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지휘 받는 네이버 노조, 요구사항만 124가지

입력 2018.10.29 03:07 | 수정 2018.10.29 08:21

[오늘의 세상] "주요 경영결정 내릴때 미리 알려라"… 사외이사 추천권도 요구
SK브로드밴드 순익 304억인데, 노조 임금인상 요구는 696억

국내 대표 IT(정보기술) 기업 카카오에 지난 24일 노조가 설립됐다. 지난 4월 네이버, 지난달 넥슨·스마일게이트에 이어 인터넷·게임업계에 네 번째 민주노총 노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카카오 노조 '크루 유니언' 역시 다른 업체처럼 강성인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화섬식품) 소속이다. 화섬식품은 지난해 파리바게뜨 제빵 기사 정규직화를 주도한 조직이다. 민주노총과 카카오 노조 사이에 다리를 놓아준 것은 네이버 노조였다. 업계에 따르면 IT·게임업체 사이에서 노조 설립 움직임이 계속 확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LG유플러스 본사 앞, 민노총 지부 천막 28일 서울 용산구 LG유플러스 본사 앞에서 민주노총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지부가 천막을 만들어놓고 정규직 채용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다. 최근 노동조합 설립이 잇따르고 있는 IT(정보기술)·게임업계에서는 노사 간 협상 과정에서 잡음이 생기고 있다.
LG유플러스 본사 앞, 민노총 지부 천막 28일 서울 용산구 LG유플러스 본사 앞에서 민주노총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지부가 천막을 만들어놓고 정규직 채용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다. 최근 노동조합 설립이 잇따르고 있는 IT(정보기술)·게임업계에서는 노사 간 협상 과정에서 잡음이 생기고 있다. /이덕훈 기자
그동안 무노조 기업으로 급성장해온 IT·게임업계에서 노조가 속속 설립되면서 경영에 새로운 변수가 생기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 18일까지 진행된 11차례 노사 간 단체 교섭이 모두 결렬됐다. 업계 관계자는 "노조에서 회사가 수용하기 어려운 복지 제도, 경영 참여 조건을 내밀어 협상이 진전되지 못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인터넷·게임업계에선 "자동차·중공업처럼 노사 분규가 일상화하면서 경영에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네이버를 제외한 각 기업의 분기별 매출 규모가 1조원이 채 안 되는데 노사 관계마저 삐끗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버틸 체력이 없다는 뜻이다.

네이버 협상 결렬···안랩은 노조에 굴복

IT 게임업계 노조 요구 사항

네이버 노조는 그동안 사측에 124가지에 달하는 요구 사항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엔 사외 이사 추천권을 달라는 요구도 들어 있다. 또한 네이버가 이사회를 개최할 때는 노조에 사전 통보하고, 경영상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도 사전 설명을 요구했다. 사실상 경영에 일정 부분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달라는 뜻이다. 네이버 측은 이 경우 신속한 의사 결정에 차질이 생기고 영업기밀이 유출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네이버 노사는 휴가를 포함한 복지 제도를 놓고도 견해차가 크다고 한다. 네이버 노조 관계자는 "협상이 불발되면 중앙노동위원회에 중재 신청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최후엔 단체 행동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가 이렇게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배경엔 화섬식품 노조 수뇌부가 협상에 교섭 위원으로 참여해 네이버 노조를 이끌기 때문인 것으로 업계는 분석한다.

국내 최대 정보보안 업체인 안랩은 최근 서비스 사업부 분사 계획을 철회했다. 조직을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분사를 결정했었지만 직원들이 반발해 노조(한국노총 소속)를 결성하자 두 손 든 것이다. 권치중 안랩 대표는 "분사 결정은 기업의 고유 권한"이라면서도 "임직원 간 불화가 지속되면 사업 존립 자체가 흔들려 (분사 철회라는) 용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게임업계에선 "민주노총 산하 노조들이 산별 연대 투쟁에 나설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 7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대형 게임사들은 자율 출퇴근제를 실시하고 야근과 주말 근무를 최소화해 근무시간을 대폭 줄였다. 넥슨의 경우 현재 전체 직원 평균 근무시간이 40시간 정도다.

하지만 게임업계 노조들은 근무시간 단축 외에 신분보장을 위한 인사 시스템 개선, 포괄임금제 폐지도 요구할 계획이다. 이들은 "근속 연수가 3~5년으로 짧은 게임 업계 특성상 노조로 단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수찬 넥슨노조지회장은 본지 통화에서 "IT 업계 노조들과 함께 상의한 후 구체적인 요구 사항과 노조 활동 계획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통신업계도 노조 투쟁에 몸살

통신업계에서도 노조의 움직임이 거세다. 지난해 SK브로드밴드는 100% 자회사를 설립해 협력업체 인터넷 설치 기사 4700여 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하지만 민주노총 산하 희망연대 소속 설치 기사들이 지난 6월부터 파업·집회를 거듭하며 올해 임금 총액 696억원을 인상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지난해 회사 전체 당기순이익이 304억원이었는데 이렇게 올려 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LG유플러스 본사 사옥 앞에서도 희망연대가 정규직 채용을 요구하며 농성 중이다. 이 회사는 SK브로드밴드의 전철을 밟을까봐 선뜻 협상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노조 활동이 IT 기업 특유의 역동성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박완규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동안 노사 분규가 일어나면 산별 노조가 개입해 문제를 악화시켜온 전례가 있었다"면서 "IT 기업의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노조가 합리적인 방식으로 권익을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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