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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유소 화재 1주일, 관리 실패한 송유관공사 책임론 커져

  • 조지원 기자
  • 입력 : 2018.10.14 13:48

    지난 7일 발생한 고양저유소(貯油所) 화재사고에 대한 대한송유관공사 책임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화재 원인이 된 풍등(風燈)을 날린 스리랑카 외국인 근로자보다 시설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대한송유관공사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국가 주요 기반시설에 준하는 저유소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도 쏟아지고 있다.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한송유관공사가 관리하는 저유소 8개소, 민간 보유 저유소 107개소 중 화재경계지구에 포함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기본법에 따르면 시‧도지사는 화재가 발생할 경우 큰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 중 법령이 명시하고 있는 조건을 충족하는 지역을 화재경계지구로 지정할 수 있다. 해당 조건에는 시장지역, 위험물의 저장 및 처리 시설이 밀집한 지역, 목조건물이 밀집한 지역,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는 지역 등이 해당된다.

    2017년 기준으로 화재경계지구로 지정한 121개소 중 88개소(73%)가 시장지역에 집중돼 있다.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공장 지역도 화재경계지구에 포함될 수 있지만, 저유소 시설이 화재경계지구에 포함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병훈 의원은 "위험물 저장소인 저유소를 화재경계지구로 지정해 관리했다면 고양 저유소 사고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미리 제거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7일 오후 경기 고양시 화전동 대한송유관공사 저유소에서 휘발유 탱크 폭발로 화재가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진압에 나서고 있다. / 고운호 기자
    7일 오후 경기 고양시 화전동 대한송유관공사 저유소에서 휘발유 탱크 폭발로 화재가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진압에 나서고 있다. / 고운호 기자
    ◇ 회사 명칭에 ‘대한’‘공사’ 있지만 실제로는 정유사들이 투자한 민간기업

    대한송유관공사는 석유 에너지를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수송하기 위해 전국에 걸쳐 1180㎞에 달하는 송유관을 건설해 운영하는 기업이다. 울산(SK이노베이션‧에쓰오일), 여수(GS칼텍스), 대산(현대오일뱅크)에 있는 각사 정유공장에서 생산된 휘발유, 경유, 등유, 항공유 등을 수송하는 사업을 한다. 지난해 송유관을 통해 이동한 휘발유 등 경질유는 1억7300만배럴로 국내 연간 소비량의 58% 수준이다.

    대한송유관공사는 송유관 관리를 목적으로 1990년 설립됐다. 2001년 민영화되면서 SK이노베이션(41%), GS칼텍스(28.62%), 산업통상자원부(9.76%), 에쓰오일(8.87%), 현대중공업(6.39%), 대한항공(3.1%), 한화토탈(2.26%) 등 주요 수요업체들이 지분을 가지고 있다.

    회사 명칭에 ‘대한’과 ‘공사’를 쓰고 있지만 민간기업이기 때문에 정부에 관리감독 책임을 묻기 어렵다. 또 대한송유관공사 임직원은 공무원이 아니다. 따라서 직무유기 등 혐의를 적용할 수도 없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송유관안전관리법에 따라 안전관리규정의 준수의무를 위반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당시 근무자가 매뉴얼을 어기고 감시 감독에 소홀했을 경우 형사 입건될 수 있다.

    8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소에서 국과수 등 유관기관들이 전날 발생한 화재 합동 감식을 펼치고 있다. / 성형주 기자
    8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소에서 국과수 등 유관기관들이 전날 발생한 화재 합동 감식을 펼치고 있다. / 성형주 기자
    ◇ 경찰, 전담수사팀 구성…하나둘씩 드러나는 소홀한 관리‧허술한 안전체계

    경찰은 이번 사고 불씨가 된 ‘풍등’을 날린 스리랑카 외국인 근로자에서 대한송유관공사로 수사 초점을 옮겼다. 경찰은 기존 고양경찰서 강력팀에 광역수사대 인력을 포함한 저유소 화재 사건 전담팀을 편성해 저유소 화재에 대한 송유관공사의 업무상 과실 혐의, 저유소 시설 안전 결함, 안전관리 매뉴얼 준수 등을 집중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지난 7일 화재 사고 발생하고 일주일이 지나면서 대한송유관공사의 관리 소홀 문제점은 하나씩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당시 대한송유관공사에는 주말이라 6명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사고 당시 45대의 폐쇄회로(CC)TV를 전담해서 보는 인력이 1명도 없었다.

    스리랑카 외국인 근로자 A씨가 날린 풍등이 유류 저장탱크 인근 잔디밭에 떨어지면서 오전 10시 36분부터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탱크 폭발은 오전 10시 54분에 발생했다. 18분 동안 연기가 나는 장면이 ‘CC(폐쇄회로)TV’에 포착됐지만, 대한송유관공사 직원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대형 유류 저장탱크 옆에 불이 붙기 쉬운 잔디밭이 깔려 있던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고양저유소를 제외한 다른 저유소에는 저장탱크 주변에 아스팔트를 깔았다. 유증환기구나 외부 불씨 유입을 막을 수 있는 화염방지기가 없었기 때문에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는 지적도 있다.

    또 외부 전문가가 저유소 유류탱크를 개방해 실시하는 정밀진단을 11년에 한 번씩 하도록 돼 있어서 안전관리가 허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송유관공사는 전국에 저유소 8개소를 관리하고 있는데, 가장 규모가 큰 판교 저유소를 제외한 나머지 7개소는 국가중유시설로 분류되지도 않았다. 국가중요시설은 적에게 점령되거나 파괴되는 등 기능이 마비될 경우 국가안보와 국민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시설을 말한다.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고양 저유소 화재 관련 장관에게 질의 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고양 저유소 화재 관련 장관에게 질의 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 뒤늦은 안전관리 자문기구 구성…최준성 사장은 국감 증인 채택

    대한송유관공사는 화재 사고 이후 거듭 사과 성명을 발표하며 ‘안전관리 자문기구’ 구성에 착수했다. 안전관리 자문기구에는 국가 안전유관기관, 소방‧전기 등 관련분야의 교수, 업계 전문가, 글로벌 소방안전 전문가, 정유사 안전관리 담당 임원 등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안전관리 자문기구’는 저유소 화재와 관련하여 탱크지역 내 발생 가능한 모든 사고 상황을 포함한 중장기 안전 마스터플랜과 구체적인 운영방법 등을 수립할 예정이다. 하지만 화재 사고가 이미 발생한 뒤라 ‘사후약방문’식 처방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는 화재가 발생한 고양저유소에 대한 관리 책임이 있는 최준성 대한송유관공사 사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했다. 최 사장은 조만간 국회 출석요구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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