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 폐업 늘고 창업 줄자… 중고시장까지 비명

조선일보
  • 오로라 기자
    입력 2018.10.22 03:13 | 수정 2018.10.22 13:35

    [오늘의 세상]
    서울 황학동 중고거리 가보니

    지난 16일 오전 11시 찬바람이 부는 서울 중구 황학동 중고 거리. 600m 길이의 거리에는 중고 냉장고와 그릇, 각종 가구를 파는 가게 180여 곳이 즐비했지만 물건을 보러 온 고객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없자 주인들도 개점휴업 상태였다.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010-XXXX-XXXX'라는 안내판을 걸어놓고 가게를 비워버리거나 아예 구석에서 낮잠을 자는 사장님도 많았다. 얼마 전만 해도 창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가게 집기를 사려 북새통을 이뤘던 시장이지만 이날은 거리에 인적조차 드물었다. 시장에서 만난 J전자 정모(58) 대표는 "주변 가게 10곳 중 3곳은 가게를 내놨고, 파리를 날리면서 가게 불만 켜둔 경우도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갈 곳 없는 중고물품들
    갈 곳 없는 중고물품들 - 서울 중구 황학동 중고 거리에서 한 상인이 쌓인 물건을 살피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왼쪽). 폐업하는 사람은 많고, 창업하는 사람은 줄자 중고 물품의 가격도 떨어졌다. 작년 600만원이었던 중고 커피머신은 250만원 수준에 거래되고 있다. 상인들은“중고 물품은 넘치는데 팔리지 않으니 고물상에 싼값에 처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오른쪽). /오로라 기자·김연정 객원기자
    자영업자가 줄폐업을 하는 가운데 창업하려는 사람마저 줄어들며 서울의 대표 중고 물품 거래 시장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상가정보연구소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등록돼 있는 관광·부동산·음식·소매·숙박·교육 등 8대 업종의 자영업소 253만2788곳을 기준으로 지난해 하반기 창업·폐업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 기간 매달 평균 6만3000곳이 폐업해 창업 점포 수 5만3000곳을 앞질렀다. 중고 시장으로 흘러나오는 매물들은 인도를 침범할 정도로 많아졌지만 물건을 사려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상인들은 "폐업자가 많아져 중고 물품을 수거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호황이라는데, 사는 사람이 없으니 우리도 다 문 닫게 생겼다"고 했다.

    ◇창업자보다 많은 폐업자 수… 중고 시장 '존폐 위기'

    황학동 중고 시장에서 20년째 주방용품점을 운영해 온 문모(61)씨는 "폐업해서 중고 물건을 가져가라는 전화는 하루에도 2~3통씩 걸려 오지만 팔 곳이 없어 물건을 받지 않은 지 벌써 3개월째"라고 말했다. 문씨는 5년 전까지만 해도 200㎡(약 60평) 크기의 가게에서 중고 주방 가전, 철제 싱크대를 판매하며 한 달에 3000만~5000만원을 벌었다. 하지만 올 들어서 월 매출은 예전의 반 토막도 안 되게 추락했다. 문씨는 "이대로 가면 중고 거리 상인들은 모두 파산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하반기 8대 자영업종 월평균 창·폐업 현황
    창업 고객이 줄자 중고 물품의 가격은 전년의 절반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이날 황학동 중고 거리에서는 지난해 600만원에 거래되던 커피머신이 250만원에 거래되고, 300만원에 팔리던 업소용 식기 세척기도 200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시장 상인 박모(62)씨는 "경기도에 있는 100평짜리 창고 2개가 이미 밀려들어 온 물량으로 가득 찼다"며 "판매가 되지 않으니 오래된 것들부터 고물상에 싼값으로 처분하고 있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황학동 중고 거리에는 '임대' '매매'라고 쓰인 포스터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창업 분위기 살아나야 시장도 산다

    중고 거리 상인들은 가뜩이나 내수 경기가 어려운데 최저임금 인상은 직격탄이 됐다고 했다. 이모(54)씨는 "작년에도 폐업하는 가게가 많았지만 그래도 소자본으로 창업하려는 고객들이 꽤 있었다"며 "창업 문의가 싹 끊긴 건 올해 7월 내년도 최저임금이 또 인상된 후부터"라고 말했다. 그는 "폐업하는 가게에 가서 어쩌다 폐업했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인건비 얘기를 한다"고 했다.

    황학동에서 396㎡(약 120평) 크기의 가게를 운영하는 김영훈(40)씨는 "종업원을 고용하면 수입이 반 토막이 나기 때문에 이 큰 가게를 늙은 어머니와 둘이서 보고 있다"며 "창업을 하려고 해도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도전을 못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주점을 3년 동안 영업하다 폐업한 강모(34)씨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저녁에 술 마시는 직장인이 줄었는데, 최저임금까지 올라 알바 한 명을 고용해도 큰 수익이 나오기 힘들어졌다"며 "한 달 수익 300만원에서 알바 월급 130여만원을 빼면 수익이 반 토막이 된다"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개인·법인 사업자는 90만8076명에 달한다. 올해는 폐업자 수가 100만을 넘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폐업 상인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위험도 높다고 지적했다. 폐업 상담사로 활동하는 고경수 폐업119 대표는 "자영업자 폐업을 시작으로 중고품을 매매하는 시장 상인들까지 도미노로 쓰러지면서 중산층이 대거 경제 취약층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빈곤 문제가 사회문제로 번질 수 있는 만큼 정부는 자영업자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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