은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다"며 "경쟁 업체 IT 인력의 대거 이탈이 눈에 보이는 상황이라 모든 업체에 비상이 걸렸다"고 했다.

    유통업체의 IT 투자

    내년 1분기 온라인 통합 법인을 출범하는 신세계도 이후 매출이 늘어나면서 관련 인력을 대거 채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근무하는 250여명의 IT 기술자로는 늘어나는 서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온라인 사업에 1조원을 투자하고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한다면 인원을 두 배로 늘려야 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9월 SK플래닛에서 독립하며 5000억원 이상 신규 투자를 받은 11번가의 이상호 사장은 SK텔레콤에서 AI 서비스를 총괄한 음성 검색 분야 전문가였다. 쿠팡구글의 검색엔진 개발자인 중국인 후이 쉬(Hui Xu)를 2016년 영입해 쿠팡의 개발 분야 총괄 부사장직을 맡겼다.

    ◇유통업계 '비인기'에도 경력자 몸값 천정부지

    유통업계의 IT 인력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IT 인력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클라우드 서버, AI 개발, 빅데이터의 최고 수준 전문가들은 이미 아마존이나 구글 등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고 있고, 그다음 급 인재들은 삼성·SK 등 IT 전문 대기업의 차지다. 일본 라쿠텐에서 IT 기술자로 근무하는 변모씨는 "IT 기술자들이 영업이 주요 사업인 유통업체로 옮겨 지원 업무를 할 이유가 별로 없다"며 "새로 IT 사업을 시작하는 업체에 가면, 코딩 같은 기초 단순 작업을 도맡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유통업체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 IT 기술자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솟는다. 한 유통업체 측은 "일반직군에서 이직할 때 연봉 10~20% 올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수억원 연봉을 주고 AI 인재를 모셔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웬만한 IT 기술자들은 1000만원 올려주는 것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며 "옮기면 무조건 '억'대로 영입된 것"이라고 했다.

    기업들이 IT 인재 확보 경쟁을 벌이는 배경에는 IT 인력의 수급 불균형이 있다. 넥슨 등 게임업체는 물론 시중은행들까지 산업계 전반이 IT 기술자 채용 규모를 작년보다 2~3배 늘리고 있지만, 당장 데려다 쓸 IT 기술자는 모자라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 석사 학위까지 마쳤더라도, 당장 실전에 투입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유통업계는 IT 인력 쟁탈전이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본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에서 인정받은 IT 기술자는 물론 2~3년 차 실무자들도 영입 대상 '0순위'"라면서 "치열한 인재 영입전이 계속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핫뉴스 BEST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